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재가 빚어낸 자연버섯 구경할까요?

터키 7박 8일 여행기(9)-카파도키아의 파샤바와 괴레메

등록 2005.10.04 08:51수정 2005.10.0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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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재는 기적을 만들고

a 낙타가 유유히 쉬고 있는 파샤바 입구

낙타가 유유히 쉬고 있는 파샤바 입구 ⓒ 김정은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어디 이상한 별나라에 홀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숨겨진 비경이다. 그곳에 가면 광활한 대지 위에 불쑥 솟아나와 끊길 듯 말 듯 끊어지지 않는 기묘하다 못해 이상한 암석들의 파노라마를 만날 수 있다.


응회암이라고 하는 적갈색, 흰색, 주황색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 암석들을 얼핏 보면 마치 지구가 아닌 우주 어느 별엔가로 추락한 듯 가슴이 막막해진다. 그만큼 카파도키아의 자연은 여러 가지 복잡한 느낌을 여행객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파샤바계곡, 입구부터 사막지대를 연상시키는 낙타들을 배경으로 범상치 않게 생긴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하늘을 찌를 듯 우람스럽게 서 있었다. 한 마디로 개구쟁이 스머프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잠시 들 정도였다.

a 파사바 전경

파사바 전경 ⓒ 김정은

파샤바의 버섯바위 '투파'

버섯 모양의 응회암 바위는 통상적으로 '투파'라고 불리워진다. 모양은 버섯마을이지만, 매우 동화적인 느낌의 별칭인 '세 쌍둥이 요정들의 굴뚝'이 더 와닿는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투파'가 탄생하게 된 것은 바로 화산재가 오랜 세월 응축되어 생성된 이 지역의 응회암 지층 때문이다. 재질이 여느 돌과는 달리 연약하고 잘 물러지기 때문에 비바람에 의한 침식이 쉽게 이루어져 생긴 결과인 것.

그러나 이처럼 무른 응화암 재질은 어떤 면에서는 별다른 도구나 기술 없이도 조금만 손을 대면 원하는 형상의 물건을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은 이곳이 마치 개미집처럼 석굴을 만들어 생활하기 좋은 최적의 요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a 동굴 속에서 바라다본 버섯 모양의 투파

동굴 속에서 바라다본 버섯 모양의 투파 ⓒ 김정은

그렇다면 개미집같은 동굴에선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BC 6세기 경 이곳 카파도키아는 BC190년 로마가 마그네시아를 물리치고 승리할 때까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은 곳이다. 그후 로마의 속주로서 11세기까지 동로마제국 사대에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 카파도키아의 개미집 같은 동굴을 만든 주인공은 유감스럽게도 실크로드를 이동하며 교역하는 상인들이 아닌, 박해를 피해 피난 온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공인받기 전 로마시대는 기독교 탄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다.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은 신자들이 이태리 카타콤베와 같은 유적들을 만들어냈 듯이, 카파도키아 지역 또한 로마시대 탄압을 피해 온 기독교인들이 몰려와 굴을 파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초기 기독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인들의 숨결 괴레메 '야외박물관'

a 파샤바 동굴 속에서 볼 수 있었던 훼손된 프레스코 벽화, 괴레메에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프레스코벽화가 많지만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파샤바 동굴 속에서 볼 수 있었던 훼손된 프레스코 벽화, 괴레메에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프레스코벽화가 많지만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 김정은

파샤바가 버섯 모양의 응회암 암석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는 곳이라면 파샤바를 떠나 도착한 괴레메 유적은 기독교 탄압을 피해 궁벽한 이곳까지 와서 운둔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숨결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후 이곳에 둥지를 튼 사람은 4세기 금욕적인 고행을 하는 기독교 수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카파도키아 지역에만 약 3000개의 동굴 교회를 만들고 수도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개 6세기에서부터 12세기에 걸쳐 많은 흔적이 남겨져 있다.

a 괴레메, 수도사들이 살던 동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괴레메, 수도사들이 살던 동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 김정은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화려한 각종 성인의 모습을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암굴교회들이다. 프레스코화에 그려진 특징에 따라 붙여진 교회들이 제 각각 개성에 맞는 프레스코화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괴레메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는 촬영금지라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프레스코화의 가장 큰 적이 햇빛이나 조명이기 때문에 유적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발그레한 성모마리아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돔지붕의 전체를 수놓은 추상적인 무늬도 그곳을 직접 찾아간 이들에게만 아주 살짝 그 모습을 내놓으니 한 마디로 사막 위 은밀한 곳에 몰래 핀 꽃이라고나 할까? 이밖에도 괴레메는 교회의 흔적 말고 공동식당과 그을음 덮힌 주방 등의 흔적을 통해 신앙과 생활 모두 공동생활을 해온 그들의 실생활 모습을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게 된다.

a 괴레메 전경

괴레메 전경 ⓒ 김정은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란 뜻의 카파도키아…. 지금은 아름다운 말 대신 기독교 역사의 흔적만이 외롭게 남아있지만 그 역사의 흔적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감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사막에 떨어진 어린왕자의 눈에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마음으로 보라고 일러주는 사막여우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얼핏 사막처럼 황량하고 우주의 한 행성처럼 낯설게 느껴질 법한 이곳 카파도키아가 그래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 사람때문이 아닐까?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보면 아련히 느낄 수 있는 예전 기독교인들의 신념과 열정이 동굴 구석구석에 아직도 온기를 지난 채 숨쉬고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터키 7박8일여행기 9번째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터키 7박8일여행기 9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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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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