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하는 중세 잡학사전

[서평] 키아라 프루고니 <코앞에서 본 중세>

등록 2005.11.04 09:32수정 2005.11.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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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유럽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말을 탄 기사나 전쟁, 마녀사냥 정도가 아닐까? 아무래도 중세라고 하면 무엇인가 신비로운 느낌이 들면서, 스케일이 큰 사건들만 있었을 듯하다. 거대한 성이나, 드라큘라 백작, 십자군 전쟁 등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유럽의 중세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이런 류의 암흑과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중세를 꿈꾸는 독자라면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될 책이다. 이 책은 암흑에 싸인 신비로운 중세가 아닌, 실제로 중세를 살았던 일반적인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 그다지 신비롭지 못한 책이다. 하지만 신비롭지 못하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책은 중세에 발명되고 사용되었던, 그래서 지금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많은 발명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안경, 책, 금속활자에서부터, 카드, 체스, 카니발 축제 등의 놀이, 단추나 스타킹과 같은 의류 등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중세의 물건은 수 십 가지가 넘는다.

이러한 물건들에 대해 저자기 일일이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안경을 설명하다, 책으로 넘어가다가, 공증인이 튀어나온다든지, 카니발을 얘기하다가 연옥에 대해서 얘기한다든지, 산호에 대해 얘기하다가, 단추가 만들어지고, 착탈식 소매에 대한 이야기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등, 자유분방하게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 놓는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이 중세 시대의 발명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중세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지은이는 갖가지 물건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 기원이나 가치를 무뚝뚝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이러한 물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에 중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은이는 산호에 대해 얘기하다가 산호로 만들기 시작한 단추 얘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단추가 장식품이어서 '사치금지법'의 위반을 무릅쓰고도 단추를 사고자 했던 여인네들에 대한 일화를 풀어 놓는다. 여성의 장신구를 규제하는 책임을 맡았던 한 법관이 "위원님들의 지시대로 여자들에게 금지된 장신구를 조사한 결과 그들이 쓰는 물건들을 어떤 법으로도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토로하는 내용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단추라는 제품이 당시에 어떤 물건으로 여겨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일상용품들을 단순히 글로만 읽어간다면 아무리 자유분방하고 대중적으로 썼다 할지라도 정말로 재미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부분을 흥미로운 그림들에 대한 설명으로 보완한다. 대략 200페이지 분량의 본문에 100개나 되는 그림이 포함되어 있는데, 다들 본문 내용과 어우러져 중세의 생활을 엿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그림들일 것이다.


어디서 이런 그림을 찾아냈는지 신기할 정도로 그림만으로도 이 책은 독자에게 중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어, 중세의 잡학 사전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무리 많은 글로 이 책을 설명하려 한들, 이 책에 들어 있는 그림 몇 장을 보는 것보다 못할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서양인이 서양인의 시각에서 쓴 책이니만큼 동양이나 아랍 문화에서 전파되었거나 유래된 물건에 대해 그다지 그 기원을 정확히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양보다 항상 몇 세기 앞서 모든 것을 발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중국이 종이를 만든 것도'라고 하는 문장 투가 이를 잘 보여준다. 또 출판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고려의 금속활자 얘기는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역자나 출판사 쪽은 왜 직접 저자에게 얘기해서 깨우쳐 주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 책은,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마법이 횡행하고, 신비한 연금술로 가득 찬 암흑의 중세가 아니라, 선명한 꽃들로 가득 찬 중세의 초원에서, 지은이의 말처럼, 지은이가 직접 따서 만든 한 묶음의 꽃다발과 같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도서 제목 : 코앞에서 본 중세
저자 : 키아라 프루고니/곽차섭
출판사 : 도서출판 길

덧붙이는 글 도서 제목 : 코앞에서 본 중세
저자 : 키아라 프루고니/곽차섭
출판사 : 도서출판 길

코앞에서 본 중세 - 책, 안경, 단추, 그 밖의 중세 발명품들, 역사도서관 003

키아라 푸르고니 지음, 곽차섭 옮김,
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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