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생님이 운동장을 돌아요?"

지금 사흘째, 우리 반 교실은 천국입니다

등록 2005.10.08 08:36수정 2005.10.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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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인격'

아침 조회 시간,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큰 글씨로 두 단어를 적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을 해주고 싶어도 우선 아이들의 시선을 모으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전날 모종의 사건으로 저를 바라보는 반 아이들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저는 정말 오랜만에 목청을 높이지 않고도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집단을 통솔하거나 다스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두려움을 심어주거나 인격을 키워주거나 하는 것이지요. 군대는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집단을 통솔하는 가장 좋은 예지요. 학교도 하나의 집단이기 때문에 군대식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면 빠르고 효율적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학교는 군대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군대와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군대는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학교는 학교의 안전이나 명예보다는 여러분 개인의 인격 성장을 위해서 존재하지요. 선생님이 매로 여러분을 다스리면 여러분은 매가 두려워 우선 말을 잘 듣겠지만, 그러다보면 여러분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인격을 키울 수 없게 되지요. 선생님이 십 년 넘게 매를 들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에요. 어제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매를 대려다가 대신 선생님의 손바닥을 내려친 이유도 그렇고요."

아이들은 참 단순합니다. 아니, 어리석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두 번 해준 것이 아닌데도 그때마다 귓가로 흘리기만 하더니 제 담임이 매를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니 말입니다. 만약 그런 엽기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도 아이들은 제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옆 아이와 손장난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하루 사이에 저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려다준 아이들이 말입니다.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며칠 동안 지옥에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의 지옥이지요. 이런 지옥의 경험은 아마도 아이들을 두려움이 아닌 인격으로 대하려는 교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말과 진실이 통하지 않는 공간. 저는 이곳을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싶은 마음 외에 학생들을 지도할 다른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말과 진실이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왜 아이들은 말로 하면 듣지 않는 걸까? 왜 인격적인 만남을 낯설어 하는 걸까? 왜 아이들은 자꾸만 강제에 길들여지는 걸까?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퇴근 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이런 생각만 머리에서 맴돌아 결국에는 아내의 지청구를 먹고서야 제 정신이 드는 그런 상태가 며칠 째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 길에 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두 아이를 보았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으니 지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8시 30분부터 아침 자율학습이 시작되는데 그 두 아이는 8시 40분에 학교에 온 것입니다. 8시 50분에 시작하는 아침 조회나 정규 수업시간도 아니고 자율학습 시간에 10분 늦게 온 죄로 하루 종일 교사와 학생들이 오고가는 교무실 복도에서 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납득이 되지 않는 행위를 불현듯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은 월말 통계를 내기 위해 출석부를 점검하고 난 뒤였습니다. 학기 초에 비하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방황과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몇 아이들로 인해 지저분해진 출석부가 우울한 심사를 자극하던 터에, 마치 눈부신 설원처럼 희고 깨끗한 옆 반 출석부를 우연히 보게 된 것입니다. 옆 반은 같은 여학생 반으로 여러 조건이 우리 반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기에 제가 느끼는 열패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 날, 두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수업을 빼먹고 학교를 나갔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들어왔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아이들에게 지저분해진 출석부를 보여주며 심장을 쥐어뜯는 심정으로 간곡하게 얘기를 한 뒤여서 무단 결과를 한 두 아이에 대한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인가 싶었습니다. 저는 종례 시간 교실에 들어가 두 아이를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제 손에는 매가 들려 있었습니다.

"오늘 매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억울해서 매를 들지 못하겠다. 나도 인간이고 너희들도 인간인데 왜 말로는 안 된단 말이냐? 아무래도 나는 너희들에게 존경받는 교사는 아닌 것 같다. 존경 받지 못하는 교사는 제자를 때릴 자격이 없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너희들이 잘못하면 내가 대신 맞겠다. 그럼 내가 나를 어떻게 때릴까? 이렇게 허공에 손을 놓고 때리면 아프지 않으니까 손을 교탁에 놓고 이렇게 내려치겠다. 이런 강도로 열 대를 때리겠다. 그리고 내일부터 그럴 만한 사정이 없이 무단 지각을 하면 한 사람당 운동장 열 바퀴를 돌겠다."

그렇게 말하며 내려친 매에 손이 얼얼했지만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제게는 그 순간 몇몇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제 담임 하는 꼴이 우스꽝스러웠던지 키득키득 웃는 아이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 한 아이가 다음 날 지각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약속한 대로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이목도 있고 해서 방과 후에 뛸 생각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모임이 있어서 점심시간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동장을 두 바퀴째 돌고 있는데 한 아이가 저를 가로막았습니다. 지각을 한 장본인입니다. 제가 달리기를 멈추지 않자 함께 달려오면서 따지듯이 말을 쏩니다.

"왜 제가 잘못했는데 선생님이 운동장을 돌아요?"
"내가 그런다고 했잖아."
"말도 안 돼요."
"그럼 내가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니?"
"앞으로 잘 할 게요. 그러니까 그만 뛰세요. 그러다가 선생님 쓰러져요."

"열 바퀴는 금방 뛰어. 너도 함께 뛰든지 아니면 저리 가서 있든지 해."
"앞으로 잘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푸세요."
"그래. 고맙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지. 너도 약속 꼭 지켜."
"아이 참 선생님, 그만 뛰시라니까요. 선생님 연세를 생각하셔야죠."
"나 아직 팔팔해. 하지만 내일부터는 안 뛰게 해줘."

그렇게 아이를 뿌리치고 일곱 바퀴 채를 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번에는 대여섯 명이나 되는 녀석들이 저를 가로막더니 숫제 허리 부근으로 손을 집어넣어 저를 불끈 들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들려져 운동장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도 아이들과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왜 선생님이 운동장을 돌아요?"
"그럼 어떻게 해? 너희들이 선생님 말을 안 듣는데."
"그럼 우리를 벌하시면 되잖아요."

"너희들에게 벌을 주면 벌을 주는 선생님 마음 너희들이 이해해? 요즘 선생님이 화를 좀 냈더니 너희들 잘못한 것은 생각 안하고 선생님이 다혈질이라며? 내가 가슴이 찢어지도록 얘기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샜잖아. 이제 우리가 만날 날도 몇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라도 해서 너희들 철들게 해야지 어떡할 거야?"

"그래도 이러지 마세요. 저희들이 앞으로 잘 하면 되잖아요."
"그래. 그럼 됐어. 선생님도 촌스럽게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 지금 너희들 얼마나 고맙고 예쁜 줄 몰라. 정말 고맙다. 이제야 내 새끼들 같다."

지금 사흘 째 우리 반 교실은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말과 진실이 통하는 공간, 저는 이 곳을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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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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