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이 난 땅콩을 캤습니다

등록 2005.09.27 23:03수정 2005.09.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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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도 캐야 해."


고구마를 다 캐자 장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내린 비 때문에 땅콩에 싹이 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격이라며 장모님은 긴 한숨을 쉬십니다.

"아버지 병원에 계셔서 어쩔 수 없었잖아."
"누가 뭐래냐?"

이기원
땅콩 캐는 일은 고구마처럼 힘이 많이 드는 건 아닙니다.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는 것이 땅콩이라 호미질은 시늉만 하고 줄기 잡고 힘을 주면 쑤욱 뽑혀 올라옵니다. 뽑혀 올라오다가 뿌리에서 떨어져 흙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은 호미로 흙을 살살 걷어내면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장모님 말씀대로 싹이 난 땅콩이 꽤 많았습니다. 땅 속에서 뿌리에 매달린 채로 싹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땅콩 껍질을 가를 정도로 작은 싹도 있었지만 껍질을 완전히 깨고 나와 파르스름한 새순이 돋을 정도로 자란 싹도 있었습니다.

이기원
장모님이 아시면 섭섭하다 하실 일이지만, 싹이 난 땅콩을 보며 신기하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땅콩도 콩이라고 콩나물처럼 가늘고 연한 싹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굵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곧게 뻗은 녀석도 있고, 동그랗게 굽은 녀석도 있습니다. 꽃 피고 새 우는 봄도 아닌데 여기저기에서 싹이 돋아 자라고 있습니다.


장모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뽑아 올린 땅콩 싹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사위나, 때도 모르고 여기저기 싹을 틔운 땅콩이란 녀석이나 철부지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기원
철부지 사위라도 장모님은 고맙다고 하십니다. 늙은이 혼자 하면 사흘 꼬박 걸릴 일인데, 자네가 와서 하루 만에 다 끝냈다고 좋아하십니다. 때깔 고운 고구마 한 박스와 잘 여문 땅콩 반 자루를 트렁크에 실어주시며 장모님은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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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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