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기나 한번 해볼까나?

[동무들의 악다구니 11]70년대 자치기 현장

등록 2005.11.01 08:54수정 2005.11.0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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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비 편 가운데 한 사람이 입에 작은 자를 물고 통통통 뒷짐을 지고 구멍에 넣으려지만 쉽게 쏙 들어가지는 않는다.

수비 편 가운데 한 사람이 입에 작은 자를 물고 통통통 뒷짐을 지고 구멍에 넣으려지만 쉽게 쏙 들어가지는 않는다. ⓒ 김용철

"병문아 뭣 허냐?"


콩 타작을 마치고 사립문 세 개가 마주보고 있는 옆집으로 가서 동무를 불렀다. 어딜 갔는지 아무 대답이 없다. 또래끼리라도 끼리끼리 놀던 아이들에겐 호불호가 있게 마련이다. 성호는 키도 크고 재주도 뛰어났다. 달음질도 빨라 아이들을 줄줄이 몰고 다니며 왕처럼 군림했다.

골목대장은 아니었지만 모든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걸 마땅치 않게 여겼던 나는 늘 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 틈바구니에서 내 영역을 만들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급기야 그게 오랫동안 마음의 병이 되어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둘 간의 신경전이 극에 달하여 주전자를 던지며 싸우는 통에 이마에 최초로 큼지막한 흉터를 달고 다니는 계기가 되었다.

둘 다 나랑 같은 마을인데 놀이에서 대장이 성호였다면 공부에서는 육남이였다. 열 살에 학교에 진학한 육남이는 학교에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상이었어도 오로지 공부와 일에 매달렸다. 친구는 일찍 철이 들었던지 함께 놀 때가 거의 없었다.

아이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했던 나날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나눠줘 봐도 소용없는 게 환심 사는 일이다. 악으로 깡으로 때론 가장 좋은 장난감을 만들어 함께 해보자고 권하는 일도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우르르 아이들을 몰고 가버리면 반은 외톨이가 되었으니 독립심으로 정신무장을 하곤 했고 따라서 밖으로만 나돌지 않고 어머니와 보낼 기회가 다른 아이들이나 형제들보다 많았던 것이 옛 농사법과 전통놀이, 시골 음식을 두루 섭렵했던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셋째형까지 윗선에서 골목대장이었다. 내 친구들을 대동하고 곳곳을 누비며 낄 자리를 언제나 막았으니 그에 대한 반감은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내 영역이 없었겠는가. 누구보다 꼼꼼하고 치밀하게 사람 마음을 연구하여 즐겼으니 나라고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끈질긴 인내력의 소유자라 했던 건 어릴 적 추억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낫자루엔 소나무를 쓰고 도끼자루는 상수리나무, 부엌칼자루는 붉나무, 도리깨아들엔 윤유리나무와 닥나무, 물푸레나무 또는 대를 쪼개서 쓴다는 것쯤은 훤히 알고 있었고 야구방망이는 박달나무가 최고라는 지식은 내 힘이었다.

그뿐이던가. 새총과 화살에 쓰던 나무도 조목조목 알았다. 곶감꽂이로 좋은 싸리나무는 연기가 없어 청미래 줄기와 함께 빨치산들이 산에서 몰래 밥해 먹을 때 요긴하게 썼다는 것도 상식이었다. 손톱보다 작은 남부지방 윷짝은 대추나무가 제격이고 썰매 창대는 뒷골 인공조림지에서 베어온 리기다소나무다. 송아지 코뚜렛감은 양지쪽 척박한 땅에 있는 노간주나무 아니었던가.

그러니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제기차기와 함께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주로 했던 자치기 감으로 가장 좋은 나무 가운데 단연 으뜸인 때죽나무를 고르는 재주도 있었다. 때죽나무는 겉은 고동색이지만 속살은 우리네 살갗처럼 친근하다.

결이 곱기로 쪽동백나무와 매한가지며 칼을 잘 받아 예전부터 장식품 조각에 애용되었다. 게다가 목질이 단단하여 쉬 휘지도 않으매 갖고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감촉도 어떤 나무에 견줄 수 없도록 뛰어나다.

산과 들이 맞붙은 곳에 가면 때죽나무가 널려있다. 열매를 팍팍 짓찧어서 웅덩이에 뿌리면 수많은 고기가 마취되어 둥둥 떠오르니 건지기만 하면 한바가지 쏠쏠했던 꽤 쓸모 있는 나무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높다란 마룻바닥에 대톱을 가져와 조심조심 썰어 양쪽 모서리를 사포가 없던 때라 줄에 슬슬 문지르면 빼어난 장난감이다. 긴 자는 4, 50센티미터 가량이고 새끼 자는 3센티 한 치(寸)를 조금 넘어 구멍에 올리기만 하는 매우 작은 크기다.

