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25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9.30 14:08수정 2005.09.30 17:45
0
원고료로 응원
김병학네 하인이 중문을 열어 제치며 사랑 안 뜰로 뛰어 들었다. 집사 안기주가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빼꼼히 중문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에냐? 무슨 일인 게야?”


김병학이 긴장한 얼굴로 하인에게 물었다. 김병학의 눈엔 별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사위에 어둠이 내리기는 하였으나 아직 홰를 켜 들 정도는 아니었다.

“이봐, 여기 여기이~수상한 놈이 있다!”

하인이 놀란 눈으로 사랑 뒤 켠 굴뚝께를 가리키며 중문 밖을 향해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댔다. 환도를 든 눈매 매서운 장정 둘이 중문을 밀치며 달려왔다. 그 뒤로 집사 안기주도 장작개비를 주워들고 따랐다.

[후다닥]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굴뚝 옆에서 갑자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뛰쳐나와 내당 사이 담을 향해 뛰었다.


“저 놈 잡아라아~”

하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릴 질렀다. 말보다도 빠르게 장정 둘이 환도를 빼어 들며 내달렸다. 그러나 달리던 검은 그림자가 담 옆의 나무를 차는가 싶더니 훌쩍 담장 기화를 딛고 넘어버렸다. 쫓던 장정들이 멈춰 서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느냐 빨리!”

김병학이 소릴 질렀다. 잽싸게 장정 하나가 어깨를 받쳐서는 다른 하나를 넘겼다. 나머지 하나가 나무를 타고 담으로 올라서더니 담장을 넘었다.

“꺄아아악!”

내당 안에선 여인네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렸다.

“어서 잡아야 한다. 어느 놈인지 잡아내지 못하면 끝장이야! 어서 아랫것들을 불러 모아라!”

혈색이 하얗게 변한 김병학이 초조한 음색으로 하인과 안기주를 닦달했다.

“예!”

안기주와 하인이 중문을 빠져 나갔다.

김병기는 사랑 안으로 들어가더니 벽에 걸린 활과 전통을 들고 나왔다.

“아니, 이건 또 왜? 아우는 나서지 말고 잠자코 계시게.”

“모르시는 말씀이옵니다. 놈은 내당 쪽으로 달아나려는 게 아니올습니다.”

김병기가 김병학의 충고를 무시한 채 활에 시위를 걸었다.

“허면?”

김병학이 되물었다.

“망설임 없이 내당 쪽으로 타 넘은 것으로 보아 이 집 구조를 모르는 자가 아닌 듯 하더이다. 그렇다면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이 집의 더 깊은 곳으로 스며들려 할 리야 있겠습니까. 필경 다시 저 담을 넘어 이쪽으로 올 겝니다. 그나마 이쪽이 바깥쪽에 가장 붙어있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면 저 자가 일부러 우리를 유인한 것이다?”

“작은 서방님 말씀이 맞는 듯하옵니다.”

김병학이 되묻는데 대답은 예상치 못한 사랑 뒤편에서 소리가 들렸다.

“깜짝이야! 아니 검귀 너는 어디 있다 이제야 온 게야?”

김병학이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도포 차림의 사내에게 역정을 내었다.

“소란한 소리를 듣고 수하들로 하여금 외벽을 막게 하였사옵니다. 제일로 대감 마님의 안온이 가장 급하옵기로 이 곳에 들었습니다.”

서늘한 눈매. 하관이 빠르고 콧날이 선 짙은 눈썹의 사내. 도포 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환도를 패용하고 있어 언뜻 칼 쓰는 자임을 알 뿐 그냥 보면 여느 선비의 인상이었다. 김병학의 행차엔 항상 대동하여 호위하던 검객 김기. 아는 이들에겐 그저 ‘검귀’란 별호로 불리는 사내였다.

“꾸중은 나중에 하옵고 잠시 사랑 안으로 몸을 숨기시옵소서.”

“나는 예 있겠네.”

김기의 권유를 뿌리치고 김병기는 벌써 화살 한 대를 시위에 매겼다. 말도 채 끝나지 않아 검은 그림자가 붕 몸을 띄우며 담장 위로 몸을 드러냈다. 그저 손을 담장 위에 얹는 동작만으로 담장 위에 몸을 올리는 가벼운 놀림. 무게를 덜어버린 가벼운 착지. 형체까지 어둠에 녹아, 흡사 도약하는 한 마리 삵을 떠올리게 하는 자태였다.

[핑]

마루에 선 김병기가 미처 조준할 사이도 없이, 아니 더욱 두꺼워진 어둠 탓에 조준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시위를 놓았다. 손깍지를 끼지 않은 채 튕긴 시위의 탄력이 뼛속으로 찌르르 파고들었다.

[팍]

“이....이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