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 이 눔의 쥐새끼들 환장 허건네"

쥐새끼, 그리고 쥐벼룩들과의 싸움

등록 2005.11.20 20:11수정 2005.11.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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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우리 집은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양식 도둑놈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올해는 놈들의 공격이 더욱 더 극심해 졌습니다. 딴엔 그래도 지은 농사라고 우리 식구 한 해 먹을 만큼 쌀이며 콩이며 고구마에 이르기까지 한 줌씩 쟁여 놓았는데 그걸 노리는 놈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요즘 놈들의 집중 공격 대상은 마당에 널어 놓은 콩입니다. 사실 놈들이 어떤 방식으로 콩을 공략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많은 콩들을 일일이 개수를 세어 놓고 그날 그날 사라지는 양을 덧셈 뺄셈으로 헤아려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푹 줄어 들 만큼을 노획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양심불량 거대 자본가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야금야금 세금 포탈하듯이 말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콩 도둑놈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 콩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 '웃기는 놈'이 그 콩 도둑놈의 정체를 확인해 줄 때까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도둑놈은 바로 쥐새끼들이었습니다. '웃기는 놈'은 일 주일에 서너 마리 꼴로 쥐새끼 사냥을 합니다.

'웃기는 놈'이 집 마당을 단단히 지키고 있으니 집 밖은 안전 지대인 셈입니다. 우리는 '웃기는 놈'을 믿고 쌀가마며 고구마 감자, 콩 호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처마나 허름한 창고에 모셔 두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점점 얼어붙고 있어 밖에 마냥 보관해 둘 수 없는 게 문제입니다. 쓸 만한 창고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양식들을 집안에 들여 놓아야 합니다.

고양이에게는 접근 금지 구역인 집안은 쥐새끼들에게는 오히려 안전지대입니다. 놈들은 사랑방과 부엌으로 쳐들어 오곤 합니다. 안방은 천장과 허름한 벽을 타고 침투해 들어오곤 했습니다. 임시방편으로 설치한 끈끈이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쥐새끼들이 쥐벼룩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식구는 쥐벼룩에 점령 당하다시피 했습니다. 쥐새끼들은 눈에 보이기나 하지 눈에 보이지 않는 쥐벼룩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우리 집은 흙 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세월 좀 지나면 벽지가 떠서 벽면 사이에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그 사이로 침투해 들어와 방안을 점령하는 것이지요.

지들이 무슨 위장술에 능한 저격수라고 잠든 틈을 이용해 시도 때도 없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한동안 우리 식구의 온몸을 마구잡이로 박박 긁어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 두 아들도 긁어대고 아내도 벅벅 긁어 댔습니다.

그 중에서도 몸 평수가 넓은 내가 가장 심하게 긁어 댔습니다. 내가 주로 거주하는 사랑방은 쥐새끼들 소굴이니까요. 쥐새끼들이 퍼뜨린 쥐벼룩들은 천장에서 낙하산도 없이 낙하하고 밧줄도 없이 벽을 타고 기어 들어와 이불 속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었습니다. 식구들과 떨어져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 날이면 집중 포화를 당하곤 했습니다. 온몸은 손톱자국으로 선명하고 입에서는 비명 소리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어이구, 이 눔의 새끼들 환장 허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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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벼룩들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안방 벽지를 뜯어 냈습니다. ⓒ 송성영

결국 우리 식구는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습니다. 집을 비우는 날을 이용해 쥐벼룩 잡는 독한 약을 살포했고 그것도 통하지 않아 이미 허름한 벽지를 뜯어내고 착 달라붙는 한지를 새로 입힌 지 오래됐습니다. 물론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죄다 볕에 말렸지요. 이제는 우리 식구 중에 벅벅 긁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쥐벼룩의 위협은 남아 있습니다. 놈들이 언제 어느 때 쥐새끼들을 통해 침투해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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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낸 벽지에서 쥐새끼 냄새가 나는지 '웃기는 놈'이 촉각을 세웠습니다. ⓒ 송성영

