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매카시가 중국의 우주선 쏘아올리다

[인물] 중국 우주과학의 아버지 첸 박사의 인생유전

등록 2005.10.21 11:11수정 2007.03.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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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국의 두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호가 12일 오전 9시(현지시간) 2명의 우주인을 태우고 창청(長征) 2-F 로켓에 실려 간쑤(甘肅)성 주취안(酒泉) 위성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중국의 두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호가 12일 오전 9시(현지시간) 2명의 우주인을 태우고 창청(長征) 2-F 로켓에 실려 간쑤(甘肅)성 주취안(酒泉) 위성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 AP=연합뉴스


a 중국우주과학기술의 비조 첸 박사

중국우주과학기술의 비조 첸 박사

지난 12일 2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발사, 115시간 30여분만인 17일 새벽 무사히 귀환한 선저우(神舟) 6호는 중국이 이제 본격적인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했음을 의미한다. 지난 2003년 선저우 5호에 이은 2년만의 재성공은 첫번째 업적이 단순한 '운'이 아니며, 중국의 우주과학기술의 기반이 탄탄함을 확실하게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3대 우주강국' 중국. 그 배경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의 매카시가 있다.

시간을 잠시 2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2003년 10월 15일. 베이징 종합병원의 한 병상에 누워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노인의 눈가에 조용히 이슬이 맺혔다. 텔레비전에서는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가 성공리에 발사됐음을 축하하는 TV 아나운서의 들뜬 목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환자의 이름은 당시 92세의 첸 쉬에선.(현재 94세로 아직 생존해있다.)

냉전시대를 통틀어 그처럼 영욕이 교차한 인생을 산 인물도 드물 것이다. 첸 박사가 은퇴한 지 이제 15년이 흘렀지만 박사는 여전히 중국우주과학기술의 아버지로 중국인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지난 1966년 중국이 자국의 영토에서 핵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성공리에 마치자 <뉴욕타임스>는 "첸 박사의 인생 유전은 냉전이 빚어낸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첸 박사의 옛 동료들은 "미국이 저지른 역사상 가장 멍청하고도 수치스런 과오가 바로 첸 박사를 추방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대체 지난 냉전 시절, 첸 박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매카시 광풍, 첸 박사를 강타하다


상하이에서 태어나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간 첸 쉬에선 박사는 MIT에서 항공역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MIT의 교수직을 역임한 그는 독일의 V2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 박사와 함께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미국우주과학기술계의 핵심 인사로 명성을 날린다.

과학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이어가던 첸 쉬에선 박사에게 1950년 암운이 드리운다. 미국 사회를 온통 빨갱이 사냥으로 뒤흔들던 매카시 광풍이 첸 박사에게 마수를 뻗친 것. FBI는 당시 고국방문을 준비중이던 첸 박사가 미국의 특급 우주군사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려 한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운 뒤 1955년까지 무려 5년간 가택연금 한다. 그러나 중국계 작가 아이리스 창의 저서 <누에고치 실(Thread of the Silkworm)>에 따르면 첸 박사가 중국으로 빼돌리려 했다며 FBI가 제시한 '기밀문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로그값을 기록한 종이쪽에 불과했다.


a 젊은 시절의 첸 박사

젊은 시절의 첸 박사

1955년 모국인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첸 박사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크 웜 함대함 미사일 등의 개발을 진두 지휘하는 등 백지장이나 다름 없던 중국의 우주과학기술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쌓아올리기 시작한다.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와 6호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창청(長程)' 로켓은 바로 첸 박사가 반세기 전에 정립한 기술적 성과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창청 로켓은 미국의 위성휴대전화 사업자 '이리듐'이 자사의 통신위성발사에 활용했을 만큼 국제적으로 높은 성능과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중국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 좡펑간은 "첸 박사가 없었다면 중국의 우주과학기술 발전은 최소한 20년 이상 늦어졌을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결국 매카시 의원이 주도한 빨갱이 사냥에 이성이 마비된 미국은 첸 박사를 중국으로 추방함으로써 냉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뼈 아픈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미국과 소련이 걸었던 길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주변국들은 중국의 우주개발이 중국 지도부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시샘 어린 눈길을 보이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 냉전시대에 순전히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달 탐험을 독려했던 미국과 소련의 행적에 비한다면, 중국의 우주계획은 매우 착실하고도 이성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통신사 UPI의 분석가 마틴 셰프의 관측이다.

미국과 소련이 국가적 자존심을 내걸고 달 탐험 경쟁에 뛰어들기 수십년 전에 윌리 레이와 폰 브라운 등 우주과학기술의 비조들은 3단계 달 탐사 계획을 핵심으로 하는 마스터 플랜을 상세하게 작성해둔 상태였다.

