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 뽑길 정말 잘했네

푸짐한 겨울살림을 위한 첫 단추, 김장 시작

등록 2005.11.15 21:06수정 2005.11.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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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주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먹고도 남을 많은 분량입니다. 몇 사람과 나누기로 했답니다.

아주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먹고도 남을 많은 분량입니다. 몇 사람과 나누기로 했답니다. ⓒ 김규환

어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마냥 가을일 것 같던 날씨가 입동을 지나더니 찬바람이 씽씽 분다. 누구도 속일 수 없는 게 계절인가. 이번 주 내내 춥다기에 어제는 모든 일을 접고 한가지에만 몰두했다. 요새 날씨는 급변하는지라 언제고 달려갈 마음의 채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바로 밭으로 달려갔다. 애써 키운 무가 얼기라도 하는 날엔 올해같이 김장거리가 대접받는 해엔 더욱 난감한 일 아닌가. 예정에 없이 가는지라 도시락도 싸지 않고 주머니에 달랑 만 원짜리 한 장 넣고 내달렸다. 서울에서 양평 뒤쪽인 가평 유명산 앞에 한 시간 30분 가량 걸렸다.

a 촘촘히 심어 자라든 말든 가만 내버려뒀으니 올 무 김치 맛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훨씬 맛나겠지요?

촘촘히 심어 자라든 말든 가만 내버려뒀으니 올 무 김치 맛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훨씬 맛나겠지요? ⓒ 김규환

조금 빈 땅이 있기에 배추를 먼저 심고 퇴비 좀 뿌리고 둘둘 파서 해강, 솔강, 아내와 주말을 이용해 씨를 흠뻑 뿌렸다. 배추와 달리 씨가 잘 나서 몇 번을 솎아다 먹었는지 모른다. 그 뒤론 무 잎만 한번 따줬을 뿐 북도 하지 않았고 벌레가 먹든 말든 나 몰라라 했고 거름기가 떨어져도 방치 상태로 놔뒀다.

시장에 내다팔지 않고 우리가족이 먹고 남으면 몇 사람 나눠줄 셈이었으니 크게 키울 필요가 없잖은가. 개수만 많지 심기는 서둘러 일찍 심었는데 고만고만 더디게 자란다. 무생채를 해먹어보니 달고 매콤한 맛이 적당히 들었다. 단단하기도 하고 위로 노출된 부분이 많아 하늘 본 파란 부분이 더 많다. 잎은 단풍이 들어 노랗다.

a 가장 큰 축에 속한 무가 이 정도니 작은 건 어떨지 아시겠지요? 그래도 무 구실을 하니 다행 아닌가요.

가장 큰 축에 속한 무가 이 정도니 작은 건 어떨지 아시겠지요? 그래도 무 구실을 하니 다행 아닌가요. ⓒ 김규환

일단 며칠 간 더 놔두어도 괜찮은 배추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얼 듯 말 듯 해야 수분이 쏙 빠져서 설컹설컹한 맛이 더하지 않던가. 무 밭에 들어가 대강 포기 수를 헤아려보니 400여 포기나 된다. 내 머릿속은 ‘이걸 어찌 해치워야 농사지은 보람을 극대화할까’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수도 없는 무김치 종류 가운데 머리에 떠오르는 첫째는 동치미다. 동치미라는 이름보다 싱건지가 더 맛나니 중간 걸로 우리가 먹을 분량으로 40여 포기를 책정 했다. 제일 큰 것은 보관을 해서 두고두고 꺼내다 조림에 생채, 깍두기용으로 쓰면 된다. 거의 자라지 않은 좀생이는 두 번 칼침을 놓아 우리 고향에서 ‘바개지’라 부르는 섞박지를 담그기로 했다.


이 많은 무를 프라이드에 다 싣기나 할까 염려되었다. 다음으로 몇 차례 공언을 해왔기에 나눠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맨 먼저 누나가 떠올랐다. 그 다음엔 동생, 또 누구더라. 뿌리를 뽑으면서 전화를 몇 군데 더 돌렸다.

a 무를 뽑았습니다. 어제 오늘 두발 쭉 뻗고 잘 수 있답니다. 남부지방도 서둘러야겠습니다.

무를 뽑았습니다. 어제 오늘 두발 쭉 뻗고 잘 수 있답니다. 남부지방도 서둘러야겠습니다. ⓒ 김규환

무서리가 내리더니 살얼음도 잡혔는데 차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와 봤다며 내 밭을 구경나왔다. 이 정도면 잘 키웠다고 칭찬까지 해줬다. 혼자 하는 일이라 더디기만 하다. 그래도 날씨가 이만해서 다행이다. 예년 같으면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려 오래 하지 못하는데 따스한 햇살에 바람이 불지 않으니 할만했다.


뒤 트렁크와 뒷좌석, 앞자리에 세 단계로 나눈 무를 옮겨 실으니 점심때를 놓쳐 허기가 몰려왔다. 그래도 그냥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 가져온 물통에 물을 받아 담아야 한다. 동치미는 물맛 반 무맛 반 아닌가. 가득 싣고 나니 차가 움직일 수 있을까 싶게 축 내려앉았다. 조심조심히 비포장도로를 빠져나와 평소 들르던 방일리 해장국집에서 요기를 했다.

청평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남양주 평내에서 누나에게 자잘한 것 중심으로 한 무더기 내려주니 한결 달리기가 편해졌다. 쏜살같이 달려 집에 오니 하루해가 뉘엿뉘엿 지며 날이 더 쌀쌀해졌다. 차에서 무를 내리지 않고 놔두고 있다.

a 푸짐한 해장국 한 그릇에 허기와 피로가 싹 가셨답니다.

푸짐한 해장국 한 그릇에 허기와 피로가 싹 가셨답니다. ⓒ 김규환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시시각각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 체감온도가 아니라 실제 기온이 내려가니 어제 뽑아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오늘 밤엔 발을 쭉 뻗고 자도 되겠다. 낮에 항아리를 씻어놨으니 오늘 밤엔 아내와 밀린 이야기도 나눌 겸, 무를 다듬으며 첫 김장을 해야겠다.

섞박지는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굵은소금에 버무려놓아 봄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무김치를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한겨울이 지나가는 게 기다려진다. 올 겨울은 푸짐하게 맞이해야겠다.

a 운전석만 빼고 가득 실었습니다. 오늘 내일 다듬을 걸 생각하면 그리 맘이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운전석만 빼고 가득 실었습니다. 오늘 내일 다듬을 걸 생각하면 그리 맘이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중부지방은 본격 김장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예년보다 1, 2주 앞당겨진다고 합니다. 김치파동이 있는 올 핸 김장이 더 소중한 시간이 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중부지방은 본격 김장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예년보다 1, 2주 앞당겨진다고 합니다. 김치파동이 있는 올 핸 김장이 더 소중한 시간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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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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