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없는 '만해제' 유감

유명 연예인 공연에 치중된 만해추모공연, 아쉽다

등록 2005.10.07 15:26수정 2005.10.08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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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제가 열리고 있는 6일 오후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박철마을) 만해 생가는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했다. 생가는 '만해제'와는 무관한 듯 일상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만해제가 열리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선전물인 '만해제 포스터'가 관리사무실 벽 한 면에 붙어있다.
만해제가 열리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선전물인 '만해제 포스터'가 관리사무실 벽 한 면에 붙어있다.안서순
지난 겨울, 쓰러져 가던 생가 울타리가 행사를 앞두고 말끔하게 다시 세워졌고 잦은 비로 질척거리던 안마당에 잡석을 조금 깔아 둔 것이 눈에 띌 뿐이다. 만해 생가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인 듯했다. 여간해서는 어디에도 '만해제가 열리고 있다'는 흔적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생가 뒷편에 자리한 만해사(卍海祠)에 '노무현 대통령'이 보냈다는 표찰을 달고 있는 조화와 '만해제'를 기념한다는 현수막 그리고 관리사무실 한쪽 벽에 붙은 만해제 포스터마저 없었다면 무심히 찾은 관광객으로서는 만해제가 열리는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일 게다.

만해사에 대통령이 보낸 조화와 현수막이 걸려있다.
만해사에 대통령이 보낸 조화와 현수막이 걸려있다.안서순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 만해제에 맞춰 만해 생가 뒷산에 세운 민족시비공원도 취재하는 기자의 인기척에 놀란 청솔모 한 마리가 꼬리를 세우고 달음질 하는 모습만 보일 뿐, 관광객들은 그림자도 없다.

지난 4일부터 시작해 9일까지 계속되는 만해제 대부분의 행사는 생가가 아닌 홍주종합체육관이나 홍주문화회관 등 시내지역에서 열리고 있었다. 행사 주최 측은 "만해생가 지에는 큰 행사를 치를 만한 시설과 공간이 없어 대규모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사정이 그렇다니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행사의 내용이다. 행사는 그의 이름을 빙자한 '오락회'가 판을 쳤다. 거액을 들여 연예인들을 불러 모아 젊은 가수들의 노래와 현란한 몸동작에 맞춰 청소년들이 따라서 아우성 치는 광란의 밤을 연출하는 것이 '만해추모공연'이었다. 만해는 이 음악 공양에 흡족해 했을까.

복원된 생가에서 유품 전시 등을 하고 있으나 찾는 발길은 뜸하다
복원된 생가에서 유품 전시 등을 하고 있으나 찾는 발길은 뜸하다안서순
홍성군이 '만해제'를 위해 세운 예산은 6000만 원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연예인 초청 등에 들인 비용은 본행사보다 3분의1이나 많은 9000만 원이나 된다. 그렇다고 만해제 행사 전부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만해 백일장과 만해 문학의 밤, 만해청소년 시인학교 같은 격조 높은 프로그램도 있다.

다만 곁두리 행사인 연예인 초청 음악회에 2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 아우성을 치며 온몸을 불사르는 데 비해 본행사는 마치 '연예인 공연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준비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초라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해제 중임에도 인적이 없어 적막하기까지한 생가와 주변
만해제 중임에도 인적이 없어 적막하기까지한 생가와 주변안서순
이 행사에 참석한 조모씨(37, 대전시 선화동)는 "평소 만해를 흠모해 만해제가 열린다고 해서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을 데리고 왔는데 만해를 기리는 행사보다 연예인 행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다"고 말했다.

길준용씨(46, 서산여고.역사교사) 역시 "한 마디로 만해는 간 곳 없고 천박한 예술만 판을 치고 있다"며 "만해를 이런 식의 행사에 파는 것은 대단히 불경스런 일이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행사를 주최한 홍성문화원은 "원래 만해제는 독립적으로 치러졌는데 지난해 내포문화축제가 만들어지면서 그 행사의 일부로 편입되어 변질된 형태로 치러지는 감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행사 후 그런 문제가 지적되어 차후부터는 만해를 중심에 두는 행사가 되도록 대폭 수정되는 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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