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김승규 원장에게 '빨대' 언급한 까닭

등록 2005.10.06 12:42수정 2005.10.0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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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를 사이에 둔 창과 방패 정형근 의원(오른쪽)은 김승규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만만치 않은 정보력을 과시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김 후보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빨대'를 사이에 둔 창과 방패 정형근 의원(오른쪽)은 김승규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만만치 않은 정보력을 과시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김 후보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여담입니다만, 저희 처가쪽 먼 아저씨가 70년대에 'DJ가 똑똑하다'고 말했다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정보기관이 이렇게 해서는 안될 일을 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는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이 정권안보나 선거상황 관리, 이런 것은 하지 말고 민심동향 파악이나 정책동향 업무는 살려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승규 신임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느닷없이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의 '국정원 빨대' 발언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행사는 '비공개'였으므로 사후 브리핑도 없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이날 김우식 비서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등이 배석한 가운데 임명장 수여를 마치고 가진 티 타임에서 김 원장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정형근 의원 정보력 별 것 아니다"고 애써 강조

특히 노 대통령은 김 원장에게 "정형근 의원이 그동안 문건 폭로를 많이 했지만 알맹이가 없지 않느냐"면서 "국회 529호 사건 관련 문건도 국정원이 야당 동향을 파악한 정도를 가지고 사찰이라고 너무 부풀려진 것 아니냐"고 반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느닷없이 '국정원 빨대' 발언을 화제에 올린 것은 이에 앞서 7월 5일 국회에서 열린 김승규 국정원장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인 정 의원이 '국정원 내부 빨대' 발언을 하며 마치 국정원 동향과 김승규 후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정보력을 과시한 것에 대해 너무 괘념치 말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요컨대 노 대통령은 이 자리를 빌려 정 의원이 국회에서 과시한 정보력과 국정원 내부 '빨대'가 대수롭지 않다는 뜻을 김 원장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김 원장에게 정형근 의원 빨대 발언을 거론하며 '기죽지 말라'는 위로 성격을 띤 당부를 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언론들은 정형근 의원이 김승규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만만치 않은 정보력을 과시하며 질문을 던져 김 후보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보도했었다. 다음은 7월 6일자 한 신문 보도이다.

"'신건 전 국정원장을 세번 만났죠?' 김승규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5일 국회 정보위의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 차장을 지낸 정 의원이 만만치 않은 정보력을 토대로 추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이날 현직이 아니라면 파악하기 어려운 사안까지 조목조목 제시했다. '친정'인 국정원에 탄탄한 정보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김 후보자의 인선 과정에서 벌어진 막전막후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정 의원은 '김 후보자가 국정원장 임명을 3번 거절했지만, 신 전 원장을 만나고 나서 태도를 바꿨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신 전 원장이 '인사 전권을 요구하고,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2가지 조건을 내걸어라'는 조언을 한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 결국 김 후보자는 '국정원장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만났다'고 만난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김승규 원장은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그토록 보안을 유지하며 신건 전 원장을 만났는데 둘이 나눈 대화내용까지 들이대며 추궁하자 그로서는 국정원이 원장 후보까지도 미행감시하거나 도청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 법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 때문에 김 원장이 국정원이 자신도 도청한다는 피해의식을 가진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형근 의원 정보력이 별 것 아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충격은 김승규씨가 국정원장에 부임하자마자 터진 이른바 안기부 비밀도청 '미림'팀의 불법도청 X-파일 사건을 처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즉, 국정원이 먼저 공개하지 않으면 정형근 의원의 폭로로 제2의 미림팀 사건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과 시간에 쫓겨 '부실한 고해성사'(국정원의 과거 불법감청 실태보고)가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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