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속에서 외치다 "여보, 사랑해"

불꽃축제 앞두고 겹경사가 났습니다

등록 2005.10.23 11:53수정 2005.10.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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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장 많이 선보는 형태의 불꽃. 크기와 색상이 정말 다양했다.(중국작품)

가장 많이 선보는 형태의 불꽃. 크기와 색상이 정말 다양했다.(중국작품) ⓒ 김해영

저는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별로 멋지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몸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꿈 밖에 없는 사람인데 사랑한다는 말, 그 한 마디만 믿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나가면서 제 곁에 있어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결혼하자마자 일년 가까이 항상 뜨거운 태양 볕만 쪼이는 나라에 데려가서는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생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제대로 거처할 곳도 못 구해 놓고 일자리도 못 구하고 거기에 지병으로 수술까지 해서 몸고생 마음고생 곱으로 시켰으니 제가 얼마나 못된 남편입니까.

불꽃축제에 꼭 참여해야 하는 이유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 반 만에 어렵게 구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중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2005 세계 불꽃 축제' 입장권을 주는 이벤트가 진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벤트 내용인즉 불꽃 축제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적어서 내면 추첨을 통해서 50명에게 불꽃 축제 입장권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 이벤트를 보고 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불꽃 축제라는 것이 유명하고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에 가보고는 싶었지만, 일자리도 없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 속에서 그런 곳에 가자고 하는 것이 왠지 사치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벤트에 당첨되면 아내가 무척 좋아할 텐데 하는 마음에 이벤트에 응모했습니다.

제가 응모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 일년간 고생만 한 아내에게 불꽃을 보여주고 싶어요

오는 11월 7일은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1년 째 되는 날입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을 가진 남편 때문에 멀리 말레이시아 더운 나라까지 따라가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원주민들과 10개월을 함께 지냈던 아내에게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새로운 시간을 맞게 되는데 불꽃 축제를 통해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꼬옥 불꽃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이렇게 응모를 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후에 이벤트에 당첨되었으니 토요일에 행사장에 와서 입장권을 받아가라는 쪽지가 날라 왔습니다.

솔직히 어릴 적부터 행운권 추첨이니 하는 것에 거의 당첨되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진짜로 당첨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더군요. 조금 망설이다가 아내에게 이벤트 당첨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렸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더군요.

a 불꽃축제 관람권. 이벤트를 통해서 무료로 제공되며 일반관람객과 가장 잘보이는 앞쪽에 의자가 마련 되어 있었다.

불꽃축제 관람권. 이벤트를 통해서 무료로 제공되며 일반관람객과 가장 잘보이는 앞쪽에 의자가 마련 되어 있었다. ⓒ 김해영

비록 일자리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도 매일 지지리 궁상맞게 집안에만 박혀 있는 것 보다는 그런 자리에 가서 힘을 북돋우고 오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기에 저도 불꽃 축제의 날만 기다렸습니다.

불꽃축제 앞두고 겹경사!

그러다가 지난 목요일 제가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서 면접을 보고 왔고, 아내는 금요일에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갔다 온 아내가 평소에는 돈 없다고 절대로 안 사주던 통닭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도 집 앞에서 파는 한 마리 6천 원하는 저렴한 통닭이 아닌 1만3천 원이나 하는 비싼 통닭이었습니다.

이게 웬 것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저에게 아내는 '축하해'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직 여건이 되지 않아서 핸드폰을 아내 것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면접 보러 가는 도중에 제가 목요일에 면접 본 곳에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하하려고 평소에 먹고 싶었던 통닭을 사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통닭을 먹으면서 아내의 면접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 면접을 봤는데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막히는 것 없이 술술 대답을 했고, 기능 테스트도 아주 잘 했다고 아내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리더니 아내가 몇 가지 서류를 받아 적었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입이 귀에 걸리게 웃으면서 '나도 합격했대'라고 말을 하는 아내의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을 잘 맞췄는지 저의 취업을 축하하던 자리는 아내의 취업까지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덤으로 불꽃축제까지 보러가게 되었으니 이건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해 놓은 것 같이 신기한 일이라고 둘이서 함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드디어 불꽃 축제의 날 토요일, 오전에 잠시 집에 들렀다 가라는 장모님의 갑작스런 전화에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처가에 갔더니 장모님께서 딸과 사위 취직 축하선물로 옷을 좀 사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나 돼야 나가실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모처럼 얻은 기회인 불꽃축제 티켓 배부와 입장 시간에 늦을지도 모른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여의도로 가고 아내와 장모님은 옷가게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쯤 도착한 여의도는 이제 막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도 북적거렸습니다. 수월하게 티켓을 수령했는데 이런 이런 7시까지 입장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눈에 띄었습니다.

