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 스님이 그린 지장 보살도.오창경
예술적 재능은 열정과 노력에 의해서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완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산 스님의 재능은 본인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 발산된 경우였다.
젊은 시절 경험만 믿고 차렸던 사업이 부도나고 빈털터리가 되어 노숙자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그의 발길이 머문 곳은 그림 그리는 도구를 파는 화방이었다. 붓과 물감 등을 보자 몸 속에서 어떤 강렬한 욕구가 솟아올랐지만 붓 쥐는 법조차 모르던 그는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발길은 다시 화방에 앞에 가 있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림 그리는 재료를 사러 왔던 스님을 따라 나선 것이 탱화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산 스님은 본격적으로 탱화를 그리게 되면서 '괘불 탱화'를 그리겠다는 원을 세우고 요즘은 남해의 깊은 산 속 한 사찰에서 수행에 전진하고 있다.
스님이 되기 전에는 다부진 체격과 다소 험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조폭(?)으로 오해 받기가 다반사였던 지산 스님은 수행자가 된 이후에는 장난꾸러기 골목대장 같은 친근감 있는 인상으로 변했다.
"요즘에는 귀신들이 꿈 속에 나타나서 안 설치나, 전화도 없대이?"
우리 폐교에 들어서자마자 지산 스님이 우리에게 건넨 말이었다.
"스님이 그려 준 달마도 덕분인지 잘 지내고 있어요."
"내가 그 달마도 때문에 이렇게 안 왔나? 우리 신도들이 내가 그린 달마도가 인터넷에 나왔다고 하길래 봤더니만 여기서 <오마이뉴스>에 올린 것이더구만. 제선 엄마 때문에 내 요즘 신도들한테 달마도깨나 그려주고 있다 아이가. 뭐 그런 얘기를 써가지고…."
내가 지난 8월 <오마이뉴스>에 '한밤중 폐교괴담, 이보다 더 오싹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를 본 불자들 사이에 지산 스님의 달마도가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