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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식사를 하는데, 송송 썬 양파와 무가 적당하게 섞인 무김치가 있는 겁니다. 김치를 담가 먹지 않는 우리 집에는 무김치가 있는 경우가 드문데, 웬 무김치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집은 김치를 많이 먹는 편이 아닙니다. 한 포기를 사면 그게 언제 샀나 싶을 정도로 오래 갑니다. 아이들의 경우 김치를 거의 먹지 않는 편이고, 집사람 역시 매운 음식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제가 김치를 먹지 않으면 김치가 쉴 때까지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무김치가 식탁에 있다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치가 어디서 났는지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새댁 '트이'가 싸 준 것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우리 가족은 일요일에 이사를 한 베트남 새댁 트이씨 집에 갔었습니다. 트이는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됐는데, 아직까지 아이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얼굴에 앳된 모습이 남아있긴 하지만 야무지기가 여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야무지고 당찬 지 이사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도, 개천절인데도 일하고 있는 인근 공장에 이사 왔다는 인사치례를 하느라 과일을 한 소쿠리나 깎아 나르고, 공장 직원들에게 저녁까지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트이는 한숨을 돌렸는지 우리 가족에게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저녁 먹으러 오라는 소리는 진작부터 들었으나, 번거로울 것 같아 집을 나서지 않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고는 5분 거리 밖에 되지 않아 온 가족이 마실을 나섰습니다.
식사를 하러 갈 때는 베트남 음식을 기대했었는데, 정작 식탁은 베트남 만두인 '짜요' 하나만 빼고는 전부 한국 음식이었습니다. 무김치, 배추김치, 고추장, 갖은 나물들이 들어 있는 비빔밥, 참기름, 콩나물국 등으로 한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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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만두 짜요 ⓒ 고기복
트이는 처음 한국에 와서 시댁에서 살 때, 전라도에서 집안 어른이 하는 한식당에서 일을 거두며 한국 음식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한국 음식은 못하는 게 없고, 맛은 여간 정갈한 게 아닙니다.
제가 김치가 너무 맛있다고 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트이는 올 겨울엔 김치를 본인이 담가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비가 오고 밤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집을 나서는 집사람 손에 김치를 싼 봉지를 쥐어 줬던 모양입니다.
김치 종가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외국인 새댁에게 김치를 얻어먹다니,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이 있나 봅니다. 요즘 중국산 김치에 납 함유량이 어쩌고 하는 기사가 심심찮게 들리는데 올 겨울은 외국인 새댁에게 김장을 얻어먹게 됐으니 김장 담글 때, 손을 걷어 부칠 각오를 해 놔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트이 시어머니가 보내 주셨다는 좁쌀, 검은 콩도 한 봉지 얻어 왔습니다. 트이가 만든 김치 대신 베트남 만두 '짜요'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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