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젓대를 불면 향기가 진동한다

제12회 방일영국악상 받은 명인 이생강 이야기

등록 2005.11.20 10:53수정 2005.11.2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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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12회 방일영 국악상을 수상하는 이생강 명인

제12회 방일영 국악상을 수상하는 이생강 명인 ⓒ 김영조

"그대 천 년을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바람이여
바람의 혼이여
무에 그리 서러워 목놓아 울다가
쓰러진 바람들을 일으켜
어디로 또 가는 게냐"


김시천 시인은 '젓대 소리'를 이렇게 노래했다. 신라의 '만파식적'이 천 년을 흘러 여기까지 왔나 보다. 이생강의 젓대 소리를 듣고 뉘 이렇게 느끼지 않으리오. 흐느끼듯 흐느끼듯 이어지는 젓대는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우리말로 '젓대'인 대금의 한국 최고 명인으로 꼽히는 죽향(竹鄕) 이생강(68·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선생이 지난 11월 18일 늦은 4시 조선일보사 별관 7층 대강당에서 '방일영 국악상'을 받았다. 이 상은 국악 부분에선 가장 큰 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12회를 이어 온 '방일영 국악상'은 주로 성악 쪽에만 치우친 감이 있었는데 기악 쪽에 처음이다시피 한 수상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a 제12회 방일영 국악상 시상식

제12회 방일영 국악상 시상식 ⓒ 김영조

이 상의 심사위원장인 한명희 선생은 이생강 명인을 수상자로 뽑은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동안 그에게 붙여져 온 명성은 결코 우연이나 허명이 아니고 예술적 자질과 노력이 직조해온 필연적 결실이라 하겠습니다. 실로 이생강 명인의 젓대음악은 그동안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달래오며 우리의 생활 속에 포근한 서정의 앙금을 쌓아 왔습니다. 특히 지난 세기 후반 내내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대중의 심금을 달래가며 한국 음악계, 특히 관악음악에 기여한 몫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a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이생강 명인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이생강 명인 ⓒ 김영조

명인의 수상에 축사를 한 해금 명인 김영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장은 "좀처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장소를 가지리 않고 어디서나 우리의 소리를 전파하려는 자세야말로 예술인의 기질을 타고난 것으로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생강류 대금산조에서 보여준 특이한 취법(吹法)은 그만이 갖고 있으며 선생 스스로도 고집스럽게 주장하시는 면이 강하게 두드러집니다"라는 평가를 했다.

김영재 명인 외에도 한양대 권오성 교수는 "원효대사처럼 모든 경계를 넘나든 명인", 김문성 고 김옥심추모사업회 회장은 "아줌마 응원부대 몰고 다니는 국악 스타", 윤중강 국악축전 예술감독은 "산조 불면, 무지개 뜬다!", 최종민 동국대 교수는 "창조역량을 겸비한 관악기의 달인", 김정한 서울대학교 교수는 "천하제일 대금", 박환영 부산대학교 교수는 "타고난 관악기의 귀재"로 평가하며 축하했다.


그는 '퓨전국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원조로 불린다. 보수적인 국악의 풍토 속에서 눈총을 받아가며 60년대 말부터 대금과 서양악기와의 협연은 물론 대금을 이용한 가요, 팝, 재즈 연주를 시도했고 이렇게 만든 크로스오버 음반도 수십 개나 된다.

a 이생강 명인의 추억의 소리 3집 음반 표지

이생강 명인의 추억의 소리 3집 음반 표지 ⓒ 신나라

'방일영 국악상'을 받은 이생강 명인은 수상과 함께 신나라(회장 김기순)를 통해 이생강 크로스오버 연주집 '추억의 소리 3집' 음반도 출시했다. 그의 호소력 있는 연주는 크로스오버에서 더욱 빛난다는 평을 받는데 창작곡과 더불어 가요와 팝, 민요, 동요를 아우른 연주집이다.


