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을 맛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등록 2005.10.13 15:31수정 2005.10.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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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한비야를 만난 건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 4권)과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등을 통해 만났다. 처음 책을 통해 그녀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열정 그 자체였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여자, 그 누구보다 강한 열정이 그녀와 그녀가 내 놓은 책으로 많은 사람들을 반하게 만들었다.

몇 년 동안 그녀를 잊고 다른 작가들의 책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녀의 책들이 내 장서 목록에 있나 살펴보니 딱 한 권 <중국 견문록>이 꽂혀 있다. 대부분 책들을 빌려 읽었기 때문이리라.


중국견문록의 첫 장을 열어보니 7년에 걸친 세계 일주와 국토 종단을 모두 끝낸 뒤 새삼스럽게 중국어를 배운답시고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서 설렘 가득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나온다.

'...자기 전에 내일 수업 준비를 한다. 책가방에 교재, 사전, 공책을 넣고 샤프연필이랑 색연필, 지우개도 챙겨 넣었다. 학원증도 챙겼는지 다시 살펴본 후 잠자리에 들었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이 말똥말똥하다. 기분이 무지무지 좋다...'

늦깎이 학생이 된 한비야의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a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책표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책표지 ⓒ 푸른숲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이제까지 내놓았던 그녀의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한비야 하면 아직도 사람들은 '바람의 딸' 오지여행가를 떠올릴 것이다. 이제 그녀는 긴급구호요원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변신의 귀재요 열정의 화신인 그녀가 긴급구호요원이 된 것은 벌써 5년 전이다. 세계 오지 여행을 하는 가운데 '설사같이 시시한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는 데 필요한 건 링거 한 병, 그 한 병이 단돈 800원이라는 사실을 오지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아프리카 중동으로 계속 여행하면서 그런 아이들을 직접 돕는 사람들과 단체를 보고 마음이 조금씩 끌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국제 홍보를 전공한 그녀이기에 국토 종단까지 마친 직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물음에 '국제구호단체에서 난민을 돕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국제구호단체 회장 전화였다.

긴급구호팀장으로 출발! 하지만 '초짜'였던 그녀는 처음부터 가나다라를 배우는 마음으로 20년 이상된 베테랑들에게 배워야 했다. 하지만 기죽을 그녀가 아니다.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으리라 보고 시작! 지금은 베테랑이 되어 있다. 5년 동안의 긴급구호요원 경험을 토대로 일곱 번째 책인 이 책을 내놓았다.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다. 새로운 일을 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역시 그녀다운 대답이 나온다.

'80년, 사람의 인생을 하루라고 친다면 그 절반인 마흔 살은 겨우 오전 12시, 정오에 해당한다. 그러니 사십대 중반인 나는 이제 점심을 먹은 후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에 와 있는 거다. 아직 오후와 저녁과 밤 시간이 창창하게 남았는데 늦기는 뭐가 늦었다는 말인가. 뭐라도 새로 시작할 시간은 충분하다. 하다가 제풀에 지쳐 중단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한비야는 지도 밖에서 행군하면서 구호단체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우리를 눈뜨게 한다. 구호의 세상은 우리가 아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학교나 사회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건 무한경쟁의 법칙, 정글의 법칙이라 배운다. 이런 세상에서 생존법은 딱 두 가지, 이기거나 지거나 먹거나 먹히거나다.

그러나 구호의 세상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세상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녀는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에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한비야가 지금까지 다녀온 국가는 모두 93개국. 구호요원이 된 뒤 찾아간 나라들은 이 가운데 20여 개 국. 1년에 3개월 이상은 의무적으로 재난 현장에 가 있어야 하는 그는 서울에 있는 지금도 항상 48시간 대기체제를 유지한다. '48시간 대기'란 월드비전에서 현장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곧 바로 지원물자 등을 챙겨 48시간 내에 떠나야 하고, 그곳이 아시아지역이면 그 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세상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나눔과 사랑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듯이 생명의 반대말 또한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는 나눔의 삶, 사랑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게 하는 일화가 있다.

"작년에 한정된 구호 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 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었음에도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구호는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랑의 총알이라는 구호 자금이 있어야만 된다.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에 처음으로 가기 전 한 아이에게서 카드와 함께 꽉 채운 저금통을 받았는데 카드에 적힌 사연은 기도문 형식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 이제 저는 그만 돌봐주시고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돌봐주세요."

한비야는 가끔 이 아이의 글을 생각할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고 했다. 사십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는 그를 만나기 위해선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런 강촌에서 전염성 풍토병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있는 것을 본 한비야는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새장 안에 안주하지 않고 '새장 밖'의 삶을 살고 있는 한비야의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 그 생생한 삶의 현장성과 열정이 일구어낸 그녀만의 살아 퍼덕이는 삶의 그 등푸른 역동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개인적 삶의 차원을 뛰어 넘어 세계를 향해 나눔과 사랑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보여 주는 열정의 화신.

새장 밖에서 훨훨 날아오르며 오늘도 자신을 움직이는 그 열정의 정체에 자신을 던져 넣어 기꺼이 자신을 소진하면서 열정을 전염시키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바람(wind)의 딸'에서 '바람(hope)의 딸'로 거듭난 한비야, '나는 지금 두 번째 삶에 온통 마음이 끌려 있다'고 말하는 그녀를 통해 다시 한 번 내 열정에 불을 지핀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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