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 나도 데리고 가렴

[바위나리와 떠난 여행 19] 가을비 내린 뒤 농촌 들녘 풍경

등록 2005.11.08 21:46수정 2005.11.0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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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푸짐하게 내렸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주름진 농부의 땀방울을 먹으며 자란 벼는 알곡을 모두 주인에게 돌려준 뒤 볏짚만 남아 논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푸짐한 가을비에 흠뻑 젖어 누워있는 볏짚을 보면 늦가을의 쓸쓸함이 절로 느껴집니다.


이기원
가을비에 흠뻑 젖은 채 누워있는 볏짚 모습에서 추수 끝낸 뒤 농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허리가 휘어져라 애써 지은 농사지만 땀 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가을비에 흠뻑 젖은 채 누워있는 볏짚의 모습이나, 제 가치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애꿎은 담배 연기만 뿜어대는 농민의 모습이나 처량하고 안 되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기원
가을을 맞아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지와의 오랜 인연을 끊고 흙을 향해 몸을 던질 날만 기다리다가 때마침 쏟아지는 가을비와 함께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흩날리는 은행잎을 따라 가을도 서서히 저물어갑니다.

늦가을 들녘에서는 메뚜기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만 살아야할 운명에 순응하여 대부분의 메뚜기들은 시들어가는 풀과 함께 숨을 멈추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은 메뚜기 한 마리가 가을비에 젖어 무방비로 떨고 있습니다.

이기원
사방을 둘러봐도 손 내밀어 구해줄 동료는 보이지 않습니다. 황금 들녘의 좋았던 시절의 근력도 사라져서 훌쩍 뛰어 물 없는 곳으로 피해갈 자신도 없습니다. 저물어가는 가을과 함께 저 메뚜기도 숨을 거두겠지요.

추위에 떨면서 메뚜기가 지는 가을을 향해 처량하게 외쳤습니다.


"가을아, 나도 데리고 가렴."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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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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