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에 내 흔적을 묻다

7박8일 터키 여행기(11) - 오부룩의 카라반 사라이

등록 2005.10.25 14:17수정 2005.10.25 15:24
0
원고료로 응원
a 카라반 사라이 입구

카라반 사라이 입구 ⓒ 김정은

길은 우리네 삶 그 자체

걷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왜 신은 인간에게 직립보행의 능력을 주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일 것이다. 서서 걷다보면 보다 높은 곳에서,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보고 느끼며 이동할 수 있으니 저 멀리 아직 가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고 결국 호기심이 머무는 곳을 향해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을 만들게 된다.


이처럼 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네 삶 그 자체일지 모른다. 길을 계속 가다보면 기분 좋게 일이 잘 풀리는 날들도 있을 것이며, 원하는 결과가 마음 같지 않아 아픈 가슴을 쓸며 괴로움을 삼켜야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또 오아시스 아래에서 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듯 행복한 날도 있을 것이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집을 떠나 그 길 위에 서면
바람이 또 내게 가르쳐 주었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와
이제 막 태어나는 자
삶의 의미를 묻는 자와
모든 의미를 놓아 버린 자를
나는 보았네

- 류시화/길 가는 자의 노래 중


a 폐허로 남은 오부룩 카라반 사라이

폐허로 남은 오부룩 카라반 사라이 ⓒ 김정은

카파도키아를 떠나 콘야지방을 향해 서진하고 있는 이 길은 바로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지나 터키의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까지 연결되는, 총 1만 2000km 길이의 실크로드 중 일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실크로드는 초원로와 남해로 그리고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로 대표되는 오아시스로가 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천산북로로, 천산산맥을 기준으로 북과 남으로 갈라졌던 두 길이 콘야에 이르러 합쳐지는 오아시스로이다. 중앙아시아 일대에 산재한 여러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길이기 때문에 그만큼 어느 실크로드보다 역사가 길다.


실크로드란 이름이 가지고 있는 존재감만으로도 묵중하던 차에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이 길이 얼핏 평범하게 보여도 실크(Silk)라는 고가의 문물로 대표되는 동서 인류문명이 끝없이 교류하면서 발전하게 된 중요한 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자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a 하늘 빛을 닮은 오부룩 호수

하늘 빛을 닮은 오부룩 호수 ⓒ 김정은

길은 어디까지나 도전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이다. 이 길 속에는 법을 구하는 아의 열정과 보다 귀한 물건의 교역을 통해 부자가 되겠다는 상인들의 야망을 비롯하여 갈 수 없던 곳을 가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던 사람들의 열정이 모두 그대로 묻혀있다.


심지어 지금 예전 사람들의 노력에 비해 별 고민없이 이 길을 지나가고 있는 내 흔적까지 말이다. 이처럼 길이 존재하는 이상 수많은 이들의 열정과 흔적이 모여 이 길 속에 차곡차곡 모두 말없는 역사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고 오늘도 그렇게 기록되어 갈 것이다. 그래서일까?

옛날 낙타와 당나귀를 끈 대상 카라반이 왕래한 이 실크로드의 옛길을 걷다보면 오아시스를 따라 카라반이 하룻밤 지낼 수 있는 숙소, 일명 카라반 사라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오부룩의 카라반 사라이. 예전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옛터가 무너진 채 뼈만 앙상히 남은 건물들이 무너질 듯 내 눈앞에 위태롭게 서 있지만 그 위태로운 벽돌 기둥의 앙상함마저 이 코발트색 하늘과 잘 어울려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당장이라도 이 폐허에서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코란을 읽는 대상들의 목소리와, 그들이 물담배를 피며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 마굿간에서 풀을 뜯는 낙타와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이 폐허의 잔해 말고도 또 하나가 있다.

a 말끔하게 포장된 실크로드

말끔하게 포장된 실크로드 ⓒ 김정은

오부룩의 카라반 사라이와 호수

바로 오부룩 뒤쪽 절벽에 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눈부시게 푸른 코발트색 호수 때문이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냥 오부룩의 호수라고 불리우는 이 호수의, 하늘빛보다도 더 푸른 코발트색을 처음 본 순간 갑자기 숨이 멎을 듯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이 푸른색이 문득 물빛일까 하늘빛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중략)

하늘은
희망을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까지 낸다

내가 물을 많이 퍼 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 이해인 /나의 하늘은 중에서


a 실크로드의  종점 그랜드 바자르

실크로드의 종점 그랜드 바자르 ⓒ 김정은

마치 어떠한 고민이나 문제점도 이곳에 풍덩 담그면 그대로 깨끗하게 파랗게 물들 것같은 매력적인 호수이지만 이 신비로운 호수에도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현재 하늘의 색을 그대로 호수 속에 담아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눈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하늘빛 같은 푸른 코발트색이 되고, 꾸물꾸물 흐린 날이 되면 흐린 회색의 호수로 깜쪽 같이 변한다고 한다.

예전 실크로드를 따라 잠시 이곳에 온 상인들은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구간을 이겨낸 잠시 잠깐 이 푸른 호수를 보며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까? 하늘색을 닮고자 하는 오부룩 호수를 내 마음 속에 묻은 채 실크로드 위에 또 다른 나의 흔적을 남기면서 다음 목적지인 콘야로 출발했다.

덧붙이는 글 | 7박8일 터키 여행기11번째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7박8일 터키 여행기11번째 이야기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