얼마 전 대전 엑스포에서 개최했던 유기농자재 전람회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씨앗도 전시하고 있다 하여 혹여 토종 씨앗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찾아 갔는데 토종 종자는 전혀 구경조차 못하고 '해충 퇴치기'를 만났습니다. 초강력 전자기. 초음파로 진드기, 바퀴 벌레, 개미, 벼룩, 쥐 퇴치에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음악까지 틀어 놓고 신명나게 설명하는 판촉 아줌마 말로는 인체에 해가 없답니다. 머뭇거리다가 거금 3만 원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사실 6만8천 원에 판매하는 것을 특별 할인가로 판매 한다는 말에 더 솔깃했지요. 또한 이 '전자기 해충 퇴치기'를 한 달 내내 꽂아 놓아도 전기료가 몇 백 원 정도 밖에 소비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어이구, 이런 것 두 살 줄 알고 어쩐일여."
"어쩐 일이긴, 끈끈이로 쥐 잡는 거 징글맞잖어, 쫒아 내야지, 쥐벼룩도 퇴치 한다는디."

아내가 놀려 대거나 말거나 나는 곧바로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부엌에 꽂아 두었습니다. 쥐새끼들이 잘 다니는 부엌 바닥에 미끼를 턱 하니 놓고 하룻밤을 지내보았습니다. 헌데 쥐새끼들이 멸치 미끼를 흔적도 없이 처분했더라구요. 혹시 몰라서 다시 하룻밤 더 실험에 들어갔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흘 나흘이 지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기 당한 거 아녀?"

아내는 투자한 3만원이 억울했는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혼자 궁시렁거리다가 생각해 보니 설명서를 자세히 읽지 않았습니다. 설명서에 보니 설치 후 약 2~4주 이상 사용해야 효과가 나타나고 1~2개월이 경과하면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어 있던 해충들이 견디지 못하고 비실거리며 밝은 곳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쥐벼룩 소동이 가라앉은 요즘, 오늘도 우리 집 고양이 '웃기는 놈'은 콩을 널어 놓은 마당 한가운데서 쥐새끼 한 마리를 생포해 놓고 장난질을 합니다. '웃기는 놈'은 자신의 기운에 눌려 오금을 펴지 못하는 쥐새끼를 툭툭 건드려 봅니다. 저만치 쪼르륵 달아난다 싶으면 다시 물어다가 제자리에 놓고 한참을 들여다 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다시 발길질을 합니다. 그렇게 수 차례 반복을 합니다. 몇 시간을 그러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장실 갔다가 와서 보아도 여전히 그러고 있고 점심 먹고 나와서 봐도 여전히 그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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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콩 알을 먹는 쥐새끼, 웃기는 놈 역시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입니다. ⓒ 송성영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쥐새끼가 콩 알을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먹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오는 돌발 행동일까? 그것도 아니면 죽음을 초월한 것일까? 적어도 성자들처럼 죽음을 초월한 두려움 없는 그런 행동은 아닐 것이었습니다.

생각 끝에 문득 죽음 앞에서도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해 가며 끊임없이 탐욕에 젖어 살아가는 인간들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자기 나라 목구멍 챙기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국가 원수들, 큰 죄를 짓고도 무엇이 그렇게 당당한지 와이셔츠 칼라처럼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있는 정치인이나 거대 기업의 총수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죄짓고도 당당하려 애를 쓰지만 그래봤자 고양이 앞에서 콩알 하나를 더 먹을 궁리를 하고 있는 쥐새끼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죽음의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쥐벼룩이라는 탐욕의 씨를 세상에 퍼뜨리는 추잡한 자본가들, 그런 인간들 몰아내는 '인간 퇴치기'는 없는 것일까요?

덧붙이는 글 | 농민들의 거대 자본가들과 싸움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싸움입니다.

덧붙이는 글 농민들의 거대 자본가들과 싸움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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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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