둘이거나 네 명이 편을 나눠서 하는 자치기는 자(尺)로 길이를 잰다고 해서 붙여지는 않았다. 이를 갖고 놀았던 때는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즐겼던 지역은 우리나라뿐 아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장난감박물관'이 있는 이탈리아 나폴리 등 어느 곳에나 퍼져있었지만 유래가 전하지 않으니 몇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긴 막대를 자로 치고 그걸로 거리를 잰다는 것과 긴 자로써 작은 자를 쳐낸다는 의미로 추측할 뿐이다.

추위도 싹 가시게 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놀일 없이 어린시절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한몫 단단히 했던 자치기 현장으로 가장 좋아하는 동무 몇 명을 꼬드겨 추억에 빠져보자.

a 일명 '개잡기'가 자치기의 진수다. 이걸 할 줄 알아야 인정을 받았는데 헛치기 일쑤다.

일명 '개잡기'가 자치기의 진수다. 이걸 할 줄 알아야 인정을 받았는데 헛치기 일쑤다. ⓒ 김용철

고샅을 막 달렸다. 아이들은 짚더미 속에 파묻혀 무슨 작당을 하였는지 옷과 헝클어진 머리엔 지푸라기가 솔솔 묻어있다. 쌀쌀한 바람이 부른데도 기워 입은 무릎은 실밥이 터져있고 까만 때가 더덕더덕 붙어서 그나마 찬바람에 노출을 조금 피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야, 어디 끼대오냐? 자치기나 한 판 하자."
"자치기도 없는데?"

잠바 속에 따뜻하게 모셔놓은 자치기를 꺼냈다.

"여깄잖아 임마. 내가 고생고생해서 맹근 거여."
"질은 들었냐? 일로 줘봐봐."

매만지며 품질을 평가해보려고 하지만 흠잡을 데 없이 잘 다듬어져 있다.

"누구누구 편먹을까?"
"해섭이랑 성호 하고 규환이랑 내가 하믄 되겄네."
"그려? 그럼 그렇게 헌다."
"자 일로 줘봐. 내가 보지구멍 팔텡께."

긴 막대로 서울 명동이나 다름없는 동네 한복판 땅바닥에 쭉쭉 밀어서 구멍을 팠다. 지난 번에 했던 곳이지만 벌써 메워져있으니 다시 파는 거나 마찬가지다. 잔돌이 몇 개 볼가져 나왔다. 두개는 개잡기를 위해 남겨두고 멀리 던졌다. 옆에서 우리 편인 병문이도 거들었다. 막판에 두어 번 더 밀어주니 손색이 없다.

"야, 누가 먼처 할텨?"
"가위바위보 하면 되잖녀."
"그려."
"장깸장깸 포쇼."

우리 편 병문이가 먼저 공격을 하게 되었다. 새끼 자를 구멍에 걸쳐놓고 훅 밀어 던질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해섭이와 성호는 앞쪽에서 얼쩡거리며 새끼 자를 받으려고 한다. 해섭이는 몸집이 제일 작고 코흘리개였지만 몸놀림이 재빨랐고 성호는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로 모든 놀이에서 대가였다. 그렇다고 병문이가 호락호락 잡힐 못난이가 아니다.

잔뜩 웅크린 두 사내와 안간힘을 다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우리 편 간 치열한 눈싸움과 기지가 총동원 되었다.

"야야~ 바닥으로 쭉 깔아서 쩌짝으로 밀쳐버려."
"알았어."

"자 간다~"

거의 친 것이나 마찬가지로 "툭-" 걷어 올리자 두 아이들 사이로 키를 훌쩍 넘어 열댓 보 앞에 떨어졌다.

"아따 긍께 성호 너는 서 있어랑께 그냐?"

이제는 몇 자인지를 알아맞혀야 한다.

"야, 몇 자야?"
"열한 자!"
"병문아 재봐."

순순히 구멍에 던져서 주면 좋을 테지만 기어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병문이는 들고 있는 채를 가지고 둘둘 돌려가며 재빠르게 재간다. 내가 봐도 열두어 자는 넘어보였으니 안심이다.

이 놀이는 긴 자인 채가 손에 익어야 거리를 셈할 수 있는데 아직 몇 번 잡아보지 않은 그들에겐 내가 약간 짧게 잘라 만들었다는 걸 모르는가 보다. 속으로 통쾌했다. 해섭이가 작은 손가락 길이보다 짧은 막대를 입에 물고 뒷짐을 진채 총총 걸음으로 뛰어와 구멍에 넣어야 한다.

"한나 둘 서이 너이…."

다섯 걸음으로 나눠 총총히 뛰어와서는 보지구멍에 멈춰 선 채로 톡 떨어뜨렸다. '들어갈까 말까?'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는 것도 못할 짓이다. 모난 돌에 튀어 옆으로 비켜가고 말았다.

