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아'도 맘 놓고 못 쓰는 인터넷 대한민국

한글날...이번 정기국회에서 국경일로 제정해야

등록 2005.10.30 14:11수정 2005.10.3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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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컴퓨터’

a 홍석에 전각을 수작업과 컴퓨터 기계를 활용하여 새겼다.

홍석에 전각을 수작업과 컴퓨터 기계를 활용하여 새겼다. ⓒ 산하기술(주)

나는 지금 ‘한글2005’(ㅎ+아래아+ㄴ)를 쓰고 있다. 2002버전를 써도 웬만한 일은 척척해낸다. 참으로 기특하다. 도표도 쉽게 만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방에 가만히 앉아서 편지를 보낼 수도 있다. 원고지를 수십만 장 아껴줬으니 이걸로도 감지덕지하다.


갈수록 기능이 다양해지지만 애초에 배운 문서작성 이외엔 별 관심이 없으니 개발자에겐 다소 미안하다. 그래도 거의 모든 글은 여기를 거쳐야만 밖으로 내보내니 보답은 한 셈이다.

내가 배운 것이 두벌식인데 세벌식이 더 편리하고 장점이 많다는 건 한번 잘못 든 길이기에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공병호 박사가 기여한 바도 여기선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한글과 컴퓨터>라는 회사에서 일찍이 이쪽에 눈을 돌려 컴퓨터로 글쓰기가 일상생활에 자리 잡게 한 공로가 지대하다. ‘엠에스워드’(MS워드)를 물리친 유일무이한 프로그램 회사이고 자랑스러운 나라 아닌가.

회사 이름을 갖고 뭐라 하자는 게 아니라 ‘한글’ ‘컴퓨터’ 이 두 낱말에 주목하여 이 사회에 이야기 좀 하려고 한다. 한글이 컴퓨터에서 바른 대접을 받고 있는가와 한글의 우수성에 비춰 정성스레 받들 자세가 되어있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거다.

인터넷 강국 ‘아래아’ 쓸 수 없는 비애


a 한글2005.

한글2005. ⓒ 한글과 컴퓨터

컴퓨터는 1과 2 두 숫자로 밖에 인식이 되지 않은 2진법이라 그렇다고 치자. 문서를 작성할 때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여기에 ‘한글(ㅎ+아래아+ㄴ)이라고 쳐놓고 인터넷 웹상으로 옮기면 난감해진다. 난감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글꼴이 깨진 상태로 나오고 만다. 일일이 여기는 ‘아래아’를 썼다고 주석을 달기도 뭐하다.

참 인터넷강국, 정보화 선진국 대한민국 현주소가 이렇다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그걸 감수하고서 문서작성을 할라치면 ‘ㅏ’를 두 번 쳐주면 되지만 행여나 누리세상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바뀌지는 않았는지 시험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에 그냥 올려보곤 했지만 언제나 답은 한결같았다.


가끔은 그림으로 처리해보지만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순경음비읍(ᄫ)이나 반치음(ᅀ), ᇹ 따위를 살려 쓰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말과 글은 태어나서 쓰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사멸어를 구태여 되살려 말글살이에 혼란을 초래하자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아래아는 아직도 꽤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어공부를 하다보면 가장 흔히 접하는 모음 중 하나이지 않은가. 중고등학생과 연구자에겐 없어서는 안될 코드다. 대중은 일상 언어를 쓸 때 남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올곧은 말을 되살려 쓸 줄 알고 표기에서도 좀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게 욕심이다.

1930년대 <조선일보>에 입사한 소설가 월탄 박종화는 ‘아래아’를 쓰지 말자고 주장한 첫 역적이었다. 이제라도 ‘아래아’라도 맘 놓고 쓰도록 문화관광부가 마음을 먼저 움직이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여 <한극과 컴퓨터> 등 고유 자산을 발전시키는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정말 안 되는 걸까?

제주 ‘도새기’(ㄷ+아래아)를 어찌 쓸까 암담하다. ‘아래아’뿐이 아니다. 예를 들면 “예있다”를 “옛다”로 쓰기보다 원음을 살려 '예‘ 아래 받침에 ’ㅆ'을 치면 어김없이 “예T다”로 나오고 만다. 불과 100년 전 한글은 물론 사투리를 옮길 때는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올바른 말글 정책 국가 정체성 및 장래에 관한 문제

a 훈민정음을 만원짜리 뒷면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훈민정음을 만원짜리 뒷면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 김규환

어문정책도 그렇다. 북한 문화어 표준인 <조선말사전>과 연변에서 출간한 사전을 보면 ‘홍수’를 ‘큰물’이라 한다. 어릴 적 내 고향 말과 같아 곧 통일이라도 될 듯 기뻤다. 하지만 남과 북 언어 이질화는 갈수록 심화돼 이젠 서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현저하게 달라져 있다.

한동안 방송에서도 ‘파고는 2미터’라고 쓰다가 그나마 북한에서 쓰던 ‘물결의 높이는 2미터’라고 개선한 기상 발표가 작은 위안이라면 위안이지. ‘동무’라는 말은 사전에만 들어있는 표준어다.

벌써 한글날은 스무날이 지났다.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여야 함은 나보다 더 뛰어난 필력과 논리로 수년 째 누차 강조하여 왔으니 나는 빠지련다. 다시 한번 주문하자면 이제 소모적인 논란 끝내고 제발 이번 정기국회 때 통과가 되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3.1절과 8.15광복절에는 친일청산을 주장하고 한글날이면 한글을 사랑하자는 등 연례행사로 들먹여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단지 통과의례가 아닌 진정으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건 때를 막론하고 그 때 그 때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무궁화, 태극기, 전통문화 등 살리고 보존하고 길이 물려줘야할 수많은 것 중에 단연 으뜸은 한글이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의 정수 손색이 없는 한글을 수 만대에 걸쳐 이어지게하려면 사단을 내서라도 국어정책이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 정체성과 국가 장래의 문제다.

외국어능력은 소수 몇 사람에게 중요하지 일상 업무에서 상황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그 일환으로 나는 토익이나 토플에 준하는 국어시험을 대학입시와 입사시험에 필수로 할 것을 바란다. 그 사람의 말글살이는 물론 업무능력 파악 그리고 정확한 의사전달의 잣대로 쓰면 어떨까.

글꼴도 그렇다. 사각 네모 안에 글자를 가둬두니 답답해서 못살겠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는 글자를 보노라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내가 한탄스럽다.

덧붙이는 글 | 이번에는 한글날 국경일이 될까요? 이런 건 날치기 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없을 텐데 참 뜸 한번 오래 들이는군요.

덧붙이는 글 이번에는 한글날 국경일이 될까요? 이런 건 날치기 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없을 텐데 참 뜸 한번 오래 들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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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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