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모든 것을 말한다

일본 무라카미월드연구회가 엮은 <무라카미 하루키 옐로사전>

등록 2005.10.30 16:35수정 2005.10.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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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옐로사전(Murakami Haruki Yellow Dictionary)>(2000년 10월 10일 새물결사 펴냄).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특히 추천할 만한 점은,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과 인간의 진실을 길지 않은(차라리 너무 짧다 싶은) 내용으로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만든, 군소리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육화(肉化)의 진액(津液)이라는 사실이다.

a 일본 무라카미월드연구회가 엮어낸 <무라카미 하루키 옐로사전>

일본 무라카미월드연구회가 엮어낸 <무라카미 하루키 옐로사전> ⓒ 새물결사

짧게는 1쪽에서 길어야 3쪽까지 넘어가는 본문을 읽어 보면 곧 이 책의 충실성과 치밀함에 탄복할 수 있는 청양고추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환상 여행 같은 유형의 소설 세계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다.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러한 꿈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꾸기 때문이다. 문예창작학도 시절에 나는 내가 꾼 꿈을 매일 아침 글로 옮겨놓으면 탁월한 판타지 소설이 여러 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판타지 스타일의 우의(寓意) 소설을 얕보고 있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번역을 마치고 나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비롯한 판타지 스타일의 우의 소설을 이해하는 나의 사정이 달라졌다. 만화 속의 상상력으로만 일으킬 수 있는 신기하고 거짓말 같은 것들이 속속 우리들 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판타지 스타일의 우의 소설은 오히려 디지털하고 벤처적인, 가장 적극적인 미래 창조형 리얼리즘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주제 전달 방식은, 새천년의 벽두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세계 문학사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원서에는 ‘아가사타나하…(한국의 ‘가나다라마바…’)’ 순서로 내용이 배열되어 있는 것을, 옮긴이는 ‘가나다라마바…’ 순서로 옮기는 식의 편리한 방법을 택하지 않고, 독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세계와 무라카미 하루키 인간 세계의 진실에 좀더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내용상의 영역 배치를 한 묶음하는 신장개업의 공을 좀 들여보았다.

말하자면 내용은 그대로이되, 음식 선택을 올바로 하고 그 음식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도록 좀더 충실한 차림표를 짜놓았다는 뜻이다.


또한 원서에는 없는 권말 부록 만들기에 신경을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연보와 장르별 작품 목록, 옮긴이가 쓴 무라카미 하루키 통신 동호회 사이트 여행기가 그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료의 가치가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겠다.

내용 중 한 꼭지만 감상해 보자. 제목은 ‘번역되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속의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가령 <양을 둘러싼 모험>은 한국, 미국, 프랑스, 독일, 홍콩,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스, 핀란드, 노르웨이, 대만, 폴란드,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러시아까지 총 19개국에서 출판된 상태다.

자기가 쓴 작품이 번역되는 것에 관하여 하루키는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자신의 작품이 다른 언어로 변형되는 것의 기쁨의 한 가지는, 나에게는 자신의 작품이 다른 형태로 되풀이해 읽지 않아도 될 자작(自作)을, 그것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른 언어로 치환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되돌아보거나 다시 보거나 하게 되면 제3자로서 냉정하게 향수(享受)할 수가 있다.

‘나의 책이 외국의 독자 손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나의 책이 나 자신에게 읽혀지는 것도 나에게는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옐로사전> 194~195쪽에서


이 책은 모두 9장과 권말부록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루키의 과거 또는 사생활’, ‘여행 속의 하루키’, ‘하루키의 세상 읽기’, ‘하루키의 사건 취재’, ‘하루키의 문학관(文學觀)’, ‘하루키의 소설 세계’, '하루키 소설 속의 등장인물', '하루키와 문학상', '번역에서 비평까지'.

하루키 소설 세계에 처음 접근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열렬한 하루키 마니아라 하더라도 이 책을 보며 하루키 소설을 하나하나 되새김질해 보는 것도 좋은 독서 체험이 될 것으로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김선영 기자는 2000년에 <무라카미 하루키 옐로사전>을 번역하였으며, 이 기사는 당시 '옮긴이의 말'을 참고하여 쓴 것입니다. 현재 이 책은 절판 상태이지만 대형 도서관에 문의하면 빌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선영 기자는 2000년에 <무라카미 하루키 옐로사전>을 번역하였으며, 이 기사는 당시 '옮긴이의 말'을 참고하여 쓴 것입니다. 현재 이 책은 절판 상태이지만 대형 도서관에 문의하면 빌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옐로사전

일본 무라카미월드 연구회 지음, 김선영 옮김,
새물결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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