이 음반에는 '춤의 소리(무용곡)', '강원풍류' 등의 창작곡, '짝사랑', '가슴 아프게', '애수의 소야곡' 따위의 가요, '엘 콘도 파사', '대니 보이' 등의 팝송, '양산도', '진도아리랑' 따위의 민요, 동요 '가을'이 담겨있다. 이 음반의 젓대소리는 명인의 혼과 기교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느낌이 든다.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귀중한 음반이다.

신라에선 만파식적으로 모든 시름을 없앴다고 한다. 혹시 명인의 젓대는 천년의 혼을 담고 있는 이 시대의 만파식적이 아닐까? 우리가 그의 소리를 들을 때 이 나라의 모든 근심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향기가 진동하는 명인의 젓대소리를 들어보자.

a 시상식 직후 제자들과 함께 대금 공연을 하는 이생강 명인

시상식 직후 제자들과 함께 대금 공연을 하는 이생강 명인 ⓒ 김영조



- 먼저 '방일영 국악상'을 받은 소감을 말해달라.
"큰 상을 받고 보니 먼저 선배들이 생각났다. 상을 받는 것은 좋지만 선배들이 계신데 내가 먼저 받아도 되나 하는 죄스런 마음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음악에도 선후배와 인륜이 있음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대금을 통해 잘 마무리된다면 노벨상 못지않은 품격을 갖춘 국악상을 만들라는 주문을 제자들에게 하고 싶다."

a 인터뷰하는 이생강 명인

인터뷰하는 이생강 명인 ⓒ 김영조

- 이생강의 대금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60년 한국민속예술단 단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간 적이 있었다. '춘향극'의 반주자로 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 시간을 땜질하기 위해 긴급히 독주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때 나는 혼신을 다해 연주했고 한갓 궁중 음악이거나 보잘것 없는 음악으로 생각했던 프랑스 사람들이 '수십 마리의 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라며 극찬했다. 유명 일간지 <피가로>는 '대나무에서 나는 소리가 이렇게 대단할 수가 있느냐?'고 보도하기도 했다.

67년 일본 전국 순회공연에는 음악가들이 줄을 서서 들을 정도였으며 정부의 행사를 따라 전 세계를 돌며 연주했는데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 할 것이다."

- 이생강 대금 연주의 특징을 말한다면?
"이생강 하면 먼저 크로스오버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국악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강요가 아닌 다양한 차림표를 내놓고 뷔페식으로 선별해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를 위해 나는 서양의 7음계를 5음계로 바꾸고 호흡법 등의 기법을 개발했다. 이 퓨전은 민속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깐의 필요한 외도를 한 뒤 돌아온다. 그리고 늘 퓨전보다는 전통음악이 먼저였다. 원형을 망각한 음악은 생명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시골밥상처럼 소박한, 된장처럼 구수한 연주를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대금은 옆으로 불지만 청중을 향해 돌아앉아 청중을 바라보며 연주한다. 그래야만 청중과 호흡하는 연주가 가능해진다. 또 그것이 청중과 하나되는 우리 문화의 본질일 것이다."

- 두루마기 차림으로 갓을 쓰고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일부 연주자들은 한복이 아닌 차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생각은?
"나는 국악인이 한복을 입고 연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주 때 늘 한복과 갓을 함께했다. 그런데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 한복이 아닌 이상한 옷을 입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굳이 탓하지 않는다. 물론 오래 그런 옷을 입는다면 지적을 해주어야 하겠지만 곧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는 탓이다. 또 그런 옷을 입는 사람도 있어서 한복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닐까?”

- 제자들이나 혹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생강의 기록을 깰 수 있는 제자가 나와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 음악이 영원히 갈 것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대금을 연주할 때 '입김', '입바람', '헛바람' 등을 사용하는데 '입김'과 '입바람'만으로 연주해야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헛바람'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연주 전체를 기교에 치중한 나머지 '헛바람'을 쓰게 되면 숨이 짧아져 음이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평론가들이나 국악상 심사위원들께 하고 싶은 말은 음악을 겉만 보지 말고 깊이 숙성된 맛을 평가해 달라는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고 억지로 힘들여 내는 소리를 인정할 것이 아니라 내재율이 잠재된 것을 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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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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