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잘린 낙지 같은 섬, 고하도

등록 2005.10.25 19:30수정 2005.10.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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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로 들어가는 길은 목포여객터미널에서 '목포근해 순회관광선'을 타는 방법과 자동차를 이용해 목포하구언을 지나 진도방향으로 가다 영암 용당의 삼호중공업 아파트를 지나 연륙교를 지나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다리가 놓이기 전 고하도 주민들은 '바다의 시내버스'라 불리는 목포근해 순회선을 타고 뭍을 오갔다. 고하도-달리도-눌도-외달도-매월도를 순회하는 정기항로 여객선으로 '바다의 시내버스'이다.


a 목포 인근 섬을 운항하는 '바다의 시내버스'

목포 인근 섬을 운항하는 '바다의 시내버스' ⓒ 김준


a 신외항을 연결하는 다리(고하도 큰목에서 촬영)

신외항을 연결하는 다리(고하도 큰목에서 촬영) ⓒ 김준

고하도는 이제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지금 고하도는 허사도-장구도-고하도를 연결해 하나의 섬이 되었고, 장구도와 허사도 사이에 신외항을 건설 중이다. 이 신외항이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삼호아파트)가 다리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신외항이 건설되면서 고하도에는 3만 톤급의 선박 3척이 동시에 입항할 수 있는 750m의 항만이 들어섰다. 앞으로는 12척이 동시에 접안할 만큼 신항의 규모가 확장될 계획이라고 한다.

섬이 육지로 변하면 가장 큰 변화는 것은 무엇일까? 차가 늘어난다. 땅값이 오른다. 사람이 늘어난다. 모두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물길이 바뀌는 것이다. 조류가 변하는 것이다. 육지 것들이야 물길이 바뀌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랴 생각하겠지만 조류 즉 물길은 섬과 바다에게는 사람의 핏줄과 같은 것이다. 나무에도 양분을 이동해주는 관이 있는 것처럼. 물길은 주민들이 오랫동안 익혀온 탓에 철따라 어디로 가면 바지락이 많은지, 어느 갯고랑으로 가면 숭어를 잡을 수 있는지 손금 보듯이 꾀는 것이다.

a 고하도에서 제일 큰 '원마을', 구릉에는 야채를 심어 목포에 내다 팔았다.

고하도에서 제일 큰 '원마을', 구릉에는 야채를 심어 목포에 내다 팔았다. ⓒ 김준


a 똥배를 싣고 온 인분은 뒷도랑 인근에 '똥당고'에 저장되어 밭에 뿌려졌다(뒷도랑의 모습).

똥배를 싣고 온 인분은 뒷도랑 인근에 '똥당고'에 저장되어 밭에 뿌려졌다(뒷도랑의 모습). ⓒ 김준

고하도 야채 안 먹은 사람 나와 보라고 해

40여 호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마을을 제외하면, 고하도는 섭두르지 4호, 뒤도랑에 8호, 큰목 10여 호 등 모두 60여 호가 사는 작은 섬이다. 오죽 했으면 목포에서 제일로 치는 유달산 아래 작은 마을이라 해서 고하도라고 했겠는가.

작은 섬이라고 얕봐서는 큰 코 다친다. 목포에 나이 줄이 드신 양반치고 고하도 채소 먹지 않고 자란 사람 없을 것이라는 게 뒷도랑에 사는 김씨(74)의 이야기이다.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이야기이다. 목포에서 식당하는 친척의 중매로 완도 노화에서 이곳에 20대 초반에 김씨에게 시집온 심씨(70)가 이곳에 와서 본 것이 똥당고에서 합수를 퍼서 밭에 뿌려 채소농사를 짓는 것이었다고 한다. 노화에서는 김발로 돈을 만질 수 있었지만 여기에 와서 보니까 모두 채소농사만 짓고 있었다고 한다.


“여그는 어두웠제, 야채하드라고, 자식농사 잘 지었으니 밑가지는 않았제.”
“금비가 없고, 똥퍼다 야채 심고, 시금치, 배추, 파, 보리….”
“그런거 해가지고는 자식들 못 갈치것드라고, 야채 고추 장사해가지고 자식들 갈쳤제.”
“고기는 아무나 잡나 기술이 있어야제.”

