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 경제권력에 고개숙이다

[取중眞담] 기대 저버린 청와대 '금산법 내사'... 삼성 앞에서는 법과 원칙 없나

등록 2005.10.06 18:13수정 2005.10.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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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금산법 개정 과정에서 재경부 등 관련부처들이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법개정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는 내사에 들어갔지만 지난 4일 발표된 내사 결과는 기대에 못미치는 정도를 넘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사진은 청와대 전경.

금산법 개정 과정에서 재경부 등 관련부처들이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법개정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는 내사에 들어갔지만 지난 4일 발표된 내사 결과는 기대에 못미치는 정도를 넘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사진은 청와대 전경.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올 국감은 완전히 '삼성판'이다. '삼성국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삼성이 이렇게 표적이 된 데는 그럴 만한 사회적 맥락이 있다. 삼성이 단순한 기업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지배권력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니….

그런데 '개혁정부'를 자처해온 참여정부는 '경제권력' 삼성에 관해서만은 법과 원칙, 상식을 모두 잃은 것 같다. 지난 4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표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경위 내사 결과에는 참여정부가 여전히 삼성과의 '동맹관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금산법 개정안에 대한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청와대

청와대는 금산법 개정 과정에서 재경부 등 관련부처들이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법개정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내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4일 문재인 민정수석이 내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 내사결과는 기대에 못미치는 정도를 넘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문재인 수석은 "재경부·공정위 등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다소 미진한 측면이 있었지만 삼성의 로비에 의해 특혜를 주는 방향으로 개정안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며 관련부처의 '삼성 봐주기' 의혹을 일축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4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행정적으로 책임질 사안이나 정실 등 다른 의도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재경부와 공정위 등에 주의·조치를 주는 것으로 논란을 종결시켰다.


청와대는 '협의 과정에서 다소 미진한 측면'에 대해 "재경부가 관련부처에 부칙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공정위는 부칙 변경내용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안 제출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재경부 등 관련부처들이 중요한 쟁점을 담고 있는 부칙조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은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절차상 문제는 있었지만 문책은 어렵다"고 결론내린 것은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기'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가 이날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검토의견을 제시한 점이다. 아직까지 금산법이 국회에서 심의도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의견은 사실상 금산법 개정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읽힌다.

이에 5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입법기관도, 사법기구도 아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법 적용에 있어 유권해석까지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며 "청와대가 이미 유권해석은 물론 법 개정 방향까지 밝혀 놓았는데 '국회와 당정의 심도 있는 논의'를 촉구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a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오전 중앙언론사 경제부장 2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삼성과 정부가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고삼성에 대한 비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오전 중앙언론사 경제부장 2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삼성과 정부가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고삼성에 대한 비판했다. ⓒ 연합뉴스 김동진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분리대응은 결국 삼성 구하기?

더 나아가 청와대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를 분리해 대응함으로써 '삼성 구하기'란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즉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분리대응은 결국 삼성의 위법행위를 눈감아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97년 3월 금산법 제정 당시 삼성생명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정한 반면, 금산법 제정 이후 삼성카드가 초과취득·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은 유예기간을 두고 처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산법 제정 당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8.55%였다. 현재 보유지분이 7.25%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금산법 개정안이 청와대 중재안대로 이뤄질 경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1.3%까지 추가로 보유하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즉 청와대의 '유권해석'에 따르자면, 지난 2004년 말과 2005년 초 삼성생명이 추가로 취득한 삼성전자 주식 4만5천여주도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얘기다. 재벌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 주식보유를 5%로 제한한 금산법을 명백하게 위반했는데도 말이다.

청와대가 이렇게 금산법 개정안과 관련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를 분리해서 대응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대체로 삼성과 재경부 등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진다.

사실 '이건희(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삼성카드는 그리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건희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에버랜드 주식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금산법을 위반한 삼성카드의 의결권을 제한하더라도 지배구조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경우 금산법을 적용해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초과취득한 주식을 처분하라고 한다면 삼성에 치명적일 수 있다. 즉, 현재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지분 7.25% 중에서 5%만 의결권을 인정하거나 5%의 초과분인 2.25%를 매각해야 한다면 삼성의 지배구조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올해의 '삼성국감'을 주도하고 있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금산법의 취지는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순환출자의 핵심인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소유는 인정하면서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은 시간을 두고 처분하는 것이 옳다고 한 것은 법 취지에 전혀 맞지 않은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삼성엔 너무나 '친절한 청와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지난 9월 27일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이 "삼성과 정부가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주문한 직후 여당 내에서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은 분리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와대의 금산법 검토의견도 그런 분위기의 연장선상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금산법을 위반했고, 이를 재경부나 금융감독위원회가 방치해왔다는 점이다.

항간에 '삼성에 친절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강조해온 것처럼 법과 원칙, 상식에 따라 '삼성문제'를 처리해야 할 것이다. '시장'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또한 그것이 대다수 민초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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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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