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김치 얻어 먹으니 한국 같네요

이웃 사는 조선족 언니에게서 김치를 얻었습니다

등록 2005.10.11 17:27수정 2005.10.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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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친근한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마음이 든든해지는 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 옆동에는 조선족 유언니(35)가 살고 있습니다.


지난 기사에 언급했던 '란위엔쥐엔(35)'은 한족이기 때문에 그동안 공부한 것과 알고있는 중국말을 이리저리 활용해 대화를 나눠야 했기에, 말이 막힐 때가 많아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반면 조선족인 유언니와는 결혼 후 이곳에 와서부터 알던 사이이고 또 한국사람들과 오래 생활한 탓에 거의 한국사람이나 다름이 없어 얘기 나누기가 아주 편하답니다.

유언니는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 벌써 10년 넘게 다니고 있습니다. 언니의 남편 역시 같은 회사에 다니며 맞벌이를 합니다. 그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고향인 동북 길림성이 아닌 이곳 광동에 집을 장만하여 살고 있습니다.

가까이 살긴 하지만 유언니가 회사에 다니는 이유로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처음 언니를 만났던 해에는 직설적인 말투에 상처를 받은 적도 있지만 결코 악의는 없는 사람임을 알기에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경지가 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집에서 여느 때와 같이 큰딸 소연이와 놀아주고 있는데 유언니에게서 믹서기를 빌려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둘째아이가 자고 있던 터라 소연이만 데리고 믹서기를 들고 나가려는데 벌써 엘리베이터 앞에 유언니가 와 있었습니다. 바깥 바람도 쏘일 겸 소연이랑 언니네 집으로 갔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니 생강이며 마늘향이 진동을 하였습니다. 김치양념을 갈다가 믹서기가 고장난 듯했습니다. 둘째를 재워놓고 온 터라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믹서기를 다 쓸 때까지만 있다가 다시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혹시나 잠깐 사이 둘째가 깨서 울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며 집에 왔는데 다행히 둘째는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저녁때쯤이 되니 하루종일 바빴을 유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은화씨, 내가 김치를 많이 담갔거든. 내가 가지고 갈까? 아님 놀러올래?"
"일요일날 쉬지도 못하고 힘들게 담갔는데 저 줄 김치가 있어요?"
"넉넉히 담았어. 은화씨 이사 오기 전 같으면 주기도 힘든데 가까우니까 좋네 뭐."
"알았어요. 애들이랑 갈게요."

얻어먹는 주제에 오라가라 하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또 놀러도 갈 겸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언니집으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째가 자꾸 보채는 바람에 김치통에 담긴 김치를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녁을 먹기 전이라 배도 고프고 해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김치통 뚜껑을 열어보니 빨갛게 양념된 김치가 척 보기에도 너무 맛있어 보였습니다.


a 얻어온 김치, 저녁 먹으며 뚝딱 다 먹었습니다.

얻어온 김치, 저녁 먹으며 뚝딱 다 먹었습니다. ⓒ 전은화

접시에 한 포기 덜어서 밥 한 공기 떠놓고 손으로 쭈욱 찢어가며 먹으니 정말 꿀맛이 따로 없더군요. 꼭 한국에서 먹던 김치 같았습니다. 직접 담가 먹은 김치는 늘 맛이 없어서 그냥 푹 익혀 찌개끓여먹기가 일쑤였는데 손맛좋은 언니한테 얻어먹는 김치라 그런지 한 포기를 순식간에 먹어버렸습니다. 다음날 김치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언니 김치 너무 잘 먹었어요. 근데 김치양념에 뭘 넣어서 그리 맛있어요?"
"그때 은화씨 본 게 다야. 마늘, 생강, 배, 양파, 뭐 남들 하는 거랑 똑같애. 맛있게 먹었다니까 좋네. 사실 다른 때보다 정성을 더 들였더니 우리 신랑은 어디서 사왔냐고 하지 뭐야."

입맛 까다로운 언니는 남편 칭찬 받은 이야기를 하며 무척 기분 좋아했습니다. 솜씨좋은 언니가 은근히 부러웠습니다. 김치 할 때가 되었는데 저도 흉내 한 번 내봐야겠습니다. 그 맛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음식맛은 정성이라 하니 애들 옆에 앉혀 놓고 정성 한 번 들여봐야겠습니다. 맛있게 먹었던 김치 맛엔 양념의 비결이 가장 컸겠지만, 듬뿍 담아준 이웃의 정이 첨가되어 더 맛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친근한 이웃이 있다는건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친근한 이웃이 있다는건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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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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