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별미, '호래기 채나물'

등록 2005.10.25 13:56수정 2005.10.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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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버스가 여간 혼잡한 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대중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부러 맨 뒤쪽으로 갑니다. 그래야만 자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리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내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행운입니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봅니다. 노약자는 없습니다. 이 또한 행운입니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휴대폰이 울립니다. 저는 휴대폰을 받습니다. 아내입니다. 목소리가 낭랑합니다.

"여보, 어디예요?"
"석전 사거리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집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리겠어요?"
"30분 남짓 걸릴 것 같아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생선 있잖아요? '호래기'요? 그것 좀 샀어요."
"그래요? 침 넘어 가는데. 내 빨리 가리다."

이게 바로 행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호래기'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있지요. 저는 '호래기'를 볼 때마다 머리를 갸우뚱하거든요. 도대체 '호래기'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를 몰라서요. 국어사전에도 이름이 나오질 않습니다. '호래기'가 표준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 정말 궁금하시지요? 하하, '호래기'는 바로 꼴뚜기의 사투리랍니다.


집에 오니 아내가 '호래기'를 잘 씻어 놨습니다. 크기가 손가락만 합니다. 마치 오징어 새끼를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아예 '호래기'를 오징어 새끼라고 부릅니다. 저는 한 마리를 냉큼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호로록. 잘도 빨려 들어갑니다. 맛이 그만입니다. 아내가 "초장이라도 찍어 드시지요"라고 말합니다.

초장에 '호래기'를 찍어먹으면 맛있습니다
초장에 '호래기'를 찍어먹으면 맛있습니다박희우
"괜찮소. 그냥 먹어도 맛이 아주 좋아요. 그런데 여보, 왜 '호래기'라고 한 줄 아시오?"
"모르겠는데요."
"내가 방금 먹는 것 보았지요. 한입에 '호로록' 집어넣었잖아요. 그래서 '호래기'라고 했답니다. 어시장에서 '호래기'를 파는 할머니가 그렇더군요, 하하."


아내도 따라 웃습니다. 저는 접시에 '호래기'를 담았습니다. 뽀얀 게 보기에 참 좋습니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초장에 '호래기'를 찍어먹었습니다. 저는 소주도 곁들였습니다. 아이들도 잘 먹었습니다. 한 접시가 금방 없어집니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무로 채를 썹니다. '채나물'을 만들 모양입니다.

"당신도 이제 바닷가 사람 다 되었소?"
"제가요?"

"'호래기' 채나물도 다 만들고 말이요."
"호호, 고마워요."

'호래기 채나물' 만들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채나물에다 '호래기'를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반찬으로 먹어도 좋고 비벼먹어도 좋습니다. 비벼먹을 때는 청국장을 곁들이면 더욱 좋습니다. 물론 참기름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더욱 좋겠지요. '채나물'에만 '호래기'를 넣는 건 아닙니다. 깍두기에 넣어도 맛이 그만입니다.

'호래기 채나물'입니다. 비벼 드셔도 좋습니다
'호래기 채나물'입니다. 비벼 드셔도 좋습니다박희우
어머니께서도 종종 '호래기 채나물'을 만드셨습니다. '호래기 깍두기'도 만드셨지요. 저는 아무리 밥맛이 없을 때도 '호래기 채나물'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가뿐히 비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뵙지 못한 지가 조금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를 뵈러가야겠습니다. 어시장에서 가장 싱싱하고 먹기 좋은 '호래기'를 사가야겠습니다. 호로록. 어머니의 '호래기' 잡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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