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의 심정 누가 알아줄까

[만화야 안녕15] 자취생을 다룬 만화

등록 2005.11.18 15:57수정 2005.11.18 18:42
0
원고료로 응원
자취생. 곤궁하게 느껴지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단어다. 그래도 한때는 자취하는 친구나 선배가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집에서 편하게 따뜻한 밥을 먹는데도 그들이 그리웠던 것은 왠지 모를 자유와 해방감 때문이었다.

요즘은 자취를 한다고 해도 깨끗한 원룸에 인터넷이 되는 곳이 필수지만 지나온 시절만 해도 자취방 하면 바닥에 늘 깔려 있는 담요부터, 구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라면상자며 옷과 이불을 넣어 두던 비키니 옷장 등이 떠오른다.

여기 한국과 일본의 자취생을 다룬 만화가 있다. 두 나라의 자취생활은 어떤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작품 다 자취생에다 미술을 한다는 것도 같다. 너무 리얼해서 상상하는 재미는 없을 것 같은 작품이지만 바로 이 작품들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허니와 클로버>... 미대생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성장기

a

ⓒ 학산문화사

우미노 치카의 <허니와 클로버>(학산문화사)다. 3평 좁은 공간에 그나마 부엌이 반이나 차지하고 방음시설은 전혀 안된 낡은 아파트에서 가난한 미대생들이 모여 산다. 무전취식의 귀재 대학 7년생 모리, 순정파 짝사랑남인 안경잡이 마야마, 순진무구한 소심 청년 다케모토, 하나모토 교수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조각가 하구미, 마야마를 짝사랑하는 철인여자 야마다까지 시끌벅적한 일상이 펼쳐진다.

엽기와 로맨스 감동을 갖춘 만화로 모든 캐릭터가 사랑스럽고 살갑다. 억지로 엽기스럽지 않아도 충분히 기인기질을 갖춘 모리다는 이 만화의 꽃이다. 하구미에 대한 사랑을 눈치채지 못하는 다케모토, 냉정한 마야마를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하는 야마다. 야마다라는 여자 캐릭터의 기나긴 짝사랑을 따뜻하고 귀엽게 그려냈다. 순정만화 같은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들의 대학생활은 배고픈 자취생들의 모습 그 자체다. 다케모토가 직장을 구하자마자 직장이 부도나 버리고 마야마는 자리를 찾지 못해 연구생으로 대학에 남는 상황은 미래가 불안정한 대학생의 현실을 비켜가지 않는다. 그들은 다 클로버를 하나 가득 안고 있고 나눠줄 줄 안다. 네 잎의 행운을 찾지 못했더라도 세 잎의 행복은 넘칠 만큼 갖고 있다. 일본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습지생태보고서>... 우리들의 블랙코미디

a

ⓒ 거북이북스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거북이북스). 사실 작가가 이전에 무슨 작품을 했느냐를 아는 것은 지금 보고 있는 작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작가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규석은 많은 화제를 낳은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그린 작가다.

<습지생태보고서>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있는 작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작가의 시선과 철학이 살아 있는 만화다.

3대째 내려 온 가난으로 궁상스러운 최군,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왠지 정이 가는 재호, 마음이 약해 늘 피해만 보는 정군, 작업 이외의 인간적인 욕구에는 무관심한 몽찬. 이들은 지방의 만화학과 대학생으로 군식구 사슴과 함께 반 지하 단칸방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아간다. 비만 오면 반지하 방에 물이 고인다고 해서 습지라고 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불편한 것이다? 고도의 자본주의 속에서 가난은 불편과 부끄러움을 넘어 마치 죄를 진 것 같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인정 많고 유쾌한 삶을 역설한다. 가난하지만 꿈이 있어 만족하고 사는 최군. 그러나 친구들로 인해 잘 데가 없는 좁은 방을 보고 주절거리듯 독백한다.

"…성공하자! 지평선이 생성되는 방에서 매일매일 천 바퀴씩 굴러다녀 줄 테다." - 14화 '안분지족(安分知足)' 중에서.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만 아니라면 오랜 가난은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다.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소유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돈 쓰며 놀아본 적이 없으니 유흥과 공부를 놓고 고민할 일이 없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좀 낫게 사는 친구들보다 적은 용돈이나마 늘 여유가 있고, 더 힘든 녀석을 만나면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호기를 부릴 수도 있다." - 45화 '가난의 효용' 중에서.


가난한 그들이지만 현실을 도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시인 김상용도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노래했듯이 '낙담하지 말고 웃자'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살아 숨쉬는 가난하지만 결코 궁상스럽지 않는 자취생활 지침서이다.

허니와 클로버 1

우미노 치카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2003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