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야? 보물이야?

마음 속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봅시다

등록 2005.10.24 21:31수정 2005.10.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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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딸아이가 유아원에서 돌아올 시간입니다.

이제 제법 선선해진 날씨 덕분에 요즘 안나는 유아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바로 '가방'을 꾸려서 놀이터로 놀러 나갑니다. 여기서 가방이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갈 때 반드시 잊지 않고 챙겨나가는 살림 보따리입니다.


기껏해야 과자 한 봉지, 물수건, 음료수, 장난감 몇 개 따위가 전부지만 아이에게 이 가방은 정말 굉장한 것이어서 누가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며 심지어 엄마인 저도 손을 못 대게 합니다. 가방을 꾸릴 때에도 등을 돌리고 앉아 아주 비밀스럽게 작업을 하지요.

그렇게 아끼는 가방이라서 그럴까요? 놀이터에 나가기 전 가방을 챙기는 아이의 얼굴에서는 항상 기대와 흥분이 엿보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설렘에 가득 찬 가슴으로 여행 가방을 꾸리듯 말입니다. 잡다한 물건들을 넣었다 뺐다, 가방을 쌌다 풀었다를 몇 번 씩 되풀이하는 걸 보면 어쩌면 가방을 챙기는 그 과정을 놀이터에 나가 노는 것보다 더 재미있어 하는 것도 같습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간식을 준비해서 가방 속에 넣어주려다가 도대체 그 가방 속에 뭐가 들었기에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아끼는 건지 궁금해서 한 번 쏟아내 보았습니다. 온갖 잡동사니란 잡동사니는 다 들어 있더군요.

a 딸아이의 가방에는 언제나 이런 잡동사니들이 가득합니다.

딸아이의 가방에는 언제나 이런 잡동사니들이 가득합니다. ⓒ 이효연

맥도날드에서 1800원짜리 세트메뉴를 먹고 공짜로 받은 자동차, 300원짜리 비눗방울, 고장난 헬로키티 장난감, 종이인형, 스티커 몇 조각, 싸구려 스틱 소시지….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무거울 것 같아 몇 개를 도로 빼놓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냥 그대로 하나도 빼지 않고 넣어두었습니다. 어른인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하찮고 우스운 것들이지만 네살배기 딸아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들일테니까요.

창문을 열고 놀이터를 내다보니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 편에서는 미끄럼을 지치고 그네를 타느라 정신이 없고 또 한편에서는 저마다 가방에 싸 들고 온 '보물'을 가지고 노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사귀고 싶은 친구를 만났을 때 개중 괜찮은 놈으로 하나 골라 주면 바로 친구가 됩니다. 때로 선심을 쓰면서 비눗방울을 한 번 씩 불게 해주면 대장 노릇도 할 수 있구요. 간혹 셈에 밝은 아이들은 서로 보물을 맞바꿔 가면서 장난감을 최신식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이 잡동사니들은 적어도 아이들 세상인 놀이터에서만큼은 아주 유용한 경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 가방 속 잡동사니들이 왜 그토록 대우를 받는 것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물방울 다이아가 아닌 비누방울을 쫓아 달려가는 곳 .
비싼 요리보다 500원짜리 싸구려 소시지가 더 맛이 있는 곳.
BMW보다 맥도날드 자동차가 더 인기 있는 세계.

물끄러미 아이들 노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한 번쯤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고,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자기가 좋아하고 아끼는 것들을 모아 담아 자신만의 특별한 보물 가치를 만들어내는 딸아이, 아니 아이들의 맑은 동심이 부러웠습니다.

'돈, 명예, 사랑, 가족, 일 등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한 것들 가운데 나에게는 어떤 것이 보물같은 가치일까? '스스로 물어봅니다. 비록 그것이 남들이 허접하다고 초라하다고 비웃는 것이라 할지라도 과연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를 의연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인지도.

오늘 밤에는 딸아이처럼 벽을 보고 등 돌리고 앉아 내 마음 속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혼자만의 은밀한 보물찾기를 한 번 해 보렵니다.

덧붙이는 글 | '내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보고 듣을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을 살다보니 간혹 내 중심을 잃게 되는 일이 종종 있더군요. 가끔은 이렇게 아이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답니다.

덧붙이는 글 '내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보고 듣을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을 살다보니 간혹 내 중심을 잃게 되는 일이 종종 있더군요. 가끔은 이렇게 아이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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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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