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전경련, 대한상의 등 5개 기관은 공동으로 초중고 경제관련 교과서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오마이뉴스 박수원
"영국의 실업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풀 몬티'는 세속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이라 교육적이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례로 대체해야 한다." (사례 1)
"1995년에는 국민소득이 1만 달러( 1인당 국민소득으로 수정되야 함)" (사례2)
"포스코(POSCO)는 초중고 경제 교과서에서 여전히 포항제철"(사례3)
"시장은 사람이 아닌 돈이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일 수 밖에 없다. (주관적이고 부적절한 평가이므로 삭제 필요)" (사례4)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KDI경제정보센터 등 5개 기관이 공동으로 학계에 의뢰해 초·중·고등학교 경제 관련 교과서 검토 결과 수정 요구한 사례들이다.
이같은 검토 자료는 잘못된 서술과 개념상의 오류를 바로잡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중립적인 시장경제 원리만을 강조해 결과적으로 친(親) 기업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경부는 "지난 3월 학생들이 시장경제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경제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현행 경제교과서의 내용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면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교과서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 5개 기관이 교육부와 협의해 초중고 경제교과서 분석 작업을 추진했다"고 사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재경부, 한국은행, KDI경제정보센터를 제외한 대한상의, 전경련은 경제 5단체의 핵심으로 시장 경제 관점에만 중심을 두고 있어 수정 요구 내용 역시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5개 기관은 초중고 경제관련 교과서 114종(지도서 포함)을 대상으로 6개월간의 연구와 내부 토론을 거쳐 초등학교 교과서 64건, 중학교 교과서 87건, 고등학교 295건으로 총 446건의 내용을 지적했다.
이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개념상의 오류 또는 서술의 부정확이 200건 ▲부적절한 사례와 통계 제시 89건▲복잡한 경제현상을 과도하게 단순화 58건▲편향적 시각 또는 비주류적 해석 23건 ▲시장경제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는 서술 19건▲주관적인 훈계, 윤리적 내용 26건 ▲교과과정상 어렵거나 부적절한 경우가 31건이다.
친기업 교과서 바라는 전경련 "돈이 필요하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초·중·고등학교 경제 관련 교과서 검토를 진행한 5개 기관과 관련 교수들은 14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KDI 대회의실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을 진행했다.
고등학교 경제분야 교과서 내용을 검토한 건국대 권남훈(경제)교수는 "흠을 잡기는 쉽지만 대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면서 "경제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 개념이 정확하지 않고, 경제와는 동떨어지게 윤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전반적으로 짜임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명지대 조동근(경제)교수는 "경제 교과서를 살펴보면 기업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업의 환경 파괴, 자원배분의 왜곡 등 적절치 못한 서술들이 많다"며 "교과서 내용이 반기업 정서를 만들고, 평등지향적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교과서도 경쟁을 통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경제정보센터의 김진영 팀장은 "제3의 길처럼 설익은 논의들이 경제 관련 교과서에 설파되고, 경제 주체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강조했다"며 "이데올로기적 접근 내용은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종호(사회교육) 서울교대 교수는 "교육과정 지침이 경제 교과에 사회통합적인 관점을 부여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이 때문에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원리에 대한 교육보다는 수정자본주의나 분배적 정의만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5개 기관의 연구 결과에 대해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5개 기관이 경제 교과서 분석을 통해 100%의 성과를 낸 것 같다"며 "전경련이 목마르게 원하는 것은 경제 교과서 내용을 객관적으로 만들고 경제과목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중 전무는 "고등학교에서 경제의 기본 개념만 알리면 되지 왜 거기에 이상한 개념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며 "전경련은 돈이 필요하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5개 기관 교과서 연구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 작업을 주도한 재경부 교육홍보팀 진승호 과장은 "교육자원부와 논의한 결과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교과서 집필진과 혐의해 2006학년도 교과서 내용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논의에 대해 중학교 교과서 집필자이기도 한 전국사회교과모임의 권태덕 교사는 "가르치는 교사가 이론적인 면에서는 뒤처질 수 있고 또 한편으로 학자들의 지적이 맞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가치 지향적인 '경제'에서 가치를 빼고 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가치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사는 자신이 집필한 교과서에서 '과소비'를 뺄 것을 경제단체로부터 요구받은 사례를 소개하며 "일상적인 용어마저도 학문적 개념을 내세워 삭제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집필자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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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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