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비싸댜!" 어머니의 밉지 않은 흥정

규모는 작아졌지만 여전히 사람 내음과 인심만은 넉넉합니다

등록 2005.11.15 14:42수정 2005.11.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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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세린이, 태민이를 태우고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 시골장터를 찾았습니다. 저희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시골장터에 갈 수 있습니다. 매달 3과 8이 들어가는 날(3, 8, 13, 18, 23, 28)에만 서는 5일 장, '갈산장터'입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는 홍성군 내에서도 갈산장터는 꽤 큰 시장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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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규모는 작아졌지만 여전히 시끌벅적함이 있는 장터

하지만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읍내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인구가 줄면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장터는 장터입니다. 장터 입구에 들어서자 트럭 위에 장착된 커다란 스피커에서 장윤정의 '짠짠짠' 트로트가 시장 구석구석 울려 퍼지면서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돋웁니다.

트럭 옆에는 김장철을 겨냥한 듯한 각종 그릇들이 오는 손님, 가는 손님의 시선을 끌어당기려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자식들 김장김치 챙겨 줄 생각이 나셨는지 플라스틱 김치 통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더니 그 중 몇 개를 고르십니다.

"워딨슈? 장사 안유."
"(트럭 뒤에서)여깄슈."
"그렇게 장사해서 어디 이거 오늘 다 팔겄슈?"
"아주머니가 많이 팔아주면 되지유. 아이고, 아들하고 며느리인가 보네. 이놈들은 손주들? 왜 이렇게 이쁘댜! 할머니는 좋겄슈. 이렇게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이쁜 손주들하고 나들이도 하고. 우리 며늘님은 김장 할 줄 아나?"
"얘들이 무슨 김장 헌대유. 다 내가 담아 주지."
"잘됐네. 며느리 김장 담아 주려면 그릇 필요하겠구만. 하나 사슈. 싸게 줄게."

일단 어머니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들, 손주, 며느리 예쁘다는 칭찬을 듬뿍 하시고는 은근슬쩍 그릇을 파시려는 아저씨의 속셈에 속으로 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야박하게도 비싸다면서 그릇을 사지 않으셨습니다. 살 것처럼 하시면서 한창 시간을 끌다 사지 않으니 옆에 있던 제가 아저씨한테 괜히 무안합니다. 어머니한테 그냥 사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장사하시는 분들의 상술 못지않은 어머니의 싸게 사는 노하우를 공개하십니다.

"이렇게 얼굴 한 번 비추고 이따가 다시 와야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거여."


배추 값이 금값이라고? 시골장터에서는 싸던데!

그렇구나! 어머니의 노하우(?)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당당한 뒷모습 따라 졸졸 시장 안으로 걸어갑니다. 채소를 파는 곳입니다. 어머니는 시장에 나온 배추를 보시더니, 우리 집 배추가 훨씬 좋다고 하시면서 그냥 지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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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저는 요즘 배추 값이 금값이라는 말에, 실제로 그런지 궁금해서 한 포기에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한 포기에 1천원이라고 하네요. 3개 사면 2천원. 속으로 그랬습니다. '에이~ 금값은 무슨 금값이야.'

배추 값이 비싸다는데, 사실 산지에서는 한 포기에 몇 백 원도 안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뉴스에서 배추가 비싸다고만 할 게 아니라 왜 비싼지를 한 번 점검해 봤으면 합니다. 사실 유통단계가 잘못 돼서 그렇지, 배추가 비쌀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연일 배추 값이 금값이다 뭐다 하면서 시끌벅적 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제 값 못 받는 것도 서러운데, 비싸다면서 괜히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농민들은 얼마나 속 터지는 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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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어? 감 열린 감나무도 파네!

