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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컴퓨터 앞에서 자세를 취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엷게 웃기까지 했습니다. 아내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하얀 빛이 번쩍했습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아내가 디지털카메라를 컴퓨터 본체와 연결합니다. 방금 찍은 제 모습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납니다. 화면 속에서 제가 기분 좋게 웃고 있습니다.
실로 7년만입니다. 7년만에 새로 컴퓨터를 구입했습니다. 그동안 컴퓨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글에는 아무래도 사진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글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진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컴퓨터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너무 오래 되어 사진기능이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사진이 들어가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 기사 등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습니다. 체면불구하고 사무실 컴퓨터를 이용합니다.
저는 사진 없는 제 글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요. 천연색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이 흑백영화를 보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독자들께서도 제 글을 보며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쁜 사진도 올려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닙니다. 저도 얼마든지 예쁜 사진을 올릴 수 있습니다. 좀 더 산뜻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독자들을 좀 더 편안하게 모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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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컴퓨터 앞에서 자세를 취했습니다 ⓒ 박희우
저는 방안을 둘러봅니다. 컴퓨터 때문인지 방이 훤합니다. 컴퓨터 바로 옆에는 서재가 있습니다. 컴퓨터와 서재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은 대부분 오래되었습니다. 누렇게 탈색된 책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아닙니다. 화려하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디지털카메라로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찍습니다. 저 책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입니다. 저 친구들만 있으면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책만 보면 누그러집니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책만 보면 힘이 솟아납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무슨 책이 그렇게 많으냐고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살래살래 손을 흔듭니다. 결코 많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이분들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닙니다. 이삿짐센터에서도 그런 말을 합니다. 그분들 하시는 말씀이 책이 물건 중에서 제일 무겁다나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웃돈을 조금 더 얹어줍니다.
저는 30대에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1일1권 주의가 제 목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꼬박 밤을 새울 때가 많았습니다. 책값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예 월급의 20%를 책값으로 책정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께서 그런 말까지 했겠습니까. 아예 책하고 결혼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열정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1일1권 주의는 꿈에도 꾸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한 달에 한두 권 정도 읽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1일1편 주의로 방향을 수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일1편 주의라,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는 겁니다. 덕분에 저는 500편 넘게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내세울 만한 작품이 단 한 편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글쓰기 자체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숙한 글이지만 제 글을 찾는 독자들도 있으니까요. 그분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욱이 새로운 컴퓨터까지 마련했잖아요. 앞으로 예쁜 사진도 많이 올리고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즐거운 저녁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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