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했다. 그들은 도망쳤다고 하지만 궁궐을 빠져 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궁(內宮)으로 들어갔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추적 전문인 수하 세 명을 풀어 조사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아직 천관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위험을 느끼고 도망친 것이라면 어떠하든 무조건 멀리 도망가는 것이 상례다. 헌데 이 자들은 궁궐을 빠져 나가지 않았다. 빠져 나갈 수 없었던 것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세 명의 수하를 죽일 정도로 그 자들에게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그럴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을 방조자로 가지고 있다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디에 숨어 든 것일까?)
궁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숨자고 마음먹으면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북경성은 증축이 한창이었다. 일개 왕의 궁에서 황제의 궁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인부들 틈에 스며들 수도 있고, 궁인들이 머무는 처소에 스며들었다면, 누군가가 발견하고 말해준다면 모를까 찾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 작자들이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차라리 궁을 빠져나가 도망쳤다면 추적해 붙잡거나 죽이면 간단해 진다. 하지만 그들이 아직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오히려 스며들었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다. 좌후범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작자들을 조속히 붙잡아야 했다. 무슨 일을 꾸미기 전에 잡아 족쳐 그 내막을 캐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들에게 시간을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모른다.
"이쪽인 것 같습니다."
어둠을 헤치고 앞서 가며 흔적을 찾던 상충(湘㥙)이란 수하가 나직하게 말했다. 상충은 매부리코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음습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천관에서 추적술이 가장 뛰어난 자였다. 상충은 몇 개의 발자국을 가리키면서 기이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돌아왔다는 말인가?
발자국은 공사장 쪽이 아닌 천관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속하가 말씀드렸던 그대로 입니다. 그들은 거처에서 빠져 나가자마자 공사하는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이목을 그쪽으로 돌려놓고 다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그가 가리킨 발자국 흔적은 확실히 다른 흙이 섞여 있었다. 더구나 톱밥인 것으로 보이는 나무가루가 섞여있어 그 발자국의 주인은 공사하는 곳을 다녀온 자가 확실했다. 좌후범은 눈매를 좁히면서 물었다.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본 천관의 거처가 있는 곳… 아니면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시화원(侍和院)으로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화원(侍和院)은 궁녀들의 거처다. 황제가 거처하는 내궁과 외궁의 중간에 있는 곳으로 경비가 삼엄한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 사내가 들어간다면 고슴도치가 되고 말아. 더구나 궁녀들 눈에 띄면 즉각 보고가 올라왔을 터인데…."
아무리 천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른다 해도 시화궁을 조사하기 어렵다. 더구나 새벽녘에 들이닥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정을 하는 좌후범의 어투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
하지만 상충의 마음은 달랐다. 추적에 능한 자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쫓기는 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쉽게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좌후범은 미세하나마 천관의 거처 쪽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추적술의 달인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간 방향이 어디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흔적은 너무나 적절하고 충분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조급한 마음인 좌후범으로서는 충분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좌후범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왼쪽에 있던 사내를 보고 말했다.
"조신오(曹愼伍)에게 그곳에서 철수하고 시화원 입구를 철저하게 봉쇄하라고 해. 날이 밝으면 무슨 수를 쓰던 조사해야 할 테니…."
"알겠습니다."
왼쪽에 있던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헌데 그때였다. 고개를 숙였던 사내가 갑자기 나직한 신음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앞으로 푹 꼬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퍽---!
얼굴을 바닥에 처박으며 꼬꾸라진 수하의 등 위쪽에는 비수가 손잡이만 남은 채 박혀있었다. 손잡이도 송진가루를 입혀 구운 것인지 어둠 속에서 전혀 빛을 반사시키지 않았고, 사혈인 대추혈(大椎穴)을 파고 든 것이어서 즉사한 것 같았다.
"어떤 놈이…!"
좌후범이 신형을 뒤로 홱 돌리며 소리치려는 순간 그는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다. 어둠을 뚫고 무언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잡아챈다거나 막는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피하기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은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뿐이었다.
스스으----
날아 온 물체는 주저앉는 좌후범의 머리칼을 스치면서 미처 뭔가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한 상충의 미간에 박히고 있었다. 좌후범과 바로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그는 피할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헉…!"
상충의 입에서 헛바람이 빠지는 신음이 흘렀다. 그의 미간에 박힌 것은 흔히 여인네들이 사용하는 목잠(木簪)같았다. 목잠은 흔히 겉에 꽂는 크고 화려한 잠이 아니라 머리를 고정시키는데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한쪽 끝이 매우 날카로웠고, 한쪽은 둥글게 머리를 이루고 있었다.
목잠은 상충의 미간을 파고 들어가 둥근 머리부분만 남긴 채 깊숙이 박혀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붉은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상충의 미간에 박힌 붉은 실은 목잠이 날아온 곳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어찌할 사이도 없이 절명한 상충의 몸은 쓰러지지 않은 채 수실을 따라 맹렬한 속도로 끌려가면서 좌후범의 상체에 부닥쳤다.
"허헉---!"
좌후범은 급한 신음과 함께 앉아 있다가 상충의 몸이 자신에게로 다가오자 급히 좌측으로 몸을 뉘였다. 끌리는 상충의 하체가 그의 복부를 스치며 지나갔는데 이미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는 상충이 끌려가는 모습은 끔찍해 보였다.
하지만 더 끔찍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끌려간 상충의 몸은 삼장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굵은 나무와 부닥쳤고, 그의 머리에서 선혈과 함께 허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럼에도 그의 몸은 바닥으로 쓰러지지 않았고, 발을 허공에 둔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
좌후범의 몸이 경직되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가 텅 비어가고 있었다. 그가 지금 느끼는 유일한 감정은 공포였다. 분명 귀신은 아니었지만 상대는 귀신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다. 그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일 기운이 없었다. 그대로 굳은 것 같았다.
상대가 누구든 지금 이 순간에 손을 쓴다면 좌후범은 아무런 저항 없이 죽을 것이다. 아니 지금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죽이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한 순간이 지나자 경직되었던 그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툭----!
매달려 있던 상충의 시신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간신이 입을 열었다.
"누… 누구… 요?"
대답은 없었다. 더 이상 물을 용기도 없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 어둠 속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렇게 날이 샐 때까지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는 분명한 암시를 주고 갔다. 더 이상 전연부와 조궁을 추적하지 말라는 것. 더 이상 쫓으려 한다면 죽이겠다는 의미였다. 다시 한번 상대에 대한 공포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자신을 왜 살려두었는지를 생각하기에는 경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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