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 속 열린우리당, 탈출구는?

'문희상 체제' 6개월만에 좌초 위기... 28일 연석회의서 '진퇴' 결정

등록 2005.10.27 01:15수정 2005.10.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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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27일 새벽 4시30분]

a 26일 밤 10.26재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여당의 완패가 예상되자 굳은 표정으로 국회를 나서고 있다.

26일 밤 10.26재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여당의 완패가 예상되자 굳은 표정으로 국회를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열린우리당이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10·26 재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문희상 의장을 비롯해 상임중앙위원들은 26일 밤 긴급회의를 갖고 지도부 진퇴 여부를 중앙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현재 상중위원은 염동연 위원의 사퇴로, 문희상 장영달 유시민 한명숙 이미경 김혁규 총 6명이다.

26일 밤 10시까지 국회 당의장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본 문 의장은 이후 여의도 모처로 이동, 상중위원들과 만나 1시간30분 가량 회의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오는 28일 오전 8시 연석회의가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자신만만'
"정권에 대한 냉정한 평가 시작"

▲ 27일 오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10.26재선거 당선자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밝게 웃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재선거 '싹쓸이'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활짝 웃었다.

선거 기간 내내 주로 바지를 입다가 오랜만에 '박근혜식' 치마 정장도 꺼내 입었다.

박 대표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 여러분이 확실하게 민심을 보여주셨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그동안 현 정권의 나라 근본 흔들기, 경제 실정에 대한 준엄한 평가"라고 말했다.

민심이 등돌린 정부·여당을 향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박 대표는 "이 결과는 이 정권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시작에 불과하다"며 "정부·여당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민심이 왜 이런지 깊이 잘 헤아려서 앞으로 바르게 나가야할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한편, 이날 당 회의에는 항공편 차질로 참석하지 못한 윤두환(울산 북) 당선자를 제외한 유승민(대구 동을)·임해규(부천 원미갑)·정진섭(경기 광주) 등 재선거 당선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연한 올리브 그린빛의 치마 정장을 차려 입은 박 대표는 당선자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며 악수를 나눴다.
/ 김지은 기자

26일 밤 회의 이후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


당초 열린우리당은 27일 오전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열어 선거 대책을 논의하는 수순을 상정했다. 하지만 이 회의가 돌연 취소되면서 연석회의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다소 뜻밖이다.

당초 개표가 진행되면서 이미 패색은 짙었지만 지도부는 '사퇴'와 관련 "노(no)"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배기선 총장은 "이럴 때일수록 뭉치고 힘을 내서 집권여당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4석을 얻느냐 마느냐보다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과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오영식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조기전당대회 등 지도부 책임론을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며 "정기국회를 차질 없이 마무리 짓고, 중앙위원회 등 당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말했다. 그런 뒤 연말께 모종의 쇄신방향이 나오지 않겠냐는 예상이었다. 전병헌 대변인 역시 "지역주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존중한다"면서도 "대구에서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신 것에 주목한다"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이날 밤 회의가 끝난 뒤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대의원과 당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지만 절차가 번거롭고 국민들에게 혼란스럽게 보여질 수 있다"며 "중앙위원회가 대의기관인 만큼 진퇴를 묻고 지도부가 이를 수용하는 것이 최소한의 현실적 의무"라고 말했다. 장 상중위원은 지금이 정기국회 기간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며 "정치적으로 책임질 것에 대해 구차하게 가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도부 총사퇴? 글쎄...

a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장영달 상임중앙위원 등이 26일 저녁 국회 당의장실에서 10.26재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장영달 상임중앙위원 등이 26일 저녁 국회 당의장실에서 10.26재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도출된 연석회의안은 조기전당대회 주장에 대한 절충안의 성격으로 해석된다. 안정감을 잃지 않는 가운데 과감한 모색을 해야 한다는 고민이 담겨 있다. 개혁파와 386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조기전당대회를 통한 체제 개편을 주장해 왔다.

유시민 상중위원은 "지도부가 나름대로 책임을 지겠지만 어떤 방식이 될지는 우선 패배의 원인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질서정연하게 당헌당규에 따라 가야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문희상 의장도 더이상 덮고 갈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를 계속 흔드는 상황에선 더이상 리더십을 발휘가 어렵다고 판단, 아예 재신임을 묻는 공세적 방식을 택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전병헌 대변인은 "예상된 결과였고 문희상 의장 개인이 책임질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책임을 검증 받고 가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에 지도부 총사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당장에 내년도 예산안을 비롯해 각종 민생법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정기국회 기간, 여당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대안부재론'이 만만치 않다. 서갑원 의원은 "절차를 통해 당선된 지도부를 선거 때마다 물러가라고 하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며 연말까지는 문희상 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선거로 정동영·김근태 장관 등 차기주자들의 조기 복귀에 한층 힘이 실렸으나 올 연말까지는 당 안팎 여론을 주시하며 보폭을 넓히는 수준이지 않겠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 장관은 12월 장관급 회담 등 마쳐야 할 업무가 남아 있고, 김 장관은 최근 인사권자(노 대통령)의 뜻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현미 의원은 지도부 사퇴에 대해 "택도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김 의원은 "보궐선거는 특정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당정이 한 몸으로 굴러간 결과"라며 '동반책임'이라는 입장에 섰다.

차기 주자들이 돌아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판단 아래, 지도부와 친노그룹은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꾸려질 선거대책본부 차원으로 차기 주자들이 결합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깨비 방망이로도 만회가 안돼"

정기국회라는 정치일정과 대안부재론 속에서 문희상 체제를 정면으로 흔들지, 비상대책위 등 과도기적 형태로 이어질지 연석회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은 더욱 팽배해졌다.

한 당직자는 "당이 이런 상황인데 내치를 해야할 의장이 자꾸 밖으로 도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문 의장은 11월 1일 이후 6일간 국회를 비운다. 중국, 일본에 이어 6자회담 당사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17대 국회 들어서 열린우리당 당의장들은 임기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의장이 교체된다면 1년6개월 사이 벌써 4명째다.

한편 이번 선거에 대해 지도부는 "예상한 결과"라며 애써 자위하는 모습이지만 실망감이 적지 않다. 문 의장은 "유구무언"이라면서도 "한 석이 아니라 두 석도 기대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배기선 총장은 "도깨비 방망이를 사용해도 만회가 안되는 상황이었다"고 자평했고, 경기 광주와 부천 선거를 지원한 김현미 의원(경기도당 위원장)은 "지금의 지지율로는 하느님이 왔다가도 안된다"고 토로했다.

바닥을 친, 집권여당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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