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의 고달픔과 아름다움

박소영의 독서 이야기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등록 2005.10.09 09:35수정 2005.10.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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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표지<밥벌이의 지겨움>

책표지<밥벌이의 지겨움> ⓒ 생각의 나무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김훈의 허무주의 세계관에 동조하는 나로서는 그의 두 번째 세설 (世說)을 읽지 않을 수 없다. 희망없이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김훈은 솔직하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 서문에서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이제 묶는 조각글들은 이 물가에 살면서 내 영세한 생계를 버티어내기 위해 쓴 것들이다. 본래 그러한 것들을 향해 입을 벌려 지껄일 필요는 전혀 없을 터인데, 나는 일삼아 지껄였고 지껄일수록 가난해졌으니 불쌍하다. 나여, 어째서 늙은 강물 옆에서 침묵하지 못하는가.

다양한 글들이 수록된 이 책에는 짧은 칼럼을 비롯해 거리 곳곳을 누비며 현장을 스케치 한 기사들과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선 이후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기, 평론과 대담 등이 함께 실려 있다.

그의 솔직하고 당당한 문체는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다른 길이 보여도 발이 그쪽으로 가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지금도 원고지에 연필로 쓴다. 몸으로 밀고 가는 느낌이 없으면 못 쓴다. 더디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그게 좋다.

위 글은 남재일 기자와의 대담에서 그가 밝힌 글의 생성과정이다. 짧은 전업작가 경력으로 산문 미학의 정점에 들어섰다는 평은 녹록지 않는 그의 이러한 특이한 글쓰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소한 인간들이 치고 박고 벌이는 세상싸움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글을 읽다보면 남성적인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모든 저무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을 가지런한 사유로 풀어낼 때면 아름답기 그지 없는 여성적 글쓰기를 만나게 된다.

전작 '칼의 노래'에서와 같이 그는 한결같이 희망없이 살아가는 꿋꿋함과 지나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허무함 속에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펼쳐 놓는다.

그것들의 개별적 목숨도 종족의 영원성 속으로 소멸하는데, 이 소멸 안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어 본래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을 완성하는 업의 두려움과 아름다움, 그 허무와 환희, 비통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중략) 그러나 망가진 사람들의 내면에 끝끝내 망가질 수 없는 부분들은 여전히 온전하게 살아 남아 있었다. 뿌리 뽑히고 거덜난 삶속에서 삶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늘 눈물겹다. 고난에 찬 삶을 통해서 말 없는 실천에 도달한 그들의 삶은 성자의 삶처럼 보였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곧 밥벌이의 어려움, 힘듦을 일컫는다. 우리의 밥은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통한 노력의 증거물로 환치된다. 밥벌이를 위한 노동은 인간을 차갑게 분류한다. '뭘 해 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말은 운명에 투항하며 영혼이 말라가는 우리의 참모습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밥을 먹고 구해야한다. 눈물겨운 밥을 먹기 위한 세상과의 불화가 도리없는 우리들의 '살이'이다. 삶의 고난을 느끼는 자. 권태롭게 길들여진 밥나르는 가장들은 '김훈'과 마주하라.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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