어미 새앙쥐 새끼 물어 굴속을 드나드네

[사진] 새 생명 앞에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등록 2005.09.26 10:19수정 2005.09.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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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풀을 들추자 어미는 달아났다 싶었다. 그냥 한마리가 둥지를 틀었겠거니했는데 이런 앙증맞은 놈들이 태어났다.
썩은 풀을 들추자 어미는 달아났다 싶었다. 그냥 한마리가 둥지를 틀었겠거니했는데 이런 앙증맞은 놈들이 태어났다.김규환
가을을 재촉하는 찬비가 내렸다. '산채원' 산나물 시험 재배하는 밭두렁 풀씨가 생기기 전에 베어 군데군데 모아뒀다. 어찌나 호된 비가 내리던지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물골이 될 성싶어, 말라서 썩어가는 풀 한 깍지를 낫으로 들어 다른 쪽으로 치우는 순간이었다.


난생 처음 본 작은 어미 쥐가 후다닥 뛰어 도망을 간다. 물이 차 있는 고랑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흰 꽃이 핀 취나물 밑으로 가더니 곧 돌아왔다. 필시 새끼가 있을 터다.

게 중 가장 큰 아이가 눈도 뜨지 않은 채 꼼지락거리며 움직였다.
게 중 가장 큰 아이가 눈도 뜨지 않은 채 꼼지락거리며 움직였다.김규환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붉다 못해 보랏빛인 생쥐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한 마리는 꼼지락거리며 움직여도 본다. 차가운 비를 더 맞으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지 모른다. 퍼뜩 스치는 두 가지 생각이 심란하게 한다. 고민에 빠졌다.

이놈들이 커서 사람들 먹을 것을 축낼 건 명약관화. '어른들처럼 닭에게 쪼아 먹도록 툭 던져버릴까, 우리 애들이 이곳에 오면 요즘 같은 가을철에 렙토스피라를 퍼트리는 주범일진대 그냥 비에 맞게 해버려!'

그럴 순 없었다. 나는 절대 강자다. 무수한 나날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짐이 되었던가. 무심코 했던 행동 하나가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도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더구나 새 생명에게 내 작은 심술을 부렸다가는 죄받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사진 찍는 호기심도 그들에겐 미안했다. 웅크리며 젖을 쪽쪽 빨아대는 핏덩이를 괜히 건드렸나 싶다. 햇살에 눈이 멀까 걱정이었다. 잠시라도 그늘을 만들어 주어 편히 크도록 놔두는 게 도리다.


미안해서 풀을 다시 덮어줬다. 어미가 다시 돌아와 새끼를 물고 간다.
미안해서 풀을 다시 덮어줬다. 어미가 다시 돌아와 새끼를 물고 간다.김규환
어미가 한번 다녀오는 짧은 시간, 풀 더미를 다시 살짝 덮어줬다. 어미는 달라진 환경에서도 용케도 제 새끼를 한 마리씩 입으로 물고 바삐 뛰어 다른 굴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

"휴-."


한참을 비가 오는데도 넋 놓고 지켜보았다. 더 이상 나오질 않는 걸 보니 여섯 마리가 다였던 모양이다.

당분간 애들이 커갈 때까지는 그곳에 가지 않으리라. 괜한 발걸음 했다간 어떤 누(累)가 될지 모르잖은가.

새앙쥐는 발간 벌거숭이다. 사람 아이가 태어날 때 헐벗고 태어난 모습과 다르지 않다. 털 하나 없이 세상 빛을 보러오니 무에 다를 건가.

앙증맞기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눈도 뜨지 않은 고 귀여운 놈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키우고 싶기까지 하다. 이목구비 절묘하다.

발가락도 나를 닮았다. 토닥토닥 다독여 어서 자라 제 구실하길 빌고 싶다. 이 놈이 가냘프게 "속속" "쏙쏙" 속삭이면 갓난아기 손에 받듯 조심히 어루만져 사랑을 듬뿍 전하고 싶다. 내 아이나 다름없이 귀여우니 이를 어쩌나. 선명하게 붉은 내 손톱마냥 붉게 비치니 뭔가를 속삭이고 싶다.

'그래, 너도 세상 한 일원이구나, 잘 지내보자꾸나. 참 귀엽기도 하지. 난 널 보면 하나도 징그럽기가 않아. 근데 네 어미를 보면 다른 생각이 들곤 하지. 하지만 어떡하겠니?'

모든 어미는 이처럼 아름답게 새끼를 보호하려고 입으로 물어 옮기지만 상처하나 나지 않는다. 무 밭을 지나서 물 길을 건너 취나물 밑으로 숨어들었다.
모든 어미는 이처럼 아름답게 새끼를 보호하려고 입으로 물어 옮기지만 상처하나 나지 않는다. 무 밭을 지나서 물 길을 건너 취나물 밑으로 숨어들었다.김규환
늘 이랬다. 겉으로 보이기엔 내 눈알만큼 짜릿하게 오묘하니 그냥 눈에 넣고 싶다. 품어서 뽀뽀라도 해줄까보다. 이리 앙증맞은 새 소년 새 소녀가 있을까 보냐.

정말이지 손톱만큼도 못한 작은 쥐다. 내, 지금껏 보아온 희망의 씨앗 가운데 이보다 뭘 모르고 태어나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제 어미가 엄지손가락 굵기에 검지 길이도 안 되니 새끼는 얼마나 작았겠는가. 아름답고 고귀한 생명을 멋모르고 밟아버렸으면 어찌되었을까? 회한을 남길 일은 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여섯번을 반복하고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새 둥지를 덥히느라 그 뒤로 나오지 않았다.
여섯번을 반복하고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새 둥지를 덥히느라 그 뒤로 나오지 않았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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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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