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전화했어, 가을바람이 너무 좋아서"

교사가 들려주는 '행복학 강의'

등록 2005.10.15 11:01수정 2005.10.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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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 산책길에서

가을 산책길에서 ⓒ 안준철

가을은 나에게 특별한 계절이다. 밥이 맛있으면 많은 반찬이 필요 없듯이 나는 가을이 되면 아무런 소망도 품지 않게 된다. 그냥 가을의 스산함에 몸을 맡기면 된다. 가을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인 것이다. 가을이 되면 왜 행복할까? 몸이 싫어하는 무덥고 지루한 여름을 벗어났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소극적인 탈피만으로는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뭔가가 더 있다. 말하자면 어떤 사무침 같은 거. 사무치게 그리워야 임을 만나도 행복할 것이 아닌가. 사무침이 깊으면 시도 길어질 까닭이 없다.

이 가을에
어딘가를 끝없이 걷고 싶다

하지만 어디쯤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편이 더 사무칠 지는… -시, <가을> 모두


a 가을 산책길에서

가을 산책길에서 ⓒ 안준철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아이는 점심시간에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퇴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담임을 직접 찾아오지 않고 문자를 보낸 것은 조퇴를 할만한 사정이 아닌데 한 번 봐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경우 나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지만, 학교에 있기 싫어하는 마음이 커가는 것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해하고 안아주되, 근본적으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전화를 했던 것이다. 신호음이 가고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담임선생님. 지금 어디냐?"


"안녕하세요? 저 지금 집에 들어가는 중이에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응. 그냥. 그냥 했어. 지금 동천으로 산책 나왔는데 가을바람이 너무 좋다. 너 집에 들어가기 전에 꼭 이 가을바람을 느끼고 들어가도록 해라. 그리고 행복하고…."
"예? 예…"

"여름에는 어서 가을이 왔으면 하잖아. 그럼 가을이 왔으니까 가을을 느껴야지. 언제 가을이 왔다 가는지 모르고 지내면 네 손해잖아. 그래서 전화한 거야. 이 말하려고. 네가 행복했으면 해서."
"예에. 고마워요, 선생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조퇴를 청하여 거리를 배회하다가 늦게야 귀가하는 아이에게 가을을 느끼고 집에 들어가라니! 이건 숫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아닌가? 라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런 위험천만한 말을 듣고도 아이의 목소리가 더욱 밝아지고 차분해진 것은 어찌된 조화일까?

내가 아이에게 해준 말은 사실은 그날 반 아이들에게 종례사항으로 전해준 말이기도 했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분위기를 잡은 뒤에, '종례 끝'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총알처럼 달려갈 태세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오늘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꼭 세 번 이상 쳐다보세요. 요즘 저녁노을이 정말 아름다워요. 그리고 지금 가을이잖아요. 날씨가 추워졌다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가슴으로 가을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종례 끝"

a 가을 산책길에서

가을 산책길에서 ⓒ 안준철

나는 가끔 악수 종례를 한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달사항을 전해주는 그런 의례적인 종례시간을 한 번쯤 배반하고 싶어서 만든 나만의 종례방식이다. 그날은 아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종례를 대신한다. 악수를 나누며 아이들에게 은밀히 건네는 말이 말하자면 종례사항인 셈이다. 바로 이말.

"행복해야 돼!"

나는 왜 아이들에게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라고, 지각을 하지 말라고, 거리를 배회하지 말고 곧장 집에 들어가라고 그런 중요한 얘기는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행복하라고 말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행복해지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방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지금 행복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행복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지 못한 탓이 아닐까? 물론 그 주범은 오로지 점수만능의 입시교육이다.

시적 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좋은 시를 쓸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행복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덜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가령, 석양 무렵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삶이 팍팍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색채에 대한, 혹은 행복에 대한 감수성을 학교 교육을 통해서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a 가을 순천만

가을 순천만 ⓒ 안준철

이 세상의 물질주의가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자라나는 어린 세대에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그릇된 환상을 심어준 일일 것이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행복은 곧 돈이라는 등식을 마음속에 이미 그려놓은 지 오래다.

그것은 아파트 평수가 넓어지면 그와 정비례해서 행복해지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어른들 탓일 수도 있다. 무상으로 주어지는 행복의 원천을 모두 다 막아버리고 오로지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행복만을 찾아나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언젠가 수업을 하다가 공부하기 싫어서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엉뚱하게도 아내의 배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분만의 흔적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다.

"하나의 작은 생명이 열 달 동안 엄마의 배 속에서 커가면서 엄마의 배도 그만큼 부르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데 나중에 엄마의 배는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푹 꺼지겠지요. 그런데 생명이 커가면서 뱃살이 늘어났던 흔적이 거의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아요. 마치 살이 튼 것처럼 피멍이 진 자국들이 남아 있지요.

그런 고통을 지불하고서 여러분을 낳으신 거지요. 엄마가 여러분을 배 속에서 키운 열 달은 여성으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이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해요. 고통과 행복은 이렇게 늘 같이 있어요. 공부하기 싫다고 안 해버리면 보람이 없고 보람 없는 삶이 여러분을 불행하게 만드는 거예요."

교사의 일상적인 잔소리가 아닌 일종의 '행복학 강의'를 자주 듣는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기고한 글을 조금 깁고 보탰습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기고한 글을 조금 깁고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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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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