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명품 쇼핑만 하신다구요?

만 원 한 장으로 장바구니 채울 수 있는 홍콩 재래 시장

등록 2005.10.18 18:58수정 2005.10.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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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얼마 전부터 저는 하루에 한 번씩 재래시장에 갑니다. 집 가까운 곳에 대형 백화점과 슈퍼마켓이 있긴 하지만 생선과 야채의 신선도나 저렴한 가격으로 따지자면 재래시장이 단연 최고이기에 요즘은 좀 귀찮아도 하루에 한 번씩 들르곤 합니다.


또 주말이면 남편과 같이 아이 손을 잡고 재래시장 쇼핑을 나가는데 아이에게도 이만한 산교육 장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무 양동이에서 헤엄치는 생선들, 펄떡이는 새우,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개구리 등은 여지없이 딸아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니까요.

좀 지저분하고 시끄러워서 쇼핑하는 데 불편함은 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홍콩의 재래시장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는 점이 저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주인에게 말만 잘 하면 깎아도 주고, 덤도 주고, 게다가 파장시장이면 그야말로 떨이 가격에 횡재를 할 수도 있다는 점 역시 많은 주부들의 발걸음을 잡아끄는 장점이겠지요.

자, 그럼 홍콩 재래시장을 한 번 둘러볼까요? 먼저 시장 입구 길가에 늘어선 상점들부터 구경합니다. 보이는 모양새가 우리네 재래시장과 아주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도로가 너무 비좁다는 것, 좋은 점은 잡아끄는 호객 행위가 없어서 둘러보기 편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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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정육 코너는 대부분 위와 같은 모습입니다. 한여름에는 고기가 상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저는 주로 백화점을 이용했습니다. 조금 더 위생적으로 관리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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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닭이랑 오리 등을 바비큐로 해서 잘라 파는 가게입니다. 처음 저 광경을 보고는 기절할 듯이 놀랐습니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된 탓인지 자꾸만 얼굴을 돌리게 되지만 홍콩 어느 곳을 가도 예외 없이 모두 저런 모양으로 닭, 오리를 걸어둡니다. 하지만 맛은 아주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통닭집이 흔한 것처럼 홍콩에선 바비큐, 훈제 구이를 파는 집이 흔하더군요. 손님이 원하는 만큼 잘라서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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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도로변의 과일 상점입니다. 홍콩의 과일 가게는 언제나 저렇게 빨간 등을 켜 놓습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하려는 의도겠지요. 과일은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판매하는데 저는 아직까지 재래시장에서 전자저울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대부분 한 쪽 끝에 추를 달아서 수평을 맞추는 식의 저울을 사용하지요.


심지어는 병원에서 아이들 몸무게를 잴 때에도 그런 추가 달린 저울을 사용해서 웃음을 참느라 혼난 적도 있습니다. 홍콩의 재래시장 내부는 대부분 정육, 해산물, 야채·과일, 건어물 이렇게 네 코너로 크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생선가게부터 구경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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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제가 사 온 생선이에요. 껍질과 살은 아구처럼 부드럽고 쫄깃하면서 가운데 알이 큼지막하게 들어찬 생선이에요. 벽돌만한 크기의 덩어리 2점을 고르니 58불(약 6500원)이 나옵니다. 매운탕을 끓였더니 제법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 나더군요.

생선 부산물인 생선알, 창자 등은 따로 분류해서 판매하므로 필요하면 따로 주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생선은 마리 수에 따라 계산하는 경우도 있고, 파운드 단위로 계산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 점 역시 미리 주인에게 잘 물어봐야 낭패를 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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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홍콩은 한국에 비해 특히 새우와 조개, 게 등이 싱싱하고 가격이 무척 저렴합니다. 싱싱한 왕새우가 하도 펄떡 펄떡 뛰는 바람에 상점 주인은 손님과의 흥정 중에도 새우를 주워 담기 바쁘더군요. 그래서 시장에 갈 때에는 가장 허름한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새우며 생선들이 튕겨내는 물에 옷이 젖기 십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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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딸아이가 기대했던 개구리입니다. 커다란 남자 어른 손 크기의 개구리들이 커다란 바구니에 담겨 있어요. 아이와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시간은 영락없는 자연시간입니다. "엄마, 이건 뭐예요? 어떻게 물에서 숨을 쉬죠?" 따위 질문부터 시작해서 "우리 저 개구리(식용) 데려다가 키워요"하는 주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묻고 답하니까 말입니다.

손님이 골라 주문하면 즉석에서 개구리를 손질해줍니다. 손질하는 과정을 직접 보기가 좀 뭣하긴 했지만 그래도 워낙 궁금해서 '참고' 지켜봤습니다. 보통 생선을 다듬는 과정과 같습니다. 커다란 칼로 목 부분을 내리쳐서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제거하더군요. 어떻게 요리해 먹느냐고 지나가는 홍콩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마늘과 생강을 저미고 굴소스와 물을 넣어 바특하게 졸여서 먹는답니다. 아주 맛이 있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던데요. 한 번 먹어 볼지 말지 요즘 고민 중인 요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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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눈에 익은 조기가 들어옵니다. 제사상에 올리는 크기의 조기 1마리와 그보다 조금 작은 것 합해서 모두 2마리에 18불(2500원 정도) 부르더군요. 우리나라 참조기 맛보다는 못하겠지만 아쉬운 대로 소금 뿌려 구워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2마리 사다가 냉동해 두었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저 조기를 생강과 다진 마늘, 파, 간장 그리고 약간의 기름을 넣은 후 주로 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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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게와 가재를 판매하는 가게입니다. 살아있는 게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노끈으로 다리를 잡아 매놓았습니다. 어른 손바닥 두 개 붙인 크기의 알배기 게가 하도 먹음직스러워서 사고 싶었지만 역시 좋아 보이는 것은 어디든 비싸더군요. 게 한 마리에 12000원 가량이라서 포기하고 사진에만 담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닭을 한 마리 살까 하고 닭집에 갔는데 아직도 닭장에 생닭을 두고 손님이 두면 직접 잡아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조류독감이 걱정스러워서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찍었습니다. 물론 닭을 사는 것도 포기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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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그리고 커다란 바지락을 한 바가지 가득 담아 13불(약 1700원)에 사고 무 커다란 것 반토막(3불), 콩나물 한 봉지(3불)를 사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만원으로 장바구니가 가득하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만 원 정도면 시장 바구니 가득하게 장을 볼 수 있는 곳이 홍콩에도 역시 있습니다.

'홍콩의 쇼핑'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이 '고급 명품, 화려하고 호화로운 쇼핑몰'이지만 실제로 평범한 홍콩의 주부들은 거의 다 재래시장을 이용하면서 '짠순이 쇼핑'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아껴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원칙은 세계 어디를 가나 다르지 않을테니까 말입니다.

같은 돈이라도 그 가치는 쓰는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돈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데 재래시장에 가면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만원으로 쇼핑이 가능한' 홍콩의 벼룩시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empas.com/happymc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블로그

같은 돈이라도 그 가치는 쓰는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돈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데, 재래시장에 가면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자주 가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http://blog.empas.com/happymc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블로그

같은 돈이라도 그 가치는 쓰는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돈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데, 재래시장에 가면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자주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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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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