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 97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12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젠 잊힌 화두가 돼버렸다. 안기부 'X파일'이 공개되고 공운영씨 집에서 274개의 도청 테이프가 압수됐을 때만 해도 도청 내용 공개 및 수사는 국가적 의제였다. 하지만 넉 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도청 내용 공개 및 수사는 그 누구의 입에서도 운위되지 않는 잊힌 화두가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홍석현씨가 돌아왔다. 그래서 반갑다. 이건 구경꾼의 입장이다. 홍씨의 귀국에 난감한 이들도 있다. 검찰이다. 독수독과(毒樹毒果. 독이 있는 나무의 과일에도 독이 있다 : 불법적으로 취득한 자료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례에서 비롯된 법률 용어)론을 펴온 검찰로선 홍씨의 귀국을 계기로 독과에 손을 대야 한다.
홍씨의 귀국 기념으로 언론이 쏟아낸 혐의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97년 대선 때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시에 따라 여야 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건넸고, 명절 때 검사들에게 떡값을 줬다는 게 'X파일'로 불거진 홍씨의 굵직한 혐의점이다. 이 줄기에서 뻗어나온 곁가지 혐의점은 더 많다.
이 혐의점들은 한결같이 'X파일'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검찰의 표현을 빌리면 독과다. 검찰은 그래서 곤혹스럽다. 도청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홍씨에 대한 조사, 즉 그의 혐의점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씨의 혐의점을 수사하는 순간 검찰은 독과에 손을 대는 것이다. 물론 손만 대고 베어 먹지는 않을 수도 있다. 기댈 곳도 있다. 공소시효다.
하나 더 있다. 'X파일'이 세운 줄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풍 사건에서 단서가 잡힌 문제에 한정해 수사를 풀면 된다.
이렇게 하면 독과에 손을 대는 일은 피할 수 있겠지만 다른 난제에 봉착하게 된다. 세풍 사건에는 없는 떡값 검사 문제 등을 제쳐놓기 때문에 부실 수사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검찰이 피해갈 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이러한 혐의점이 확인됐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사법처리는 할 수 없다고 발표하는 순간 검찰은 독과를 입에 가져가는 꼴이 된다. 도청 내용을 자진해서, 그리고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이 순간 논란은 번진다. 왜 'X파일'만 공개하고 274개 테이프 내용은 덮어두느냐는 지적은 당연히 따라붙는다. 검찰이 내세울 논리는 하나다. 홍씨의 혐의점은 이미 언론에 의해 공개된 것이고, 274개 테이프는 미공개로 남아있다는 점을 확인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언론의 보도행위를 정당화는 결과를 빚는다. 검찰 스스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행위에 기대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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