"휴-"

상대편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고 왼손에 새끼를 들고 있던 병문이는 오른손으로 가장 세차게 내리쳤다. "딱"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떤져!"

우리 쪽 작전사령관인 내가 보기에 어림 반 푼어치도 없게 구멍에서 멀어졌다. 이젠 서서 채를 쥐고 같은 손만으로 엄지와 검지를 가새표모양으로 하여 쥐고 위로 던졌다가 밑으로 떨어지기 전에 쳐낸다.

간혹 이 때는 곧바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자기 손을 맞추기도 해서 얼얼함을 맛보기도 한다. 나뭇짐도 단정하게 어떤 것 하나 만들 때도 허투루 하던 적이 없던 병문이가 날쌔게 후려 갈겼다.

방향을 빗나가 담벼락에 부딪히더니 돌 사이에 끼지 않고 다행히 밑으로 떨어졌다. 행여나 그 틈에 끼었더라면 지네들이 받았다고 우길 뻔 했으나 용케 세 번 굴러 떨어졌으니 옹졸한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다시 종처럼 새끼 자를 던져준다. 이때 자를 쥐고 있던 병문이가 사정없이 쳤다. 하지만 헛방이다.

"스트라이크!"

공격자가 나로 바뀌었는데 앞 순서까지는 무난했다. 이어 나는 왼손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작은 자를 빙그르르 돌려 땅에 떨어지기 전에 힘껏 후려쳤다. 회전력까지 더해지니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한껏 힘을 받아 독이 오른 덩어리가 상대편 눈에 들어오지 않을 힘으로 40여 보나 멀리 날아갔다.

만만히 보았던 둘은 얼른 받아서 종노릇을 그만 두고 싶었을 게다. 다음으론 내 특기인 일명 개잡기다. 개잡기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티끌보다는 두껍고 걸쳐놓기에 좋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구멍에 가로 댄다.

a 말타기 하던 친구들 못 본 적이 꽤나 오래되었다. 올 설부터는 매해 볼 수 있겠지. 남이섬 <그 때 그 시절> 전시관에서.

말타기 하던 친구들 못 본 적이 꽤나 오래되었다. 올 설부터는 매해 볼 수 있겠지. 남이섬 <그 때 그 시절> 전시관에서. ⓒ 김규환

상대가 채근을 하면 바로 옆에 있던 작은 돌멩이를 쓰기도 했다. 또르르 굴러 떨어지자 두 번째에 꼬맹이 한쪽이 약간 들리게 자리를 잡아 떨어지지 않게 올려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자, 잘 봐봐. 이 성아가 얼매나 개를 잘 잡는가 보란 말이다."
"공갈치지 말고 후딱 해봐 임마."
"알아 모신당께. 내가 울 집에서 연습했는지 모르지롱?"
"아따 뜸들이지 말고 언넝 해봐야."
"알았어. 잘 봐두거라 이놈들아."

다들 고수라도 여기서 멈추기 마련이다. 순발력과 민첩성만으론 잘 되지도 않는다. 큰소리 쳐놨으니 결정적인 순간에 솜씨를 보여줘야만 내 장담이 공염불이 되지 않는다. 구멍 바로 옆에 편안히 앉았다.

속으로 '하나, 둘!' 까지만 세며 위쪽으로 올라온 꼬맹이 끝부분을 "톡" 쳤다. 일순간 "툭" 튀어 올랐다. 찰나 오른손에 쥐고 있던 막대를 비스듬히 뉘어 알맹이를 쳤다. "딱!" 끝일 줄 알았던 아이들은 멍한 표정이다. 속이다 후련했다. 이왕 보여준 실력 다 할 생각으로 가랑이 사이에 넣고 쳐내려고 했지만 바짓가랑이를 때리는 바람에 그걸로 끝이었다.

긴 시간 싸움이 끝이 나고 우린 동네 앞까지 한바퀴 업혀서 돌아오고 나서야 다시 공수를 정하여 놀았다. 끝이 나고서는 실력 잃지 않으려고 돌멩이를 주워 냇가를 향해 몇 번이나 쳤는지 모른다.

차차 커감에 따라 지게 작대기로 산길과 들길을 오가며 무수히 돌을 쳐내다가 야구방망이를 알게 되면서 돌만큼 단단한 야구공을 무던히도 날렸다. 아, 고향마을 동무들 얼굴이 아른거린다. 고향에 가면 추억의 '장난감박물관'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삽화를 그린 김용철씨는 누리세상에서 '맛객'으로 활동하며 김규환 기자와 함께 인터넷에 고향느낌(!)이 풀풀나는 신문-www.고향i.com을 함께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삽화를 그린 김용철씨는 누리세상에서 '맛객'으로 활동하며 김규환 기자와 함께 인터넷에 고향느낌(!)이 풀풀나는 신문-www.고향i.com을 함께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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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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