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민기자 명함을 내밀 때가 왔습니다

<취업도전기④> 갈 길을 정했습니다

등록 2005.11.11 16:22수정 2005.11.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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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사면 뭐해? 면접을 보러 갈 기회가 있어야지."


졸업한 지 2달이 넘어가고, 서류 전형조차 통과 못하는 나를 보며 여자친구는 종종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난 여러 차례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싸움은 매번 내가 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구구절절 옳았기 때문이다.

"내가 오빠를 정말 실망스럽게 생각하는 건, 그런 거 몇 번 떨어졌다고 해서가 아냐. 무언가 앞을 내다보는 계획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매번 싸우면서 얻는 것이 없었던 반면, 드디어 그녀의 한 마디 말에 내 머리가 확 깨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시절, 대학교 시절만 해도 내가 갖고 있던, 하고 싶었던 꿈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너무 많다 보니 오히려 무얼 할지 애매해져 버린 상황이 온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을 다 경험해 보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만나면, 어쨌든 수입원은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언제까지 꿈을 꾸는 소년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험 준비를 위해 할 일을 정리하다 보니 벽면 하나를 꽉 채웠네요.
시험 준비를 위해 할 일을 정리하다 보니 벽면 하나를 꽉 채웠네요.양중모
그리고 때늦은 감은 있지만,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난 정말 무얼 하고 싶은 것일까? 여러 일들을 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난 기자가 가장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달리하셔서 아주 짧은 기간밖에 인턴 경험을 할 수 없었지만, 그 짧았던 <오마이뉴스>에서의 인턴 기억을 떠올렸다. 스트레이트 기사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오연호 대표에게 자주 지적 받은 일,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잔인한 질문을 해야 하는 경우 등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기자에 대해 강렬히 꿈꾸었던 내 욕망은 아마 그 시점쯤에서 많이 사그라들었다. 스트레이트성 기사를 써야 할 때도 있는 사실이 무척이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졌고, 인턴 기간 동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성수대교며, 삼풍 백화점 참사며, 당시 그 때 기자들이 했던 건 치열한 취재 경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런 고통을 겪은 자들에게 꼭 그렇게까지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냐고 비판했고, 그런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기자란 참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겉보기에는 멋있어 보이지만, 단명하는 직종 순위권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면, 기자는 사실 3D업종의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종이 신문를 발행하는 신문사에 들어가려는 언론고시생들의 경쟁은 한없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의 인터넷 모임을 가보면, 재수는 기본이고, 삼수까지 하며 대입입시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자학적인 심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들이 그렇게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마이뉴스> 인턴 기간 중 첫 과제였던 아시아나 노조 파업을 취재하러 가며 만났던 그 장애인 아저씨가 생각난다. 가는 길 우연히 만났던 그 아저씨,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다가가 대화를 했고, 인턴이 끝난 후 기사를 만들어냈다.

기사에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아저씨의 어투에는 힘들게 살아온 삶에 대해 포기도 해보고, 체념도 해보고 하는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초연한 듯 말할 수 없던 그 말투. 그리고 그 기사는 운좋게도 포털 사이트로 갔고, 자주 악플이 달리던 내 기사들과 달리 그 기사에는 거의 대부분 긍정적인 글들이 올라왔다.

아마도 그 사람들도 삶에 지쳐 있었을 것이고, 삶에 대해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볼 때 기뻤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은 내가 왜 기자가 되고 싶어했는지를 말해주는 그런 일로 내 가슴 속에서 떠올랐다. 기자는 때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희망을 주기도 한다. 난 그런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신문사도 하나의 조직이니 만큼 쓰고 싶은 것만 쓸 수 없을 테고, 그러다 보면 그 길이 싫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면 싫어진다'던 한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다시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강렬히 사로잡힌 것이다. 아무래도 내게 아직까지 '기자', 진짜 기자라면 사회에 희망을 불어 넣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어쩌면 환상과도 같은 마음이 더 강렬하기 때문이리라.

이제 회사들 공채도 거의 끝났고, 난 아버지께서 밥값을 안 받겠다고 약속하신 그 1년 안에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노력을 할 예정이다. 한 정치인이 "요새는 K대생도 기자 하나?"라고 물었다는 소문이 있었을 만큼 언론사에 대한 장벽은 낮지 않다.

요사이 블라인드 면접 등 그런 추세가 약해진다고 해도, 언론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이란 결코 쉽지 않다. 오죽하면 한 언론인이 "딱 1~2년만 준비하세요. 결국엔 시간 버리는 일일 뿐입니다"라고까지 했겠는가.

난 그 시간을 버려진 시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물론, 지독히도 싫어하는 영어 공부를 억지로라도 해야 하며, 이해하기 힘든 두꺼운 개론서들도 읽어야 하는 건 기본적이라는 현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꿈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난 한 언론인이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인 카페에서 충고한 "10시간 공부하세요"라는 말을 따를 생각도 물론 없다.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채우기 위한 공부는 물론 하겠지만, 그 시간 동안 난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많은 사람들을 만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이곳을 빌려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시점에 와서 받고 나서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정작 써본 일은 없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에 눈길이 간다.

그 1년 저 명함을 다 쓸 만큼 가열차게 살아보리라. 그리고 1년 후 내게 어떤 명함이 들려 있을지 그건, 신만이 알 일이다. 영어를 공부하다가, 국어를 공부하다가, 상식을 공부하다가, 필독해야 할 책을 읽다가, 사회를 담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나가 명함을 주며 이렇게 말하리라.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양중모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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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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