이곳에 시집 온 지 60년이 넘었다는 뒷도랑의 할머니도 사구라마찌(서산동 일대)에서 똥을 수거해다가 이곳에서 야채를 심어서 고하도와 가장 가까운 여객터미널의 선착장과 멀리는 용해동까지(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매립과 간척 이전에는 배가 드나들었다) 내다 팔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서산동뿐만 아니라 목포 일대의 오줌과 똥은 모두 수거되어 배로 이동하여 영산강 일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똥배'로 운반되었다. 당시 고하도의 뒷도랑 마을은 일제시대 조선소가 있어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들이 있어 합수를 보관하기 좋았으며, 배를 정박하기도 좋아 수거한 합수를 이곳에 모아 두었다 거름이 필요할 때 퍼다 밭에 뿌려 야채농사를 지었다.

똥배들이 사라진 것은 나주에 비료공장이 건설되면서였다. 나주비료공장이 세워지고 남해공장이 가동되면서 비료공급이 늘어나고, 농업기술도 발달해 비닐하우스가 등장하자 더 이상 고하도 야채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밭들이 묵혀져 잡초가 무성하고, 개간한 논마저 습지로 변하고 있다. 쌀이 수입되는 통에 작은 논배미 농사 지어서 무얼하겠느냐며 차라리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는 것이 '싱간'도 편하고 낫다는 것이 포구에서 만난 큰마을 백 선장(70)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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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우리 육감에 잘못됐다 이 말이여

고하도 선착장에서 도착한 배들은 낚싯꾼 두 사람을 내려놓고 떠났다. 포구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어 라면도 끓여주고,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가게 앞에 몇 명의 주민들이 앉아 있고 선착장에는 낚싯대를 던져놓고 입질을 기다리는 외지 사람들이 너댓 명의 강태공들이 있다. 목포 하구언이 막히기 전까지 이곳은 어장은 고하어촌계 공동어장으로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반지락을 캐거나 낚시질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신외항 등 개발계획으로 얄궂은 보상으로 어업권이 상실되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영산강 하구언은 1981년 농업용지와 용수 확보를 목적으로 길이 4351의 물길을 막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영산강을 터서 뱃길을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영산강은 나주, 함평, 영암, 무안, 그리고 목포와 해남까지 서남해를 아우르는 큰 강이다.

하구언이 막히면서 물길이 변하고 수위가 올라가면서 고하도 어민들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바지락과 굴을 비롯해 갯벌에 의지해 살던 어민들은 생활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이어서 금호호와 영암호 등 화원반도의 물길도 막히면서 이 일대에서 낙지를 잡던 어민들도 더 이상 갯일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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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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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여기에 '신외항'이 건설되면서 그나마 남았던 용머리와 큰목 일대의 갯벌들도 모두 사라질 위협에 처해 있다. 이렇다 할 논밭이 없었지만 구릉지에 야채를 심어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갯벌이 있기 때문이었다. 몇 척의 고기잡이 배들이 있지만 주민들은 생업은 갯일이었다. 고하도의 갯벌은 용머리 일대, 큰목 일대, 뒷도랑 일대 등에 발달해 있다. 뒷도랑과 선착장 일대의 갯벌은 하구언 공사로 수면이 높아지면서 바지락 등이 사라졌고, 큰목 일대는 삼호중공업 등 공장이 들어서고 신외항이 건설되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고하도에서 갯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갯벌은 용머리 일대의 갯벌이다. 하지만 이곳도 목포로 연결하는 다리가 계획되어 있어 내년이면 사라질 것이다. 인근 허사도처럼 섬이 사라지고 집단 이주를 한다면 다른 대책을 세우겠지만, 고하도처럼 생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섬에 붙어 살아야 하는 경우에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개발 주최 측에서 어민들의 삶까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구언이 막히기 전 이곳에서 어장질을 하던 어부들은 고기도 '농어'나 '민어'가 아니면 잡지 않을 정도였다. 영산강 하구언 밑에까지 산란을 위해 찾아온 고기들이 최고 인기였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배를 타고 가면 세발낙지의 원조 영암 갯벌이 넓은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만난 김(73)씨와 백 선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 생각에도 잘못됐다 이 말이여, 농어요, 민어요, 숭어요. 낙지 이것이 겁나게 많이 났어요. 이것이(막는 것이) 겁나게 마이너스여. 지금 농사 진다고 해야 그전에 고기 나온 것에 10분의 일도 안 나와. 다리형으로 막았다면 교통도 좋아지고…. 간척을 한다고 했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어야지. 우리 육감으로 잘못됐다 생각하는데. 전문가들은 금방 계산이 나오것제. 고하도는 낙지 대가리만 남겨놓고 다리를 전부 짤라분 것 하고 똑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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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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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반지락 캐서 묵고 사는디, 인자 묵고 살 것이 없어