멀리 감 열린 감나무가 보여 가보니, 감이 열린 것이 아니라 가지 사이에 감을 끼워 놓은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고도(?)의 판매 전략에 그만 웃었습니다. 시골 장터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의 순박함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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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때 아닌 수박을 가득 실은 트럭이 눈에 띕니다. 아까 감 열린 감나무와는 달리 '저게 시골에서 팔릴까?'하면서 트럭 옆에서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를 은근히 걱정해 봅니다. 그래도 팔리니까 장터에 가지고 나오신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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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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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포장마차가 있습니다. 어찌나 반갑든지, 만두 배부르게 먹고는 옆에 있던 옛날 과자 파는 곳에서 아버지 드리려고 과자하고 낱개로 파는 사탕을 한 봉지 샀습니다. 사탕 파시는 아주머니는 애들이 예쁘다면서 다른 봉투에 한 주먹 사탕을 따로 담아 주셨습니다. 사람 사는 냄새와 인심을 느껴 봅니다.

"하나만 더 줘유" "안돼유" 어머니와 아주머니의 밉지 않은 흥정

어머니가 '생물' 파는 곳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아버지가 지난 번에 제가 사다 드린 고등어하고 꽃게를 그렇게 맛있게 드셨다면서 살 것이 있나 보자고 하십니다. 여기에 있는 생선들은 웬만하면 다 살아 있는 싱싱한 활어입니다. 인근에 대하축제로 유명한 남당리 포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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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길게 늘어 선 생물시장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걸어갑니다. 아주머니들이 당신들 앞을 지나칠 때마다 "이거 사유. 금방 잡아온 거라 싱싱허유" "싸게 줄게 이리 와 봐유" 하시면서 사주기를 간절히 부탁하십니다.

그럴 때면 저는 참 마음이 안 좋습니다. 다들 제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물이 고여 있는 차가운 시멘트 위에 작은 스티로폼 하나 놓고 앉아서는 하나라도 더 파시려는 모습, 저것 팔아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손자손녀들 오면 용돈도 주고 하실 텐데.

어머니와 아내는 오면서 몇 번 흥정하셨는지 한참 후에 나오십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길 가에서 파는 게 싸야. 거기가 덤도 더 주고" 하시면서 길가에서 파시는 아주머니들을 향해 걸어가십니다.

"이거 얼마유?"
"만원이유."
"왜 이렇게 비싸댜! 쩌기에서는 8천원 하던디."
"무슨 말을 하는규. 8천원 하는디가 워딨슈. 여기 생선 파는 사람들 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유."

큭큭,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어머니의 거짓말은 들통 났습니다. 저와 아내는 어머니 뒤에서 막 웃었습니다. 그렇다고 물러나실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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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그짓말 말유, 동네 사람이 이렇게 많유?"
"아, 다 한 동네 사람은 아니쥬. 옆 동네 사람들도 있고, 아무튼 한 동네든 옆 동네든 다 알고 지내고 산께 동네 사람이지 뭐래유."
"그럼 만원에 몇 개 더 주유."
"그렇게 팔면 우린 뭐 먹고 산대유. 이것도 많이 주는 거유."
"만날 보는 사람끼리 왜 그런댜. 아, 우리 며느리하고 손주들 점심에 끓여 주게 두 개면 더 주유."
"아이고 참, 알았슈! 하나 더 줄게유."

결국 어머니는 작은 것으로 꽃게 두 마리 더 얻으시고는 무척이나 좋아 하셨습니다. 아참, 그릇은 여전히 제 값을 고수하시는 아저씨 탓에 다른 곳에서 샀습니다. 500원 깎으려고 다리 품 많이 팔았습니다.

이제 살 것 다 사고 구경할 것 다 구경 했습니다. 모처럼 행복한 가족나들이 했습니다. 시골장터의 넉넉함도 느끼고요. 세린이가 다음에 또 오자고 하네요. 그 말 듣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 이렇게 다니는 시간도 내게 얼마나 허락될지 모르는 일이니 시골에 오면 집에만 있지 말고 이렇게 장터도 오고, 온천욕 하고 가야겠다고 말입니다.

a 시장 한 모서리에서 장사하시는 할머니. 집에서 기른 듯한 채소 몇 가지를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집니다. 한 푼이라도 벌어서 자식들 공부 시키고, 결혼 때 집 한칸이라도 마련해 주려는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자식들은 얼마나 알까요?

시장 한 모서리에서 장사하시는 할머니. 집에서 기른 듯한 채소 몇 가지를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집니다. 한 푼이라도 벌어서 자식들 공부 시키고, 결혼 때 집 한칸이라도 마련해 주려는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자식들은 얼마나 알까요?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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