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연출가'로 다음 무대 꿈꾸는 울산 오세천씨

울산 '기적의 도서관' 이어 '권역별 도서관'까지 산파역

등록 2005.10.04 20:40수정 2005.10.0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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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울산 북구청 오세천씨는 "개관 준비에 관장님을 비롯해 다른 직원과 자원봉사자 모두 힘들었지만 주민들이 모두 좋아하는 걸 보니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울산 북구청 오세천씨는 "개관 준비에 관장님을 비롯해 다른 직원과 자원봉사자 모두 힘들었지만 주민들이 모두 좋아하는 걸 보니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 김정숙

지난달 30일 열린 울산시 북구 농소3동 도서관 개관식.

울산 북구에서뿐만 아니라 전국 기초지자체에서는 처음으로 건립된 권역별 도서관이라 이날 개관식은 각계의 관심과 지역 주민들의 환영 속에서 진행됐다.

다들 시끌벅적한 잔칫집 분위기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이날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숨은 일꾼이 있었으니 바로 북구청 공무원 오세천(34)씨다.

그는 이번 농소3동 도서관 탄생의 산파였다. '권역별 도서관 건립'이라는 울산 북구만의 커다란 밑그림 위에 뼈대를 세우고 독특한 색과 모양을 입힌 '도서관 디자이너'이면서, 그 속을 어떤 어울리는 책과 자료로 채울까를 고민하는 '도서관 코디네이터'이기도 하다.

a 오씨는 울산 북구의 '권역별 도서관 건립 사업'이라는 큰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간 도서관 디자이너이자 코디네이터였다. 개관 준비를 위해 책을 정리하고 있는 오씨.

오씨는 울산 북구의 '권역별 도서관 건립 사업'이라는 큰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간 도서관 디자이너이자 코디네이터였다. 개관 준비를 위해 책을 정리하고 있는 오씨. ⓒ 김정숙

오씨는 지난 7월부터 다른 직원들은 물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3개월여를 밤낮없이 농소3동 도서관 개관 준비에 매달렸다. 그는 "새로운 도서관 하나 만드는 데는 예산과 인력뿐 아니라 책과 도서관에 대한 애정과 희망 없이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서관 하나를 만들기까지는 겉으로 보이는 건물 하나 완성해 나가는 데도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 안을 책으로 채우기까지는 더 많은 땀을 쏟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도서관을 편하게 이용할까에서부터 주민들이 원하는 책을 좀더 효율적으로 구입하고 분류해 놓을까 등등 숱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 2만 권 가까이 되는 책에 하나하나 비닐표지를 입히고 그 위에 다시 바코드와 라벨 작업을 해서 도서관 분류법에 따라 서가에 배치하는 등 어느 것 하나 직접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관장님과 다른 직원들, 자원봉사자들 모두 잠이 부족할 정도로 준비 작업에 바빴지만 그래도 사회와 주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시설이고 그 시설에 우리의 땀이 뱄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a 그는 "이번 농소3동 도서관은 무엇보다 관장님을 비롯한 다른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땀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렇게 고생해 만든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사랑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개관 준비에 공을 들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모습.

그는 "이번 농소3동 도서관은 무엇보다 관장님을 비롯한 다른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땀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렇게 고생해 만든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사랑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개관 준비에 공을 들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모습. ⓒ 김정숙