4가구가 살고 있는 섭두르지로 가는 길은 큰마을 앞을 지나 용머리 방향으로 가야 한다. 원마을을 지나 작은 구릉에 올라서면 갯벌을 막아선 신외항이 한눈에 보이고, 할아버지 머리에 듬성듬성 자란 마늘이 멀칭비닐 구멍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다 할 들이 없는 고하도에서 섭드러지에 마련된 개간 논은 육지나 큰 섬에서는 좀 큰 논배미 정도지만 여기선 넓은 들에 속해 '드러지들'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묵혀 습지로 변해버렸다. 섭드러지를 가로질러 다시 작은 구릉을 지나면 용머리 갯벌이 자리를 잡는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갯벌에서 가을운동회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노란 깃발 빨강 깃발이 줄을 지어 꼽혀 있고, 용머리쯤에 멀리서 봐서는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눈에 띈다. 최근 지어진 고하도 복지회관을 제외하고는 제일 좋은 건물인 것 같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갯벌에 꽂힌 깃발은 머지않아 갯벌을 가로질러 놓이게 될 도로를 표시한 것이고, 눈에 띈 건물은 정신장애가 있는 장애우들의 시설이었다.

이 시설은 지금 '공생재활원'이 자리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의 불량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된 감화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감화원은 '국립목포학원'으로 개칭되고 다시 '재생원'으로 개칭되어 고아들을 수용하다가 1960년대 폐원되었으며, 1984년 공생재활원이 건립되었다. 대도 조세형도 어린시절 이곳 감화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용머리 갯벌에는 20여명의 주민들이 반지락을 캐고 있었다. 고하도에서 유일하게 돈벌이가 되는 것이 '반지락'이다. 고하도는 영암과 목포 사이에 길다랗게 누어 영산강 하구의 수문 역할을 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고하도를 허사도, 장좌도, 달리도, 눌도 등이 둘러싸고 있어 갯벌이 잘 발달해 있다. 어민들에게 최적에 생활조건을 갖춘 셈이다. 전략가 이순신이 명량해전 이후 새로운 전략지로 이곳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어민들이 반지락을 캐기 시작한 것은 7년여 전부터이다. 그 전에는 뒷도랑의 영암과 접한 학섬, 피섬, 검섬, 장구섬 등에서 반지락을 캤었다. 하지만 목포하구언이 만들어지면서 바닷물이 갈길을 잃고 수면은 1m 정도 높아져 버렸다. 그 탓에 이곳 반지락 밭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주민들이 가장 많았던 150여 가구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반지락 덕이었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반지락이 용머리 갯벌에서 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지락은 사시사철 캘 수 있기 때문에 농사가 적은 고하도 주민들의 생활비는 용머리 갯벌의 반지락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몇 조금 못 가고 도로가 날 판이다. 보상이라고 천만원에도 미치지 못해 깃발이 꼽힌 갯벌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호미질을 하는 고하도 주민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a 도심보다 밝게 붉을 밝힌 유달산

도심보다 밝게 붉을 밝힌 유달산 ⓒ 김준

목포시는 고하도와 목포를 연결하는 '목포대교'를 계획하고 있다. 신외항이 완공되고 목포대교가 건설되면 서해안고속도로와 바로 연결되는 물류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국제자유무역항으로 목포의 새로운 희망을 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보는 고하도는 나지막하고 아름답다. 깃대봉에서는 유달산에 이어 조명을 설치해 '빛에 도시'를 꿈꾸고 있다.

높은 곳(육지)에서 내려다 보면 밤이나 낮이나 좋은 경관을 볼 수 있겠지만 반대쪽 어민들이 생활하는 갯벌은 모두 사라지고, 좁은 도로는 자동차 하나 지나가기 힘든 비포장 길들이다. 목포에 속하지 않고, 신안에 속했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목포의 새로운 희망이 고하도 주민들에게도 '희망' 될 수 있는 개발전략은 불가능한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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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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