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올라가야지요"

베테랑 '전공'들의 아찔한 고공 작업세계

등록 2005.09.30 00:00수정 2005.10.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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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점심을 마친 후 20층 건물 높이에 해당되는 송전탑에 오를 준비를 하는 전공들.

점심을 마친 후 20층 건물 높이에 해당되는 송전탑에 오를 준비를 하는 전공들. ⓒ 김준회

"40m나 200m나, 위나 아래나 다를 게 없어요. 오히려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편안합니다. 이북까지 사방이 다~보이지요. 속이 확 트입니다."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LG필립스 LCD공장. 낮으면 40~50m, 높으면 최고 200m까지 올라가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송전탑 위에서 김형근(43·경남 사천)씨가 천천히 내려온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김씨는 송전 철탑 세우기 작업만 20년째 해온 베테랑 '전공'(송전탑을 세울 때 올라가서 공사하는 사람).

베테랑 전공들의 아찔한 고공 작업세계

송전탑을 세울 기초공사가 끝나면 철탑을 세우는 건 전공들의 몫이다. 김씨는 여기에서 100만kw 전기를 송전할 철탑을 조립해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송전탑은 거의 완성 단계라 위에서 5명, 밑에서 5~6명이 막바지 볼트 조임 작업 중이었다.

a "50미터나 100미터나 다를 게 없어요." 20년 전공 경력 김형일씨.

"50미터나 100미터나 다를 게 없어요." 20년 전공 경력 김형일씨. ⓒ 김준회

김씨의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안전띠 하나 뿐. 지상 20층 건물과 맞먹는 57m 높이에 올라가 75m까지 들어 올리는 크레인(100t)이 넘겨주는 철탑 조립품(2t)을 받아 볼트조임(연장)으로 연결하는 게 그의 일이다. 송전탑에 올라갈 때 옆에 차는 볼트조임은 무게만 7~8kg.

여기에다 안전띠와 다른 장비를 합치면 15kg 이상 짊어지고 올라가야 한다. 위에서 내려오면서 일하고, 밑에서 올라가면서 일하다가 중간에서 만나면 마무리가 된다. 시공관리책임자 김영호(36)씨에 따르면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이 정도 철탑 규모(80t)이라면 3일에 두 개 정도 완성한다고.


송전탑 옆구리에는 철 막대가 드문드문 꽂혀 있다. 전공들이 올라갈 때 딛는 스텝볼트다. 허리에 두른 안전띠 하나에 몸을 맡기고 송전탑에 매달려 무거운 볼트조임으로 묵묵히 커다란 나사를 조이는 전공들의 모습을 보면 간이 조마조마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태연자약하다.

수 십 미터 높이의 송전탑 위에 올라가면 탑이 휘청휘청 흔들린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안전 위험 때문에 작업을 못한다. 풍속이 초속 20m 이상 되면 일을 중단해야 한다.


"일이 고되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일 해야지요."

제작은 '전공'이, A/S는 '기공'이

전공은 조를 짜서 한전과 계약직으로 일한다. 일당은 지형이 험한 정도와 송전탑 높이, 숙련도에 따라 20만~30만원 선. 한마디로 '고급노가다'다. 보통 30여 명이 한 조가 되는데, 송전탑을 세우며 올라가서 일하는 전공은 그 중 절반 정도다. 송전탑을 다 세운 뒤에 전선을 연결하면 일은 끝난다.

정작 가장 힘든 일은 송전탑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전선을 연결하는 가선작업이라고 한다. 전선을 연결해야 전기가 들어오는데 이 역시 까마득히 높은 공중에서 하는 작업이라 그것도 전공의 몫이다. 송전을 위한 모든 '공중작업'이 안전띠 하나에 의지한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전력이 공급되는 송전탑에 이상이 생기면 송전탑 건설을 하는 전공과는 별도로 한전 보수반의 '기공'이 송전탑에 올라가 보수작업에 들어간다. 송전탑 제작은 '전공'이 애프터서비스는 '기공'이 맡는 것이다.

a 생명줄인 안전띠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공중에서 일한다.

생명줄인 안전띠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공중에서 일한다. ⓒ 김준회

20년 전엔 전공도 '잘나가는' 인기직업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20대가 많았어요. 인기직업이라 희망자가 많았지요. 그때는 보수가 좋으니까 20대가 주를 이뤘는데 지금은 30대, 40대가 거의 다예요. 힘쓰는 20대가 필요한데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a 박한일 전공장

박한일 전공장 ⓒ 김준회

전공들을 총지휘하며 이끄는 인상 좋은 전공장 박한일(43·충북 제천)씨는 18세부터 이 일에 뛰어들어 25년째 하고 있다. 몸이 고되고 힘든 이른바 3D 직업 중 하나라서 현장에서 일하는 전공들 중 20대는 한 명도 없고 모두 30대 후반이거나 40대 연령대였다. 보수는 센 편이지만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오르지 않은 수준이란다. 날마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20일 작업하면 많이 하는 편이다.

위에 올라가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숙달된 전공이 되려면 적어도 5년 정도 경력을 쌓아야 한다. 처음에는 지상 작업조에 편입돼 조공으로 일을 시작한다. 조공으로 조금씩 일을 배운 뒤 2~3년이 지나야 지상에서 발을 떼고 공중작업(?)에 투입된다.