우주인과 탐험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실은 거대한 로켓이 지구상에서 발사돼 단번에 달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고도 낭비가 심한 비합리적 방식임을 이미 깨닫고 있던 이들은, <우주정복> <달 정복> 등의 저서를 통해 화물로켓을 연달아 발사해 지구정지궤도에 우주정거장을 먼저 건설한 뒤 이곳에서 달 탐사에 필요한 충분한 크기의 탐사선을 조립해 발사하는 3단계 방식을 제시한다.

이 방식을 채택할 경우 우주정거장에 우주인이 상주하고 있어 유인우주선이 위험한 대기권 재진입을 매번 할 필요가 없으며, 무중력상태인 우주정거장에서 장기간의 달 탐사에 필요한 크기의 탐사선을 손쉽게 조립해 최대 50명까지 우주인을 달에 보낼 수 있다는 것. 이 정도 크기의 달 탐사선을 지상에서 달로 바로 발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추력을 지닌 로켓이 필요해 낭비가 심하고 현실성도 없다는 것이 당시 폰 브라운 등 과학자들의 결론이었다.

a 중국은 우주정거장을 먼저 건설하고 여기에서 달 탐사선을 발사하는 방식을 추진중이다. 사진은 '국제우주정거장 (ISS)'

중국은 우주정거장을 먼저 건설하고 여기에서 달 탐사선을 발사하는 방식을 추진중이다. 사진은 '국제우주정거장 (ISS)' ⓒ NASA

하지만 우주개발에서 자존심 경쟁에 뛰어들어 마음이 급한 미국과 소련에게 이 방식은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당시 미·소 정부로서는 자국의 우주인이 달 위에 서있는 장면을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달의 돌덩이 몇 개 정도를 가지고 돌아오는 홍보이벤트면 충분했다.

애초부터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기간의 달 탐사에는 관심이 적었던 미국과 소련은 지상에서 바로 발사가 가능한 정도의 소형 달 탐사선을 제작, 의도했던 대로 세계적인 홍보를 성공리에 이루어낸다. 시작 자체가 과학적 목적보다는 국력 과시에 있었던 만큼,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열기는 몇차례의 스펙터클한 홍보이벤트를 끝으로 흐지부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중국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이번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을 시작으로 장차 우주궤도에 독자적인 정거장을 건설하며, 이곳에서 달 탐사선을 발사해 달 정복에 나서고, 궁극적으로는 달표면에 과학자가 상주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장기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것은 우주개발 초창기에 제시된 합리적인 마스터플랜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UPI의 마틴 셰프는 중국의 이런 행보가 "첸 쉬에선 박사가 이미 40년 전에 폰 브라운과 윌리 레이 박사가 제시한 모범답안에 근거해 성안했던 중국판 3단계 달 탐사계획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중국의 '만만디 행보'가 변함 없이 이루어진다면 첸 박사의 비전대로 조만간 정지궤도에 중국의 우주정거장이 건설되고 여기에서 달 탐사선이 발사되며, 결국 달 표면에 기지가 건설돼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것도 공상과학소설 속의 상상만은 아닌 셈이다.

40년 전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중국

a 중국의 2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 6호의 우주인 페이쥔룽(왼쪽)과 녜하이성이 지난 12일 중국 서북부 간쑤(甘肅)성 주취안(酒泉) 위성발사센터에서 발사대로 걸어가며 손을 흔들고 있다.

중국의 2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 6호의 우주인 페이쥔룽(왼쪽)과 녜하이성이 지난 12일 중국 서북부 간쑤(甘肅)성 주취안(酒泉) 위성발사센터에서 발사대로 걸어가며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첸 박사의 업적을 흠모했던 탓에 박사를 추방한 미국의 결정을 수치스러워 했던 세계적인 SF작가 아서 클라크는 그가 집필한 최고의 걸작인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에 첸 박사를 등장시킨다. 소설 속에서 첸 박사는 목성의 신비스런 위성인 유로파를 탐사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이후 중국의 목성탐사선이 좌초한 장소는 박사의 이름을 따 <첸 빌>로 불리게 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 1996년 10월 '폰 카르만 상' 수상 차 베이징에 들른 아서 클라크는 이제 베이징 시민이 되어 살고있는 첸 박사를 찾게 된다.

박사가 노환으로 병실에 입원해있어 면회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소설 <2010,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박사에게 헌정, 반세기 전 차갑게 그를 내친 미국 정부를 대신해 박사의 업적을 칭송했다고 한다.

첸 박사의 노안에서 국가보안법과 빨갱이 사냥의 광풍 속에 평생을 머나먼 타국에서 유랑생활을 해야했던 윤이상 선생과 송두율 교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기자만의 느낌일까?

첸 박사는 지난 1989년 "세계 공학·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최고 등급의 기여를 한 인물로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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