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처럼 영글어가는 아이들

대안학교 원경고, '원경 한마음 축제' 열어

등록 2005.10.04 20:04수정 2005.10.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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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아름다운 적중면의 너른 들판엔 지난봄에 심었던 벼들이 익어 고개를 점점 숙이고 있습니다. 천지님과 농부님들의 공력으로 이제 수확을 기다리는 들판을 거니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익어가는 것이 어찌 들판뿐이겠습니까?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의 아이들도 가을을 따라 들판처럼 여물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원경 한마음 축제> 1학년 합창과 율동
<원경 한마음 축제> 1학년 합창과 율동정일관
그것은 지난 9월 30일과 10월 1일, 원경고등학교에서 2005학년도 '원경 한마음 축제'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축제는 제27차 학부모학교와 함께 열렸습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도 축제에 자연스럽게 참여해 더욱 풍성한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축제는 지난 축제처럼 단순히 아이들의 장기자랑 정도의 수준을 넘어 반별 합창제에다 연극을 가미하여 한 사람도 소외되는 학생 없이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무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 연극도 촌극이나 코미디에서 벗어나 50분짜리 본격 연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연극의 교육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하였습니다.

2학년 학생들의 합창과 수화 <아름다운 세상>
2학년 학생들의 합창과 수화 <아름다운 세상>정일관
한마음 축제를 위하여 연극반 학생들은 한 달 전부터 연습에 들어가 자기 표현을 하기 위해 땀을 흘렸고, 합창에 참가하는 각 반 학생들은 곡을 정하여 합창을 하고 노래에 맞는 율동과 수화를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또 학부모들도 단순한 축제 관람자에서 벗어나 미리 학교 홈페이지에서 합의한 노래를 준비하여 직접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3학년 학생들의 합창 <아로하>
3학년 학생들의 합창 <아로하>정일관
가을 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차갑게 내리던 9월 30일에 학부모학교와 축제에 참가하기 위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던 학부모들이 한 분 두 분 모여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마흔 명이 모였습니다. 학부모들은 반별로 담임과 상담 시간을 갖고, 이어서 전체가 다시 모여, 음악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합창곡을 연습하였습니다.

찬조출연. 교사와 학생의 알토 색소폰 연주
찬조출연. 교사와 학생의 알토 색소폰 연주정일관
축제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오후 6시 30분에 학생회장의 축제 시작 선언과 원경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 공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원경 사물놀이패는 지난 여름 방학 동안 전수와 합숙 훈련으로 한층 성숙해진 기량을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서툴렀지만 그 열기가 대단하여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어서 전교생과 담임, 부담임 선생님이 함께 참가하는 합창제가 시작되었습니다. 1학년들은 소명의 '빠이빠이야'와 터보의 '트위스트 킹'을 율동을 섞어서 신나게 불렀고, 2학년들은 유리상자의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와 수화로 표현하여 그 의미를 깊게 하였습니다. 3학년들도 장나라 ‧ 정태우의 'Be happy'와 쿨의 '아로하'를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켰죠.

관객들의 환호 '동사마 짱'
관객들의 환호 '동사마 짱'정일관
찬조 출연으로는 미술 교사인 김동수 선생님과 3학년 최솔 학생이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였고, 1학년 전체 학생들이 참가한 관악 합주도 비록 수준 높은 연주는 못 되는 '올챙이 연주'였지만 1인 1악기 연주를 추구하는 원경고등학교의 교육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원경고 1학년 학생들의 관악 합주
원경고 1학년 학생들의 관악 합주정일관
합창제의 끝은 학부모 합창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학부모들은 비숍의 '즐거운 나의 집'과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두 곡을 합창하였는데, 전국에서 모여든 학부모들의 합창은 학부모들을 더 큰 유대로 이끌었습니다.

학부모들의 합창. <즐거운 우리집>
학부모들의 합창. <즐거운 우리집>정일관
연극은 합창제가 모두 끝나고 축제의 마지막에 공연되었습니다. 연극 작품은 서울 지역 교사들이 구성한 징검다리극단의 1996년도 창작품인 <블루 기타>였습니다. <블루 기타>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5명 여학생들의 애환과 갈등을 다룬 교육극으로 교사 1명과 학생 9명 등, 총 10명의 연기자들이 50분간 열연하여 교사, 학생, 학부모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던져 주었습니다.

연극 <블루 기타>의 신나는 세리모니
연극 <블루 기타>의 신나는 세리모니정일관
연극에 참가한 학생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이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하며 기뻐하였고, 연극을 지켜본 학생들도 본격 연극을 접하고는 상당한 자극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학부모들 역시 기대 이상의 연극에 뿌듯해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연극에 참가한 한 학생의 학부모는 "아이들이 참으로 많이 자랐다"며 "이렇게만 자라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흐뭇해 했습니다.

연극 <블루 기타>. 선생님도 연극에 참가했어요.
연극 <블루 기타>. 선생님도 연극에 참가했어요.정일관
공연이 모두 끝난 후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축제를 화제로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밤은 깊어갔고, 학부모들은 회의를 열어 학부모회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축제는 끝났지만 다음날, 학부모들은 따로 마음공부를 하여 마음공부를 통해 행복을 가꾸는 학교의 주체로 참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축제를 통해, 학부모들은 학부모학교를 통해 다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우리 아이들은 학교 주변의 아름다운 가을 들판처럼 조금씩 영글어가고 있었습니다.

모두 하나 되어. <사랑으로>
모두 하나 되어. <사랑으로>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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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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