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도 흔적을 볼 수 있고 물염적벽은 그대로 있답니다.김규환
동서남북 어디를 가나 금수강산 산해진미에 각양각색 풍경과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도 한번쯤 누려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떠돌이라 부르던 정처 없이 배회하는 방랑자라 하든 상관할 바 아니다. 마음이 향하는 데로 발길 머무는 곳에 한 몸 내맡기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 걱정, 자식 걱정, 아내 생각과 주변을 모두 물리고 훌훌 떠나서 모두 잊고 살아보면 정말이지 살맛이 날 테인데. 스님처럼 정박하지 않은 삶, 잠시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옮아가 세상의 객(客)이 되어 떠난다면 이것도 세상살이다.
난고 김삿갓은 병연을 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일이 꼬이지만 않았던들 그냥 양반노릇으로도 바쁠 명문가 자제였다. 그리 살았더라면 당쟁과 사화에 연루되어 역사책 구석 어딘가에서 한두 줄 만날 위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양에서 함경도로 다시 영월로 전전하던 유년시절을 지나 역적 김씨를 논하나 결국 제 할아버지였다. 홀연 한양을 떠난 그는 유랑의 길에 접어든다. 압록강 아래에서 시작하여 주유천하(周遊天下) 하였다.
희롱과 주사를 마다않고 질펀하게 때론 양반입네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대작을 하였으리라. 쓰러져가는 농가 헛간에서 남루한 옷에 지푸라기 뒤집어쓰며 슬픈 잠을 자야했던 그는 갖은 홀대와 멸시, 조롱을 삼키고 민중의 처지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소했다. 해학으로 풍자하며 40평생을 떠돌이로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