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나왔어도 부대엔 알려주지 않는다"

군 병원, 노충국씨 위암가능성 부대에 통보 안해.. 군의료 부실 입증

등록 2005.11.04 10:49수정 2005.11.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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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4일 오전 11시 32분]

a 3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민가협 목요집회 참가자들이 제대 15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사망한 노충국씨를 추모하며 군대 내 의료접근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3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민가협 목요집회 참가자들이 제대 15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사망한 노충국씨를 추모하며 군대 내 의료접근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달 27일 위암말기로 숨진 고 노충국씨의 진료를 맡았던 국군광주병원측은 노씨 소속부대에 위암발병 가능성에 대해 전혀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군광주병원측이 노충국씨 동생 현숙씨와 면담에서 '위암 발병 가능성을 부대에 알려줄 이유도 없고 제도가 그렇게 돼 있지 않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노현숙씨는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국군광주병원을 찾아가 병원장, 진료부장과 노씨의 내시경 검사를 맡았던 군의관 등 3명을 1시간 가량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동생 노씨는 '암 가능성이 있었다면 왜 소속부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며 군 병원 질병관리의 소홀함을 따졌다.

이에 대해 병원장은 "개인의 병을 부대에 함부로 통보하지 못하게 돼 있다"며 "예를 들어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같은 경우에도 당사자 외에는 알려주면 안 되게 돼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부대에 소문이 나게 되니까, 본인이나 보호자에게는 설명해주지만 남의 병에 대해서는 함부로 설명을 못하게 돼 있다"면서 "감기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제도 자체가 그렇게 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씨의 내시경 검사를 담당했던 군의관은 다소 다른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이 군의관은 "위암 진단이 확정됐다면 당연히 부대에 통보했을 텐데 아직은 위궤양인 것으로 (판단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위암인 것으로 판명됐으면 부대에 통보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군의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원장은 "조직검사 결과 위암이 나왔어도 보호자와 당사자에게만 알려주지 (소속) 부대에는 알려주지 않는다"며 군의관의 설명을 끊었다.


장병 건강상태는 군 전력에 중대요소... 지휘관은 반드시 알아야

a 31일 오후 '고 노충국씨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을위한 비상대책위'는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 및 민관합동조사단 구성, 국방부장관 사죄, 사병들의 의료접근권 보장, 군에서 발병한 질환으로 고통받는 현역·예비역에 대한 대책마련, 국가인권위의 직권조사 실시 등을 촉구했다.

31일 오후 '고 노충국씨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을위한 비상대책위'는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 및 민관합동조사단 구성, 국방부장관 사죄, 사병들의 의료접근권 보장, 군에서 발병한 질환으로 고통받는 현역·예비역에 대한 대책마련, 국가인권위의 직권조사 실시 등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병이 위중할수록 본인에게만 알려준다'는 병원장의 말은 장병의 건강상태가 현역 복무 가능 여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비상식적이다.

장병의 건강상태는 군 전력에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위중한 병일수록 소속 지휘관에게 환자상태를 알려 지휘관이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하는 일은 군에서도 상식에 속하고 지휘관들도 지휘관리에 있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또 전염병의 경우, 군에서는 감염자를 즉각 격리 조치하는 등 아주 민감하게 대처하고 있다. 단체생활을 하고 각종 시설을 공동 이용하는 군 생활의 특성 때문에 전염병이 퍼질 경우 큰 전력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장이 "당사자 이외에는 알려주지 않게 돼 있다"고 언급한 에이즈의 경우도 군은 감염 확인 즉시 군 병원에 입원시킨 뒤 전역조치하고 있다. 이에 필요한 각종 인사명령을 내기 위해서는 소속 부대 지휘관에 발병 사실을 알리는 것이 필수다.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월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5년 1월까지 에이즈 감염자로 확인된 군인 총 37명이 전역 조치됐다.

위암 가능성 소속부대 알리지 않았다? 군 의료 총체적 부실 입증

장병의 건강상태가 군과 지휘관들의 중요 관심사인 것을 감안할 때, 병원측이 노씨의 병세를 소속부대에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씨 본인에게 위암 발병 가능성을 충분히 알렸다"는 병원측 주장은 다시금 그 진위가 의심된다.

그럼에도 국군광주병원측은 "4월 28일 내시경 검사에서 위암발병 가능성을 노충국씨 본인에게 경고하고 입원을 권유했지만, 휴가시 민간병원에서 진료받겠다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입원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방부 환자관리지침을 보면 환자가 입원하기 전까지는 군 병원이 그 진단결과를 소속부대에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부대에서 군 병원으로 외래진료를 보낼 때 환자가 지참하게 하는 '외진 의뢰서' 뒷면에 진료내용을 기록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것도 '필요시' 하도록 돼 있고, 외진 의뢰서 발급 자체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 형편이다.

군 의료시스템의 부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외래진료를 받은 장병에게 심각한 질병의 위험성이 발견됐을 때 그 결과를 소속부대나 상급자에게 의무적으로 알리는 절차를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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