오씨가 도서관의 산파 역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1월부터 울산 '기적의 도서관' 유치작업에 매달려 같은 해 4월 '유치 확정'이라는 쾌거를 거뒀고, 농소 3동 도서관으로 발령나기 직전까지 기적의 도서관 운영을 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올해 7월부터 울산 지자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영아독서운동의 일환인 '북스타트 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내 아이에게 어떤 좋은 책을 읽힐까'라는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관심밖에 없던 그가 기적의 도서관 유치 업무를 맡았고, 그 업무를 하면서도 그저 '내 업무에 최선을 다하자'는 맘으로 임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울산 북구 권역별 도서관 사업을 이끌어가는 '도서관맨'이 된 것은 단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서관은 주민 생활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기적의 도서관이 개관한 지난해 7월. 그는 '도서관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운영해 나갈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에 같은 해 8월 대구 계명대학교 사서교육원에 등록, 1년 동안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8월 29일자로 '준사서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도서관은 주민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주민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가 늘 가까이에서 이용하는 문화의 중심지가 돼야 합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같은 도서관에 대한 신념도 점점 확고해져 갔다. 1주일에 3번 씩 퇴근 후 대구를 왔다갔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김치가 된 그의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도서관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그 신념 때문이었다. '이왕 덤벼 든 거 끝까지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오기도 있었다

"전문적인 공부를 통해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뭐고,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도서관이 갖춰야 할 덕목은 뭐고 주민들이 늘 이용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알게 됐습니다."

도서관에 대한 이론과 실무, 애정까지 겸비한 그는 이제 도서관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기만 하면 끝낼 줄 모르고 떠드는 사람이 됐다.

이런 그가 지난 7월 농소 3동 도서관 개관 작업에 전격 '투입'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도서관에 대해서 오씨만큼 많이 고민하고 실무를 익힌 사람은 없다고 대부분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도서관에 대한 열정을 인정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그러나 도서관을 개관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줄 알기 때문에 한편으론 '그 어려운 과정을 또 거쳐야 하나' 싶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또 고생하는 다른 직원분들에게 죄송한 맘도 들었다.

a 무사히 개관식을 치렀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란다. 그는 "주민들이 원하고, 또 공공도서관에 어울리는 책을 구비해 늘 주민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도서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사히 개관식을 치렀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란다. 그는 "주민들이 원하고, 또 공공도서관에 어울리는 책을 구비해 늘 주민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도서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김정숙

특히나 주말에 일해야 하는 도서관 업무 특성상 아내와 아이한테 미안하기 그지없다.

주민들의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위해서 자기 가족의 '삶의 질'은 기꺼이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북구청 공무원인 아내 차경미(32)씨가 많이 이해해 준다고 하지만 이해는 해도 섭섭한 건 섭섭한 거다.

울산 북구는 현재 건립 중인 농소1동 권역별 도서관과, 염포·양정권 권역별도서관, 연암동의 중앙도서관 등 내년까지 3개 도서관을 더 개관해야 한다.

도서관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담당 인력이 늘어가는 것에 대비해 '도서관 업무편람'을 만드는 것이 오씨의 다음 단계 목표다. 농소3동 도서관 운영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그 편람을 만들기 시작하겠단다. 그래서 앞으로 자기 아닌 어느 누가 도서관 업무를 맡게 되도 당황하지 않고 일에 임할 수 있도록 '교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관 다음 날인 1~2일 주말 동안 주민들이 물밀듯 밀려와 몸은 바쁘면서도 한숨 놓았다는 오씨는 그래도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원하고 공공도서관에 어울리는 책을 갖춰나가 늘 사람들이 붐비는 도서관으로 만들까'를 끊임없이 고민중이다.

"다 정리된 서가를 보면 그냥 책이 있구나, 하고 보겠지만 책 한 권 한 권에 정성을 들인 저와 직원들, 자원봉사자들은 정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 책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튼튼한 지적 토양이 되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문이 되겠지요. 개관을 하고 조용히 도서관을 다시 돌아보니 마치 멋진 무대를 완성시키고 난 뒤 연출가처럼 울컥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보람 때문에 다음 또 다른 무대를 꿈꾸게 되네요."

그가 또 다른 도서관 개관에 '투입'이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어떻든 울산 북구 도서관 건립의 총체적인 연출에는 그가 필요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 북구 웹진 <희망북구>(www.hopebukgu.ulsan.kr)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울산 북구 웹진 <희망북구>(www.hopebukgu.ulsan.kr)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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