부리나케 처가로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아내를 재촉하고는 여의나루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여의나루 역 안에서 아내를 기다리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불꽃 축제를 보기 위해서 몰려들더군요. 아마 30분 동안 제가 본 사람들이 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본 사람들 숫자보다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a 여의나루 역은 불꽃축제에 참여하려는 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3번출구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찍은 모습.

여의나루 역은 불꽃축제에 참여하려는 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3번출구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찍은 모습. ⓒ 김해영

다행히도 쉽게 아내를 만나서 근처 식당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부랴부랴 행사장으로 달려가니 6시 55분. 엄청나게 늘어난 사람들을 헤치고 주최측에서 준비한 관람석에 들어가니 한쪽에서는 공개라디오 방송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따뜻하게 입고 나갔지만 어제부터 매서워진 바람을 살을 에는 듯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일년간 평균기온 30도인 곳에서 살다왔으니 그 바람이 얼마나 차가웠겠습니까.

그렇게 바람에 떨면서 한 시간이 지나자 불꽃축제가 시작 되었습니다.

사회자의 설명이 거의 안 들려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먼저 불꽃을 쏘아 올린 팀은 중국 써니(Sunny)사로, '춤추는 드래곤(The Dancing Dragon)'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한국 음악과 중국 음악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여러 가지 불꽃이 터지는 모습에 저는 정신없이 가져간 디카 셔터를 눌렀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사진만 찍지 말고 구경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할 정도니 얼마나 열심히 눌렀는지 상상이 가시죠?

a 일명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불꽃. 아래로 퍼지면서 내려오는 것이 유성우를 연상케 하기도 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 작품.

일명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불꽃. 아래로 퍼지면서 내려오는 것이 유성우를 연상케 하기도 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 작품. ⓒ 김해영

두 번째는 이탈리아의 파렌테(Parente)사로 '춤추는 불꽃(The Dancing Fire)'라는 주제로 불꽃을 쏘았습니다. 여러 가지 영화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터지는 불꽃은 정말 음악과 잘 어울리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였습니다.

중국의 경우 용을 상징하듯 크고 웅장한 불꽃이 많았고 이탈리아는 작고 아담하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불꽃들을 선보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불꽃이 터질 때는 디카 배터리가 다 되어서 사진을 못 찍었지만 그 덕에 카메라에서 해방되어 아내와 불꽃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싸늘한 바람 때문에 옆에서 제 팔을 꼬옥 끌어안은 아내를 보면서 그동안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아내에게 더욱 잘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제 가슴 속에 잠시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르는 사랑의 불꽃이 다시 활활 타오르게 북돋았습니다.

간혹 어떤 이들을 잠시 불꽃을 보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불꽃 축제를 하는 것은 낭비가 아니냐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잠시 잠깐 터지는 불꽃의 아름다움은 삶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잠시나마 그 고단한 순간들을 모두 잊게 해주고, 저 불꽃처럼 아름다운 삶을 꿈꾸게 하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a 음악에 맞춰서 다양하게 움직이는 불꽃. 정말 춤추는 불꽃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안타깝게도 배터리가 방전되서 한장밖에 못 찍었다. 이탈리아 작품.

음악에 맞춰서 다양하게 움직이는 불꽃. 정말 춤추는 불꽃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안타깝게도 배터리가 방전되서 한장밖에 못 찍었다. 이탈리아 작품. ⓒ 김해영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불꽃을 보았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준비된 좌석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아내보다는 '쬐끔' 못하지만 그래도 매우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30분이나 걸어 나와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고, 그나마 내일 성묘 때문에 처가집에 가야하는 아내를 반대 방향 버스를 태워 보내 한 시간 반 만에 집에 들어가게 만든 것은 그냥 나중에 또 웃을 수 있는 작은 추억거리로 보태면서 이렇게 불꽃 축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주 토요일인 29일에도 불꽃축제가 진행됩니다. 여의나루 역 3번 출구에서 걸어가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행사장은 63빌딩 앞 공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주 토요일인 29일에도 불꽃축제가 진행됩니다. 여의나루 역 3번 출구에서 걸어가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행사장은 63빌딩 앞 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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