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서평] 아멜리 노통브의 <공격>을 읽고

등록 2005.11.06 16:00수정 2005.11.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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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 되도록이면 책을 깨끗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펼친 채로 책을 엎어두는 일이 없으며, 조금이라도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책장을 넘긴다. 그것은 내 책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빌려온 책을 읽다보면, 무언가로 얼룩진 흔적이나 구겨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모서리가 접혀지거나 책이 두 동강 나 있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


책을 볼 때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상태의 책을 돌려 볼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들르면 제일 먼저 책 상태가 최상인 신간코너로 발길이 떨어진다. 그곳에서 아멜리 노통브의 <공격>을 만났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이라기에 무심코 펼쳐든 책의 첫 장, 첫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난생 처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난 웃고 말았다. 그게 나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요즘도 거울을 들여다볼 때면 웃음이 나온다. 그게 나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독하게 못생긴 얼굴을 보면 웃음이 나오게 마련 아닌가.

주인공 에피판 오토스는 자신이 이제껏 본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인간이라고 스스로 일컫는다. 그래서 추남추녀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 이야기가 이쯤 나왔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가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쯤으로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내 기대는 가당찮은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장을 읽고 또 읽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야기의 결말은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몇 번을 읽고서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모자란 것을 꿈꾼다. 내 흉한 몰골을 견뎌 내기 위해서 나는 철근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이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섹스에 엄청난 환상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 섹스는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성배처럼. 내 생각이 옳다. 몇몇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나누는 일이 절대적이고도 숭고한 행위이자 최고의 행복일 것이다. … 나 같은 존재가 여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순수하고도 단순한 금욕이리라.


못생긴 외모 때문에 29세가 되도록 한 번도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에피판, 물려받은 유산을 다 써버렸을 무렵,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다가 예술 영화에 출연할 추남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영화의 주연 배우 에텔을 만나게 된다.

못난 얼굴 때문에 수난을 겪는 에피판과 예술 영화 때문에 수난을 겪는 에텔은 서로 애처로워하며 친구가 된다. 그렇게 열 한 달 동안 에피판은 친구를 가장하여 마음 속으로는 깊이 에텔을 사랑하지만 에텔은 미남 화가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공을 들였건만, 에피판은 에텔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걸 두고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결국 에피판은 편지로 에텔에게 고백을 했고, 에텔은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져 달라고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을 죽임으로써 사랑을 완성한 에피판. 책장을 덮고 나서야 왜 책제목이 하필이면 공격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원제는 테러였다.). 공격이든 테러든 책제목은 기실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다.

교도소 독방에 격리 수용된 에피판은 자신의 추한 몰골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교도소에서 기억으로 에텔을 되살리며, 존재하고자 하는 에텔의 욕구를 채워주며 읊조린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다고.

소설가 김형경은 <외출>에서 '사랑이란 거대한 세상이 한 사람으로 수렴되거나 축소되는 일'이라고 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누구도 에텔을 사랑할 수 없게 존재를 이슬로 만들어버린 에피판은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 것일까?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문체는 여전히 독자를 사로잡는다. 결말이 조금은 충격적이긴 했지만, 만연해 있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환기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가 아멜리 노통브였다면 어떤 결말을 그려냈을까? 극단적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각자 나름대로 결말을 설정해보는 묘미를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공격, 원제 Attentat(1997),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열린책들 펴냄, 값 7,500원

덧붙이는 글 공격, 원제 Attentat(1997),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열린책들 펴냄, 값 7,500원

공격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열린책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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