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예요

[서평] 박대곤의 <유쾌한 수의사의 동물병원 24시>

등록 2005.11.03 18:02수정 2005.11.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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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키

생활수준이 나아져서인지 요즘에는 동네마다 동물병원 2~3개씩은 다 있는 것 같다. 강아지를 아기처럼 품에 꼭 안고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기용품처럼 강아지 옷이며, 머리핀 등의 액세서리, 사료를 비롯한 먹이에 장난감까지 애견용품 시장도 굉장히 커졌다. 심지어는 '애완동물 보험상품'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마치 본인이 지니고 다니는 장식품으로 착각하여 인형처럼 꾸며서 데리고 다니다 마음에 안 들면 치워버리는….

이 책은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현직 수의사의 1998년 12월부터 2005년 5월까지의 진료일지다.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유쾌한 수의사의 동물병원 24시>의 유쾌한 진료 에피소드와 애완동물 기르기 관련 상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가 불룩한 것이 분명히 새끼를 가진 것 같다며 개를 데리고 왔다.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개도 초음파 해요?"

검사를 해 보니 자궁에 고름이 가득 차 있는 자궁축농증이었다. 수술을 시켜야 한다니까 개 주인은 반신반의, "수술비는 얼마예요?"하고 물어보더니 그냥 돌아간다. 며칠 후 개 주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저씨! 오진했어요. 애견센터에 갔었는데 임신이래요. 수술했으면 큰일 날 뻔 했잖아요!"

'고스톱 쳐서 딴 의사면허가 아닌데….' 자존심이 팍팍 상하지만,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래요? 그럼 오진했다고 치고 다시 한 번 병원에 오세요. 무료로 초음파 해 드릴게요." 드디어 왔다. 최대한 친절하게 "어서 오세요. 어디 한 번 봅시다."

복부 촉진을 하고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자궁축농증이 더 심해져 복부가 빵빵한 상태였다. 지난 번 사진과 비교하여 보여주고 "이번엔 진짜 수술을 해야 합니다." 하니 개 주인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그래요?" 곧 다시 오겠다고 하더니 감감 무소식이다.


사실, 나는 직접 개를 기르는 입장이 한 번도 되어 보지 않았기에 동물병원하면 털도 깎아주고, 광견병 예방접종 시키는 정도로만 단순히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아파서 병원 진료를 받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까지 시츄를 길렀던 어머니는 "개한테도 아기처럼 병원진료수첩이 다 있더라. 의료보험도 안 되고 원~" 하시면서도 열심히 병원에 데리고 다니시며 예방주사 맞히고, 기생충약도 먹이고, 털도 짧게 깎이고 하셨다.

상황에 따라 진료비를 깎아주기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사람 사는 맛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진료비를 깎는 흥정을 하는 수의사의 입장에서는 참 난감할 성 싶다.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개똥녀'가 논란이 되었었다. 우리나라도 이르면 2007년부터 애완동물 등록제가 실시된다고 한다. 현재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예고되어 있다. 예고안에 따르면 생후 90일 미만의 애완동물은 사고팔 수 없으며, 애완동물을 데리고 외출할 때 목줄을 채우고 배변봉투를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린다고 한다.

수의사는 '…대한민국에서 수의사로 산다는 것이 많이 힘들 때가 있다'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는 수의사로서가 아니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좀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도서명 : 유쾌한 수의사의 동물병원 24시
지은이 : 박대곤
출판사 : 도서출판 부키

덧붙이는 글 도서명 : 유쾌한 수의사의 동물병원 24시
지은이 : 박대곤
출판사 : 도서출판 부키

유쾌한 수의사의 동물병원 24시

박대곤 지음,
부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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