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97회

등록 2005.11.02 08:08수정 2005.11.0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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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꺾은 머리를 조금 더 치켜 올리려고 안간 힘을 쓰는 듯 했다. 그리고는 무너지듯 자신을 바치고 있던 흑의인의 몸 위로 포개졌다.

“문주는 아주 고약한 호위로군.”


담천의가 피식 웃으며 말을 던졌다. 내용은 질책이었지만 억양이나 태도는 농을 하는 듯 했다.

“영주가 죽지 않았으면 아주 훌륭한 호위 아니오?”

우교 역시 능글거리며 말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담천의와 우교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문주는 아주 고약한 호위일 뿐 아니라 아주 뻔뻔한 호위임에 틀림없소.”

“나도 너무 바빴소. 물론 저들이 영주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해 나란 존재를 알지 못한 덕에 손쉽게 처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곱이나 처리했단 말이오.”


“빌어먹을.... 세상에 호위할 사람을 미끼로 써 먹는 호위는 이 세상에서 문주 밖에 없을 거요.”

당랑규선(螳螂窺蟬)이라.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는 자신을 노리는 참새의 존재를 모른다. 결국 담천의는 매미가 된 셈이었다.


“그 덕에 이리 빨리 끝낼 수 있었잖소?”

“문주 같은 호위를 믿다가는 제 명에 살지 못할 것 같소.”

“한 번 믿어 보시오. 이번 건도 결과적으로는 큰 이득을 본 거래 아니오?”

“언제부터 그리 입에 기름을 발랐소?”

“영주와 같이 다니려면 아무래도 기름칠을 해 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우교는 정말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능글거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은 하면서도 연신 담천의의 왼 팔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괜찮은 거요?"

“병 주고 약 주려고 그러오?”

“세상에는 병만 주고 약은 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소. 그래도 안 주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소?”

말과 함께 우교는 담천의에게 걸어와 비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마비된 담천의의 왼팔은 우교가 만져도 감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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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도 셋째가 말해준 모양이구나...”

백결의 말에 전월헌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긍정하나 부정하나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백결의 본명이 송결이라는 사실이었다.

“네 말이 맞다. 내 본명은 송결이다. 대명의 의식과 제례의 기틀을 세우신 잠계(潛溪) 송(宋)자 렴(濂)자 쓰셨던 분의 손자다.”

전월헌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확인했다. 셋째 사형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잠계 송렴은 주원장을 보필해 대명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태자의 스승을 지냈던 인물이다. 백련교로 보자면 지금도 적이 되어야 할 인물. 그 자손이 백련교에 있다면 그 진의를 어찌 믿을 수 있을까?

“강남송가(江南宋家).....?”

전월헌의 목소리도 싸늘해져 갔다. 맞는 것이다. 결국 사형제들 간의 기이한 기류는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둘째 사형이 원인일 수 있다. 왜 셋째 사형이 확인하고 베라고 했는지 이해되는 것 같았다.

“약간 다르지....크흣...”

백결은 자신의 술잔에 다시 술을 따르고는 훌쩍 마셨다.

“지금의 강남송가는 셋째 작은 아버님의 가문이다. 본가는 이 우형 외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바로 송가의 장손(長孫)이자 내 큰형인 송신(宋愼) 덕분이지. 아니.... 그 형 때문만도 아니다. 주원장의 욕심 때문이라 해야 옳겠지.”

송신(宋愼). 대학유(大學諭) 송렴을 빼닮았다는 송렴의 장손(長孫)이자 걸출한 젊은 영재였던 그는 결국 호유용의 옥에 관련되어 전 집안을 풍비박산나게 했다. 그로 인해 송렴마저도 사천 땅으로 귀향을 가서 떠돌다가 객사한 것은 비운의 일화. 그저 강남송가라 명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가문이 강남송가였다.

“이 우형 나이 겨우 열셋 이었다. 그 당시 본가에 없었던 덕분에 화를 모면했지. 할아버님을 비롯해 부모님과 형제들도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백결의 눈에 뿌연 안개가 서리는 것 같았다. 열셋의 나이로 온 가족을 잃었다. 그 뒤의 삶이 어떠했으랴! 더구나 끊임없이 관헌(官憲)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고, 역모로 몰린 자의 형제를 숨겨줄 인물은 이 중원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본 교에 들어 온 것이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숨겨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어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본 교에 가입시켰으니까..... ”

전월헌은 일단 안도의 숨을 돌렸다. 태생이 다르기는 하나 최소한 둘째 사형은 자신들을 해하기 위해 백련교에 가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한번이라도 녹을 먹었던 사람은, 더구나 송렴과 같은 대학유의 가문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주원장과 그 주씨 일가가 세운 명을 인정하지 않지만 백결과 같은 사람은 언제건 그 제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전월헌은 흘러가는 말투로 툭 한마디 던졌다.

“사형은 차라리 천지회에 가입할 걸 그랬소.”

백결의 입꼬리에 기이한 조소(嘲笑)가 물렸다.

“알고서 하는 말이냐? 아니면 정말 모르면서 묻는 말이냐?”

“..........!”

“인정하기는 어렵겠지. 이 우형이 모두 말해준다 해도 아마 너는 믿으려 하지 않겠지. 하지만 판단은 네 몫이다.”

전월헌은 혼란스러웠다. 셋째 사형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백결에 대한 사항을 모두 가르쳐 주면서 확실하게 판단하고 베라고 했다. 백결이 다시 자신의 술잔과 전월헌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이 우형은 분명 천지회에도 가입했다.”

“역시 그랬구려.”

전월헌은 애매한 표정으로 백결을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잔을 치켜 올렸다. 같이 마시자는 뜻이었는데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백결은 전월헌과 마찬가지로 잔을 치켜 올린 후 단숨에 마셔버렸다.

“말할 시간은 주겠지?”

“물론이오.”

백결은 자책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전월헌을 비웃는 듯한 미소를 베어 물며 말을 이었다.

“이 우형이 백련교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은 우리 내부 사형제 외에는 그리 많지 않다. 누군가는 우리와 적대시하고 있는 천지회의 내부로 파고 들어가야 했지. 그 중 하나가 이 우형이었고, 적어도 지금까지 본교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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