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끝나지 않은 국토종단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읽고서

등록 2005.10.28 17:52수정 2005.10.28 18:10
0
원고료로 응원
책 겉그림
책 겉그림푸른숲
배낭 하나를 메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행기가 없던 시대에는 배를 타고 다녔겠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적선에다 도적떼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참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전까지 보장된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살인과 강도사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오지나 중국 들판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기는 마련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일들이 세계를 누비며 맛보는 참 묘미일 수 있다.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설렘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나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대감이나 낯선 오지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는 따뜻한 사랑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한비야님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낯선 곳에서 전혀 알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좁은 한국을 벗어나 드넓은 세상을 맛보았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그런데 세계를 누비며 돌고 또 돌아다녔던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 땅에 있는 임실이란 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 곳이 전라남도에 있는지, 아니면 경상도에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녔던 그 끝 지점에서, 이제는 우리 나라 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여, 우리나라 국토종단으로 세계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하여 행동에 옮겼고, 그것을 토대로 나온 책이 바로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푸른숲, 2004)이다. 이 책은 1999년도에 첫 판을 찍고서 지금껏 25쇄를 넘어섰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필독서가 됐다는 뜻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국토종단은 등잔 밑을 환히 밝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6년 동안의 세계 여행이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감상과 풍광들로 기억된다면, 이번 여행은 낯익은 곳에서 만나는 낯익은 사람들과 느낌들로 가득 채워질 거니까. 항상 곁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가족들처럼 늘 보던 강산,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사는 모습들이 새삼스레 귀하게 느껴질 것이다.”(여는 글)


그렇다면 그녀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느꼈던 것과 우리 나라 땅을 밟으며 느꼈던 차이는 무엇일까? 세계 곳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리 나라 땅만의 독특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우선 우리 나라에 있는 무덤들이 세계 모든 나라에 비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여행 첫머리에서부터 보고 느꼈던 것으로서, 국도 변에서부터 산속 깊은 곳까지 우리 나라 땅이 온통 무덤 천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는 가히 산 사람을 위한 땅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땅이나 다를 바 없다고, 꼬집고 있다.

“해마다 여의도만한 면적이 무덤으로 바뀌는데, 죽은 이를 위한 묘지 부지가 생산을 위한 공장 부지보다 훨씬 더 넓다. 그 뿐이 아니다. 산 사람의 생활공간이 한 명당 4.3평인데 비해 묘지는 평균 15평이라니 그야말로 죽은 자를 위한 나라라는 얘기를 들어도 반론의 여지가 없다.”(123쪽)



다른 하나는, 우리 나라 땅 이름들이 온통 한자식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문경새재 근처에 있는 동네 이름들, 이를테면 아랫파발, 점말, 새술막, 곰지골, 한여골 등 정말로 예쁜 이름들과는 달리 온통 한자식으로 돼 있는 이름들이 온 땅에 넘쳐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식 토박이 이름들이야 정말로 정겹고 사랑스럽지만 한자식으로 돼 있는 이름들을 볼 때면 속까지 뒤집힐 정도라고 한다.

이는 일제가 식민통치할 때 우리의 의식과 정기를 짓밟기 위해서 토박이로 된 땅 이름들을 온통 한자말로 뒤바꿔 놓은 것들이다. 더군다나 동서남북의 방향도 제멋대로 해 놓은 곳들도 한두 곳이 아니며, 이름 뜻까지도 마구 뒤섞어 놓은 한자 지명도 엄청나다고 한다. 일제의 창씨개명에 이어 지명개명까지, 얼마나 미운 짓거리들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새로 짓는 건물들이나 음식점 이름들까지도 순 우리식 토박이말을 붙여 쓸 것을 권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런 곳에 세금까지 감면해 주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더욱더 그 열기는 뜨거워질 것이고, 우리 나라 땅 이름들, 건물 이름들이 본래 이름을 찾아가는데 아주 자연스러워지지 않겠냐고, 귀띔한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밟아 본 우리 나라 땅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철조망이 가로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분단국가라는 게 그것이다. 이는 49일에 걸친 우리 나라 국토를 여행한 그 끝 날, 그 끝 지점인 남방한계선 앞에서 느꼈던 것이다.

금강산 1만2천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낙타봉 너머 말무리반도가 손에 잡힐 듯하지만 도저히 넘어서 갈 수 없는 북녘 땅, 그래서 그녀는 그 철조망 앞에서 괜히 코끝이 싸해 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철조망도 허물어지고, 남과 북이 자유로이 오고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녀는 기어코 남은 국토종단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해가 아직 4시간이나 남았다. 이대로라면 40리는 충분히 갈 수 있는데. 그러면 오늘 중에 저 말무리반도에 닿을 텐데. 그런데 이게 뭔가. 철조망이 가로막혀 더 이상은 한 발짝도 앞으로 갈 수 없다. 겨우 이건가. 겨우 이 철조망 때문인가. 이게 50년 민족 분단의 실체란 말인가. 그제야 콧등이 찡해 온다. 분함과 안타까움이 작은 가슴 속에 범벅이 된다. 이번 국토종단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 그러나 국토종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276쪽)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3. 3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4. 4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5. 5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