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
속옷은 삐져 나오고 '추리닝' 바지는 엉덩이께로 흘러 내린 채 호박이 떨어질까 봐 엉거주춤 걸음으로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이 걸작이었다.
"가운데 호박이 제일 못 생겼다. 그건 버려라. 못 쓰겠다."
"아빠. 이것 좀... 이것 좀... 어서요오~"
가운데 못생긴 호박만 안전하고 양 쪽의 잘 생긴 호박이 불안했다. 소리치는 새날이를 세워두고 나는 사진기를 들이댔다.
일이 힘에 부쳤는지 아니면 카메라에 대한 복수인지 새날이는 카메라하고 놀기 시작했다. 내 똥구멍을 찍는다고 졸졸 따라 다녔다. 잠잠해지나 했더니 삼각대를 세워 두고 혼자서 별의별 표정을 지어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너는 오늘 가을 들판에서 뭘 봤느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물어 봤다.
"잼 없어요. 아빠가 본 거는 나도 다 봤어요."
"내가 뭘 봤는데?"
"그건 아빠가 알잖아요."
호호, 요즘 호박은 제법 재치도 있구나 싶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잘 말해 봐. 새날아, 오늘 뭘 봤냐?"
새날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정말 말해 볼까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라고 했더니 새날이는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쏜살같이 도망부터 갔다.
"나를 봤어요. 우하하하~ 이 말 아빠가 제일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진짜예요. 카메라로 나를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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