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담천의의 하체를 노리며 도를 찔러오고 있었다. 도신 역시 빛을 반사시키지 않는 묵빛이어서 그저 상대의 움직임으로 공격방향을 예측해야 했다. 뿐이랴! 매의 발톱 형상을 한 철응조(鐵鷹爪)가 기척도 없이 바로 뒤에서 오른쪽 어깨를 향해 날아들었다.
허벅지까지 물에 잠겨 있던 담천의는 급히 왼발을 빼내며 오른쪽으로 돌았다. 동시에 그는 검을 뽑으며 철응조를 쳐내며 왼발로 하체를 노리고 찔러 온 묵도(墨刀)의 도배(刀背)를 차냈다.
까--강---!
튕겨 나간 철응조는 다시 허공에서 회전을 하며 담천의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발바닥으로 밀어낸 묵도 역시 가슴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담천의는 연속적으로 두 번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철응조를 피해내고, 파고드는 묵도를 향해 비스듬히 내리쳤다.
그것은 흡사 태산압정(泰山壓頂)의 초식과 같았는데 기이하게도 묵도로 담천의의 가슴을 노리던 자는 마치 자신의 목을 향해 찔러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담천의의 검은 수직으로 내리치는 것 같았지만 옆에서 보면 사선을 그으며 내리침과 동시에 찔러가는 것이어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려치는 담천의의 검을 막더라도 찔러오는 것까지 막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신음성을 흘리며 급히 몸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물 속에 처박히기 전에 물의 저항으로 인해 잠시 내려가지 못하는 사이 담천의의 검은 그의 복부 위로 미끄러졌다.
철퍼덕--- 찌이이--
헌데 기이했다. 상대는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빛깔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매끄럽고 탄력이 있었다. 천잠사(天蠶絲)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보통의 도검으로는 베지 못할 것으로 만든 묵린의(墨鱗衣)인 것 같았다. 묵린의는 영물이 될 정도로 오래 묵은 잉어의 비늘을 아교와 약물로 가공해 만들어 도검불침이라고 전해지는 옷이었다.
최소한 상대를 움직임을 더디게 할 정도의 중상을 입히리라 생각했던 담천의는 예상이 빗나가자 황급히 좌측으로 세발자국이나 물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귀로 허공을 긋는 철응조의 매서운 파공음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피한 곳의 물밑에서 예의 시커먼 도가 그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다른 또 한 명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급히 피하려 했으나 허벅지가 그어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붉은 피가 그의 허벅지에서 배어나왔다. 얼마나 큰 부상인지 파악할 사이도 없이 그는 검에 내력을 불어넣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벤 자를 향해 삼검(三劍)을 펼쳐냈다.
그의 검에는 찐뜩한 살기가 배어 있었고, 검극에서는 파란 불꽃이 일어나는 듯 보였다. 위급한 순간이었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스스로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속에는 추호의 용서도 없었다.
파아아악---!
일검이 솟구친 상대의 어깨를 긋고, 이검이 그의 옆구리를 베고 앞으로 당겨졌다가 동시에 펼쳐진 삼검은 그의 복부에 틀어 박혔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등 뒤로 다가드는 철응조를 옆구리 사이로 비껴내면서 철응조와 연결되어 있는 은사(銀絲)를 팔뚝에 감으며 앞으로 잡아 당겼다.
“헉---!”
철퍽-- 철퍽---
철응조를 놀리던 흑의인이 끌려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서너 걸음 당겨오는 순간 담천의의 신형은 빛살처럼 그에게 다가들어 그의 복부를 위로 베어갔다. 아무리 묵린의라 하더라도 내력이 담긴 담천의의 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끄--윽”
복부가 갈라지며 선혈과 함께 내장이 삐쭉 드러났다. 흑의인의 눈에 불신과 경악의 표정이 서린 채 굳어 들었다.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담천의 역시 급박했다. 자신의 등 뒤로 허리께를 노리고 파고드는 또 하나의 묵도는 정말 피할 여력이 없었다.
“훕....!”
숨을 집어 삼키며 그는 상체만 돌려 살을 파고드는 도를 쳐내며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허리의 옷가지가 베어나감과 동시에 담천의의 검은 상대의 목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사악---
흑의인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숨통이 끊어진 것이다. 거의 숨 한번 쉴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일은 너무나 급박하여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목이 덜렁거린 채 물 속에 처박히는 흑의인을 보며 돌렸던 상체를 본래대로 돌렸다.
그의 눈으로 복부가 갈라져 내장이 비집고 나왔던, 철응조를 사용하던 흑의인의 몸이 자신의 앞으로 넘어오는 것이 보였다.
철퍼덕----!
헌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내가 앞으로 꼬꾸라지는 순간 그 사내의 등 뒤에 또 다른 인물이 바싹 붙어있었고, 같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도를 찔러왔던 것이다.
“........!”
소리를 지를 사이도 없었고, 아무리 담천의가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 이런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피할 틈조차 없었다. 아득했다. 급히 물러나려 했고, 치명적인 곳만 피한다면 다행이었다.
동시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검을 앞으로 뻗었다. 헌데 담천의의 가슴을 한 치 정도 파고든 도는 기이하게도 더 이상 찔러 오지 않았다. 뒤늦게 뻗은 담천의의 검이 상대의 어깨와 목 사이를 찔러 들어갔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 자의 도가 멈추지 않았다면 담천의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터였다.
“누....누가....?”
도를 찔러왔던 사내는 앞으로 몸을 엎드린 자세였지만 먼저 쓰러진 흑의인을 의지해 상체를 비스듬히 세운 상태였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약간 살이 쪄 보이는 포목점의 주인같이 보이는 호인형의 얼굴을 가진 중년인이었다. 바로 양만화가 죽을 때 나타났던 사영천의 수장(首長)인 종리추(宗理錐)였다.
그는 애써 고개를 들어 담천의가 아닌 자신의 등 뒤를 바라보려 했다. 종리추의 등에서는 핏물이 뿜어지고 있었다. 누가 손을 쓴 것일까?
“종리추......! 너는 죽을 때까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목소리는 나직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종리추의 등 뒤에는 한 사내가 나타나 있었다. 바로 우교였다. 그의 손에는 피가 방울져 떨어지는 무영도가 잡혀 있었다.
“크큿.... 그렇군. 바로..... 자네였군.”
“억울한가? 네 놈을 파고든 것이 무영도다.”
무영도는 살천문 문주의 표기이자 잘못한 문도의 형을 다스리는데 쓰이는 것. 우교가 무영도임을 강조하는 것은 종리추 역시 한 때 살천문에 몸담고 있었던 살수였음을 의미한다.
“결국 나는..... 그 지겨운..... 살천문을..... 벗어나지 못했군.....끄르르......”
목소리에 가래 끓는 소리가 섞이고 있었다. 입가에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등에서 복부까지 관통당한 그의 내장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다.
“한번 몸 담으면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지.”
“그...그렇군.........”
종리추는 한 번만이라도 우교를 똑바로 보고 싶었다. 언제나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친구이자 동료였다. 우교를 따라잡기 위해서 그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면 벌써 저만큼 앞에 있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우교는 천생의 살수였다.
죽는 이 순간에 세월이 흘러 변한 그의 모습을 또렷하게 보고는 싶었지만 이미 주위의 사물은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희끗한 머리칼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어른거렸다. 눈을 껌뻑여 눈을 가리고 있는 이 뿌연 장막을 걷어보려 했지만 세상은 점차 검은 빛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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