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 광장에서 삭발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주시장과 시의회 의장(위), 이들의 농성장 바로 옆에는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군산지역의 펼침막을 찍은 대형 걸개판이 설치돼 있다.(아래)오마이뉴스 이주빈
지난 29일 밤까지 눈에 띄지 않았던 펼침막 하나가 30일 아침부터 경주 시내 곳곳에 내걸렸다.
'한번이라도 경상도 이겨봅시다', '경상도에 빼앗기고 후회말자'...
'군산의 실상을 보십시오'라는 제목이 달린 이 게시물에는 군산 지역에 걸려있는 펼침막 중 지역감정 내용을 담은 펼침막을 찍은 사진이 가득 담겨있었다. 군산은 방폐장 유치신청 지역중 유일한 전라도 지역 도시.
미워하면서 닮아간다 했던가. 이제 방폐장 유치 찬반투표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의 경쟁에서 절대 질 수 없다는 감정 대결로 변질되고 말았다.
"반대단체, 경주에 원자력발전소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30일 오후 경주역 광장. 백상승 경주시장은 이종근 시의회 의장 등과 함께 삭발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백 시장의 농성장엔 각 단체와 시민들의 방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백 시장은 주민투표 하루 전인 11월 1일까지 단식농성을 할 계획이라고.
백 시장은 "정말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농성천막 바로 옆에 군산에서 내걸린 펼침막 문구 사진을 게시해 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린 찬성 80% 이상 해본 적이 없는데 저쪽(전라도)은 90% 찬성하지 않나"라며 "정부가 호남에 방폐장을 주기위해 주민수용성을 따지는 주민투표를 고안해냈다"고 주장했다.
군산시가 정부의 경주지원설의 근거로 선전하고 있는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697억 지원 사실에 대해서 백 시장은 "2003년에 내려왔지만 아직까지 한 푼도 안썼다"고 해명했다. 그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산업자원부가 해명해줘야 하는데 아무 말도 않으니까 오해가 생기고 결국 저쪽(군산)이 이용하는 것 아닌가"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군산시에서는 정부가 방폐장 주민투표 발의 직전인 지난 달 29일 신월성 1, 2호기를 승인하고 원전주변지역 지원금을 푼 사실을 두고 '경주시민들의 반원전, 반방폐장 여론을 돌리기 위한 편파지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이다.
부재자 투표를 둘러싼 관권선거 시비와 관련 백 시장은 "거소자들이 대부분 기권하니까 부재자 투표라도 하라고 권유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책사업이 걸려있지 않으면 권유도 못한다"며 "정부가 법을 마련해 투표율을 어떻게든 올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부정선거 운운하나"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백 시장은 "사람들이 '역사문화도시에 웬 방폐장이냐'고 하지만 그 사람들 대부분은 경주에 방폐장보다 더 위험한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는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방폐장과의 연관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높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방폐장 주민투표가 안전성 논쟁보다는 영호남 대결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것은 유치반대 단체도 인정하고 있는 상태.
경주 핵폐기장반대 공동운동본부(공동본부) 이문희 사무국장은 "핵폐기장에 대한 찬반 양측의 생산적 토론은 온데간데 없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도시간 경쟁만이 남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