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이 떴다 하면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따뜻한 겨울 나기 위해 땔감 장만하기

등록 2005.11.17 15:50수정 2005.11.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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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
요즘은 어디를 가나 차창 밖으로 나무를 살피게 된다. 시내를 지날 때는 건축공사 끝나고 버려둔 나무더미가 있나 살피고 시골길을 갈 때는 산판장이 있나 둘러보게 된다. 이른 봄이나 초겨울이 나무를 베어 내기 좋은 때라 가끔씩 벌목하는 곳을 발견하면 횡재를 하는 것이다. 겨울 땔감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읍 쪽에서 연락이 왔다. 산더미 같이 나무가 쌓여 있다고 했다. 동네 이장이 공터에 있는 나무를 빨리 치워 달라는 것이었다. 벌목 끝나고 버려둔 나무들인데 그 동네는 거의 기름 보일러라 나무를 때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기름 값이 만만치가 않아 나무 보일러나 온돌로 바꾸는 농가가 심심찮게 있지만 그것도 비용이 드는 일이라 아주 연로하신 분들은 그도 저도 못하고 그냥 지낸다. 코앞 마을 공터에 있는 나무도 가져 갈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착잡했다. 노인네들이 다 돌아가시면 유령들만 살 산간 농촌 마을이 캄캄했다.

전희식
먼저 진안에 사는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그 친구에게 포클레인이 있으니 가더라도 그와 함께 가야 한다. 그보다도 과연 정읍까지 근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린데 갈만 할지 판단을 먼저 해야 했다. 나무가 적으면 괜히 헛고생이고 트럭이 못 들어가면 그 역시 그림의 떡이다. 더구나 5톤 트럭에 포클레인을 싣고 가서 나무를 다 옮긴 다음에 다시 포클레인을 싣고 와야 한다.

그 동네 이장님이 5톤 트럭에 서너 차는 충분히 된다고 해 우리는 다른 일 제쳐두고 각자의 트럭을 몰고 갔다. 나무가 정말 많았다. 부리나케 오길 잘 했다 싶었다. 그동안 한 발 늦어 놓친 나무들이 제법 있었기에 우리 둘은 회심의 미소를 주고 받았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나무를 보자 배부터 부른 우리는 동네 슈퍼에 가서 소주를 한 병 사 오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감나무에 걸려 있는 홍시도 몇 개 안주 감으로 땄다. 낙엽들을 휘몰고 다니는 을씨년스런 초겨울 바람이 술맛을 바짝 돋우었다.


전희식
트럭 짐칸 양옆으로 기둥을 세워가며 나무를 가득 실었다. 내 1톤 트럭에 실리는 나무 양과 5톤 트럭에 실리는 후배의 나무 양이 자꾸 비교가 되었다. 겨울철 나무 욕심은 후배가 끌고 온 포클레인의 덕을 잠시 잊게 할 정도였다. 앞서 가던 후배가 비상등을 켜더니 차를 길 옆으로 댄다. 나도 차를 멈추었다.

"형님. 한 그릇 하고 갑시다."


길가에 팥 칼국수 집 간판이 보였다.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속까지 뜨끈뜨끈해지는 팥 칼국수를 먹고 나니 추위도 가셨다. 한 그릇을 더 시켜 둘이서 나눠 먹었다. 배가 불러오자 만사 걱정이 사라졌다. 겨울 내내 등 따실 나무더미는 부른 배와 함께 우리를 겨울 부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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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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