이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됐다는 김학진(43·충북 제천)씨는 박 조장의 처남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 박 전공장의 권유로 일을 시작했다는 김씨는 일도 배울 겸 자재정리도 하고 위에서 필요한 것을 올려주는 일을 한다. 아직 일의 특성상 전공들은 40대 후반 50세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올라가려면 아직 멀었어요. 겁은 나는데 할 만해요. 보수도 괜찮은 편이고요."

김씨 역시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온 몸에 알이 배기는 거 빼곤 아직 건강이 괜찮다는 김씨는 "40대인 나도 할 만한데 젊은 사람들도 할 만한 일"이라고 한다. 한 칸씩 단계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김씨는 현재로선 이 일에 만족한다고.

a 볼트조임으로 철탑을 단단히 조이는 최종 마무리 단계.(사진왼쪽) 작업지시는 모두 무전기로 한다.

볼트조임으로 철탑을 단단히 조이는 최종 마무리 단계.(사진왼쪽) 작업지시는 모두 무전기로 한다. ⓒ 김준회

"그런 사고 나면 며칠 일 못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크레인과 같은 장비가 동원돼 작업이 쉽지만 예전엔 거의 다 수작업이었다. 지상과 공중에서 하기에 무전기로 작업지시와 의사소통을 한다. 항상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겁을 내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박 전공장은 말한다.

"겁이 나면 어떻게 일합니까? 오히려 위에서 작업할 때는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사고는 올라가거나 내려올 때 주로 생깁니다. 예전에는 더러 사고가 생겼는데 요즘은 안전규칙을 강화해서 많이 줄었지요."

20~30층 높이에서 추락하면 운이 좋아 나무에 걸리지 않는 다음에야 99% 사망할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 위험 속에서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직업이라 한전 측에서도 각종 안전규칙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고 전공 자신도 항상 조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

워낙 높은 곳이라 위에서 볼트 하나만 떨어트려도 가속도가 붙어 밑에 있는 사람이 맞으면 치명상을 입는다. 따라서 안전모는 필수다. 위에서 무엇인가 던질 일이 있으면 무조건 사각 철탑 안으로 떨어트리는 것이 규정이다.

"그런 사고가 나면 며칠 일을 못합니다…."

결혼한 지 20년 됐다는 박 전공장의 부인 김명숙(41)씨는 늘 기도하며 걱정한단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라 한전 측에서도 식단에 신경을 쓰며 배려를 한다. 일주일에 고기를 2~3차례 식단에 올리고 고단백 영양식으로 식사를 제공한다.

다시 '공중'으로

송전탑 건설 현황

우리나라에 현재 건설중인 송전탑은 모두 300개. 그 중 파주시 운정 신도시와 국책사업인 LG필립스 LCD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현재 건설되는 송전탑은 모두 33개다. 그중 24개가 LG필립스에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송전탑이다. 이 공사는 한전 서울전력관리처 송전건설부에서 총괄 지휘한다.

24개의 송전탑이 완공되려면 약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리며 기초팀, 상부조립팀, 가선팀 등으로 송전탑 건설팀이 구성된다. 송전탑을 세우고 가선작업이 끝나면 한전 송전감리단이 최종 점검한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전력 선로는 울진 원자력발전소에서 신태백-신가평-신포천-신덕은(LG필립스LCD) 순으로 가설된다. 예전에는 송전 선로가 일자형이었지만 발전소에서 전력공급이 끊어지는 사고가 나면 단전이 되므로 현재는 루프(loop)형으로 환상선(環狀線) 전력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즉, 인천발전소- 서인천 선로-신덕은(LG필립스LCD)-울진발전소 형태로 연결해 한쪽 발전소에서 단전이 돼도 즉시 다른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파주시 송전탑으로 들어오는 전력은 현재 개성공단에 공급하고 있으며 앞으로 북한에 200만kw 전력을 제공할 경우, 이 전력망을 통해 보내게 될 것이라고 한전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 한성희
이들은 송전탑을 건설하는 곳을 따라 1년 사시사철 옮겨 다니기 때문에 깊은 산 속에서 일할 때는 보름 이상 사람 구경을 못할 때도 있다. 산에 송전탑을 세울 때는 크레인 같은 장비가 들어갈 수 없고 진입로를 내려면 산림이 훼손되므로 모든 장비와 부품을 헬기로 운반하는 '항공시공'을 한다. 항공시공은 수작업으로 건설하기 때문에 송전탑 하나 완성하는 데 4일 정도 걸린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 힘 무지 세고 건강해요. 오마이뉴스에 잘 생긴 얼굴 사진 나가면 여성 팬들 메일이 쇄도하는 거 아니에요? 사인 연습 열심히 해야겠네요."

취재를 하려면 송전탑 꼭대기에 올라가서 둘러보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기자에게 계속 권하던(?) 김성호(서울전력관리처 송전건설부) 과장이 인터뷰를 마친 전공들에게 농을 건넸다.

전공들은 다시 볼트조임을 허리에 차고 볼트스텝을 밟고 '공중'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집에서 오늘도 무사히 일 마치기를 기도할 아내와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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